오피니언

[녹색전환을 한다고요?] 한국은행, 왜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야 하는가

2019년 유럽중앙은행(ECB)을 둘러싼 큰 논쟁이 있었다. 당시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총재로 취임하는 과정에서 “2조 8000억 유로(4100조 원)의 자산을 녹색 목표를 위해 매입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1) 전임 총재 마리오 드라기가 시장중립적 방식으로 시중 자산을 매입하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방식을 채택한 데 반해, 라가르드 총재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중앙은행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소위 ‘녹색양적완화(Green QE)’ 논쟁이다. 

대번에 반박이 나왔다. 보수적 통화정책의 본산 독일 중앙은행 총재 옌스 바이트만은 “녹색양적완화를 비롯한 녹색 통화정책을 대단히 비판적으로 본다”는 입장을 표명했다.2) 중앙은행의 시장중립성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며, 민주적으로 위임되지 않은 권한을 ECB가 행사하는 것이라는 게 근거였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이라는 전통적인 목표에 한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각 시장 주체들에게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견지에서 라가르드의 주장은 폭거로 들릴 수 있다. 중앙은행이 어떻게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특정한 정책적 목표를 위해서 특정한 자산을 매입할 수 있나? 거시정책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니던가? 

망해버린 지구에는 조절할 물가도 없다

문제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극심해지고 있는 기후변화는 통화정책의 전제를 송두리째 뒤흔든다. 기준금리 등락과 상관없이 식생의 변화에 따라 사과는 ‘금사과’가 되고 배추는 ‘금배추’가 된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불가피한 화석연료 가격 상승 곡선을 따라 전기요금을 비롯해 관련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 곡선도 우상향한다. 독점적 기업들은 공급망 변화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틈타 공급가를 높여 횡재이윤을 쓸어간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른 유럽지역 인플레이션 변화 ⓒNetwork for Greening the Financial System(NGFS), “NGFS Scenarios for central banks and supervisors”

중앙은행의 또다른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금융안정도 큰 위협을 받는다. 현존하는 모든 화석연료 자산은 결국 가치가 0으로 수렴한다. 61기 석탄화력발전소부터 포항과 광양의 고로, 울산과 여수의 중후장대한 석유화학플랜트와 내연차 제조공장까지 모조리 그리 될 운명이다. 여기에 투자와 대출로 연결된 금융은 자산의 좌초와 함께 부실해지고, 실물과의 ‘피드백 루프’를 통해 거시경제를 파멸로 이끈다. 한국은행은 기후변화 심화에 따라 시중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이 2050년까지 16~35% 하락할 것으로 예측한다.3)

즉 물가와 금융안정이라는 그 자신의 본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중앙은행의 기후위기 대응은 필수적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마크 카니 전 영란은행(Bank of England) 총재와 프랑수아 드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2019년 가디언 공동기고문에서 “금융정책 담당자이자 신중한 감독관으로서, 우리는 눈앞에 있는 명백한 자연적인 리스크를 무시할 수 없다”며 중앙은행의 기후대응 필요성을 역설했다.4) 전 아일랜드 중앙은행 총재 패트릭 호노한은 중앙은행이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후변화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5)

한편 기후위기는 1980년대 이래로 금과옥조로 여겨졌던 중앙은행의 시장중립성(Market Neutrality) 원칙에도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왔다. 영국 그랜덤 기후변화환경연구소는 ECB가 매입한 회사채의 62%가 탄소 고배출 산업의 채권이었는데, 이 부문은 유로존 총부가가치의 1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6) ECB의 담보자산 중 화석연료 투자 채권의 평균 수익률은 1.5%에 달해 당시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 4.5%를 까마득히 하회했다.7) 그만큼 ECB가 화석연료 채권에 사실상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탄소집약적 산업의 시장우위가 그대로 반영되면서 ‘시장중립적’이라고 하는 중앙은행 통화정책이 고탄소 산업의 우위를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아이러니다.  

중앙은행이 모럴해저드 속에서 막대한 이익을 가져간 금융기관들을 구제하고 탄소배출로 기후를 희생시키며 돈벌이를 하는 화석연료 기업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면, 역으로 중앙은행이 기후위기의 암울한 미래를 막기 위해 녹색 활동을 지원하고 화석연료 투자를 제약하는 통화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를 배경으로 하는 통화주의적 중앙은행 모델의 허울 뿐인 ‘시장중립성’에 대한 회의는 중앙은행에게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중앙은행들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는 대표적 중앙은행으로 ECB를 비롯한 유럽의 중앙은행들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의 정책은 ‘매입 자산의 탈탄소화(Decarbonisation)’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와 2010년대 남유럽 재정위기 국면을 거치면서 ECB는 천문학적 규모의 시중 자산 매입프로그램을 가동했는데, 이 보유 자산 중 기후에 악영향을 주는 자산 비중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2022년 기준 3440억 유로(506조 원)에 달하는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에서 탄소배출량 등의 기후영향을 고려해 매입 비중을 조정한다. 이른바 ‘틸팅(Tilting, 기울이기)’으로 불리는 기법이다. 이를 통해 회사채 매각으로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기업들은 탄소 감축 압박을 받게 되고, 중앙은행 자산의 기후리스크는 낮아진다. 영란은행 역시 2022년 기준 200억 파운드(35조 원)에 달하는 회사채 매입프로그램 CBPS의 틸팅을 단행했다. 

유럽 중앙은행의 또다른 정책 수단은 강력한 은행규제책이다. ECB는 산하 감독 대상 개별 은행 104개에 대해 기후 대응 역량 테스트를 시행하고, 기후리스크 대응 지침 및 자본적정성 규제를 충족할 것을 요구했다. 은행들은 시일 내 이를 준수하지 못하면 일 매출의 5%까지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유럽은행감독청(EBA)는 심지어 기후변화에 따른 금융기관들의 예상 자산손실에 대해 대손충당금 확보 규정까지 고려하고 있다.8) 좌초자산이 될 수 있는 화석연료 투자를 그만하거나, 아니면 해당 투자에 대한 손실을 대비한 자본금을 별도로 확충해야 하는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편 ECB와는 다른 기후대응 접근법으로 주목할 만할 중앙은행이 있으니, 바로 중국인민은행(PBoC)이다. 정부 주도의 강력한 권위적 실행력으로 탄소중립 정책을 밀어붙이는 중국에서 인민은행은 금융 기관들을 녹색 지향으로 이끌고, 대규모의 녹색 신용을 직접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기본적으로 서구 중앙은행의 핵심 가치인 독립성이나 시장중립성을 추종하지 않는 중앙은행으로서 정부의 정책목표에 복무하는 성향을 보인다. 한국·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중앙은행을 위시해 개발도상국 중앙은행에서도 일부 나타나는 전통이다.

최근 세계 재생에너지 설비 증가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급격한 중국의 에너지 전환 이면에는 인민은행의 신용정책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소배출감축을 위한 특별시설대출(CERF)’이 대표적이다. 인민은행 출자로 특별대출기관을 설립하고, 민간의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등 탄소배출 감축시설투자에 저금리로 대출을 해 주면 인민은행이 원금의 60%를 1.75%의 우대이율(2024년 8월 기준)로 대출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2021년부터 3년 동안 해당 대출 집행 규모는 1.1조 위안(204조 원)에 달한다.9) 인민은행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2024년 6월까지 2억 1500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했다고 주장한다. 

CERF 운영 방식 ⓒ출처: 최기원(2024), “기후위기 앞에 선 한국은행, 그 역할을 묻다”, http:

중국의 시중은행들은 녹색 채권 규모 및 녹색 여신 활동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평가받는다. 은행들은 지속불가능한 프로젝트 대출을 지속가능한 형태로 전환시켜야 하고, 녹색 신용 통계를 인민은행에 보고해야 한다. 녹색채권은 중앙은행 대출의 담보로 인정되며(중앙은행 담보로 인정되는 자산은 유동성 확보에 도움이 되므로 자산시장에서 선호된다), 금융기관의 녹색 대출에 대해서는 인민은행의 해당 기관 대출에서 우대이자율을 적용한다. 

그린워싱(Greenwashing)으로 간주될 수 있는, ‘효율적인 석탄 발전’ 투자에 녹색자금이 일부 흘러들어가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의 녹색금융이 이러한 정책적 노력에 따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2023년 중국에서 발행된 녹색채권은 940억 달러(131조 원)로 세계 수위를 차지했으며, 2021년 16조 위안이었던 녹색대출의 잔액은 2023년 30조 위안(5610조 원)에 도달했다.10)

이 외에도 다수 중앙은행들이 기후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은행은 중국인민은행 특별시설대출 CERF의 효시 격인 신용공급정책을 2021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녹색 활동에 대출한 금융기관에 대해 저금리(0.1%)로 자금을 제공하고  일본은행에 예치된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한 마이너스 금리를 면제해주는 방식으로, 2024년 7월 기준 대출 잔액은 12조 엔에 달한다(110조 원).11) 브라질 중앙은행은 아마존 사탕수수 농장 확대에 대한 자금조달을 금지하고, 농업 대출 조건으로 까다로운 환경 규제를 준수하도록 규정했다.12)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녹색국채를 기초자산으로 한 그린 수쿠크(Green Sukuk)를 발행해 녹색 인프라 자금을 조달한다.13)

한국은행의 기후대응 성적 “D-”

영국의 씽크탱크 포지티브 머니(Positive Money)는  G20 국가 중앙은행과 ECB를 대상으로 기후정책을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연구 및 지원(10점), 통화정책(50점), 금융정책(50점), 모범사례(20점)에 걸쳐 시행하고 있거나 검토하는 정책에 상-중-하 영향 평가를 해 점수를 산정한다. 대한민국은 몇 등일까?

올해 9월 발표된 랭킹에서 대한민국은 130점 만점에 16점을 기록해 최하위권인 16등에 머물렀다.14) 우리 아래에는 미국, 사우디, 아르헨티나, 터키가 있다. 위로는 개발도상국인 인도가 30점(10위), 인도네시아가 38점(9위), 중국 61점(6위), 브라질 71점(5위)가 있다. 1위 프랑스가 기록한 96점과는 까마득한 차이가 난다. 포지티브 머니는 한국에 D- 학점을 부여했다. 낙제점이다.

Green Central Banking Scorecard 2024 결과표 ⓒPositive Money, “The Green Central Banking Scorecard 2024 Edition”, https:

설상가상으로 순위는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지고 있다. 2020년 첫 조사에서는 그래도 11위였다. 2022년에는 13위로 떨어졌고 급기야 올해는 16위까지 밀렸다. 이유는 다른 중앙은행들이 적극적인 기후정책을 시행해서 점수를 올리는 동안 제대로 시행한 정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중앙은행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정부라도 기후정책에 적극적이었다면 위안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대한민국은 정부도 중앙은행도 기후대응을 외면하는 현실이 뼈아프다. 

한국은행의 문제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연구와 분석에만 열중하는 접근 방식에 있다. 한국은행은 3년 전인 2021년에 ‘기후변화와 한국은행의 대응방향’이라는 전략문서를 통해 녹색금융협의체(Network for Greening the Financial System, NGFS)에서 제안했거나 다른 나라들이 현재 시행하고 있는 여러 통화신용정책들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15) 앞서 살펴본 인민은행과 일본중앙은행이 시행하고 있는 신용정책과 유사한 현행 금융중개지원대출의 녹색활동 지원, ECB와 인민은행이 시행하는 담보정책, 외화자산 운용 시 녹색채권 투자를 강화하는 정책 등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애초에 그 임팩트가 지나치게 제한적인 규모로 설계되었거나, 시행한다고 해도 부분적으로 이행하는 데 그쳤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저금리로 중소기업에 정책자금을 공급하는 현행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확대해 중소기업의 재생에너지 발전 투자 등 탄소 감축 투자를 저리로 지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지방 중소기업 중 녹색기업 인증을 받은 기업만을 대상으로 극히 일부의 정책자금만을 그것도 한국은행 지역본부 재량으로 선택해 공급할 수 있게 했다. 녹색채권의 적격담보 인정도 사실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따른 시중유동성 공급 능력 확대를 위해 적격담보를 확대하면서16) ‘얻어 걸린’ 결과이지 기후대응을 위해 검토된 정책은 전혀 아니었다. 

이런 소극적 정책 수행의 배경에는 극히 보수적인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경향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화정책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들이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고 회의에서 논의라도 해야 전향적인 정책이 수립될 수 있는데, 지난 10년 동안(2015~2024.7) 금통위에서 ‘기후’ 의제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17) ‘기후’는 단편적인 물가 인상 요인을 나열할 때 거론될 뿐이었다. 전세계 중앙은행이 기후대응을 통화정책의 핵심 문제로 격상시켜도, 대한민국에서의 통화정책 결정요인은 성장률과 환율, 소비자 물가와 아파트 가격에 국한된다. 

그나마 강력한 연구분석역량을 발휘해 지난 5년간 30건에 가까운 다수 기후 관련 연구를 쏟아내는 부분은 다행한 일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물리적리스크와 전환리스크에 대한 양적 평가, 금융권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수행 능력은 한은이 주요국 중앙은행보다도 앞서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누적된 연구성과가 적극적인 기후대응 정책의 제안과 수행으로도 이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은 홈페이지에는 ‘기후변화와 한국은행’이라는 별도 섹션이 마련되어 있다. “기후변화 대응은 팬데믹 이후 뉴노멀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핵심과제”, 섹션 상단에 걸린 이창용 총재의 발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은?

한국은행이 할 수 있는 일

이창용 총재의 말대로 세계는 기후변화 대응을 핵심과제로 설정하고 달리고 있다. 녹색산업정책은 대세가 되었다. 유럽의 그린딜(Green Deal)과 탄소중립산업법,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중국의 1+N, 일본의 GX에 이르기까지 에너지전환과 산업전환 전략을 국가전략으로 격상시키고 막대한 재원을 투입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자리는 아직 비어 있다. 

만약 대한민국이 대전환을 결단한다면 필요한 대규모 재원, 줄잡아 연간 100조 원 이상의 자금을 어디에서 구해야 할까. 세금은 한계가 있다. 저출생과 저성장은 당분간 확정된 미래로 세수환경을 근본적으로 제약한다. 탄소세 신설과 배출권거래제 확대는 필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할 수 없고 증세에 따른 수요충격을 완화할 대규모 지출을 재차 강요한다. 그렇다면 결국 민간투자와 금융이다. 걸음마 수준인 녹색금융을 획기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여기서 한국은행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제안할 수 있는 정책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녹색 신용 정책이다. 현 대한민국 기후위기 대응의 급소이면서도 금융의 역할이 중요한 영역으로는 산업부문의 중소기업 탈탄소 투자와 건물부문의 그린리모델링을 꼽을 수 있다. 현 시점에서는 보조금과 금융 지원이 없이는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  부문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금융중개지원대출 방식의 저리대출 프로그램 지원 정책을 편성할 수 있다. 금융기관이 낮은 금리로 중소기업의 녹색 활동과 그린리모델링 사업에 대출하면 한국은행은 대출금의 일부를 저리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감축 성과가 큰 분야 및 금융기관 대출에 대해서는 한도 및 이율을 우대할 수 있다.

둘째는 녹색채권 활성화를 위한 담보정책이다. 중앙은행의 담보정책은 금융기관의 자산 선호 체계에 영향을 주어 자산의 시장수익률을 변화시킨다. 지금의 한국은행 금융기관 담보정책은 화석연료 채권에 비해 녹색채권을 우대한다고 보기 어렵다. 녹색채권을 별도 범주의 적격담보로 인정하고 담보인정비율을 조정해 기후 기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며, 정부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녹색국채 발행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셋째는 한국은행 자산·대출·담보의 탈탄소화 프로젝트다. 한국은행은 금융중개지원대출, 외화자산 운용, SPV의 자산매입, 자금조정대출 등을 통해 수백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산과 대출을 운용한다. 철강·석유화학·자동차 등 탄소집약적 산업이 대세인 대한민국에서는 EU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화석연료 자산 우위 구조가 중앙은행의 자산·대출·담보 구성에도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해당 자산과 대출의 기후 영향 평가 및 기업의 공시 여부에 따라 운용 비중을 조정하고 갈색자산에 대해 낮은 담보인정비율을 적용해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탈탄소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 

넷째는 에너지전환을 위한 녹색채권 매입프로그램이다. 해상풍력과 같은 대규모 재생에너지 투자는 상당 부분이 민간투자로 이뤄지겠지만, 공공영역이 중심성을 갖고 주요 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에너지 공공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은 및 정부 출자로 녹색에너지투자기구(SPV)를 설립하고 정부와 정책금융 출자로 설립한 녹색에너지금융공사가 재생에너지 투자 목적으로 발행한 녹색채권을 한은 대출을 통해 SPV가 매입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에너지 인프라 투자라는 점에서 통화량 증가 및 수요자극에 따른 물가영향은 제한적이며, 장기적 관점에서 화석연료 의존에서 벗어나면서 에너지가격 변동성에 의한 물가리스크를 해소한다는 이점이 있다.

녹색채권 매입 프로그램 개요 ⓒ최기원(2024), “기후위기 앞에 선 한국은행, 그 역할을 묻다”, http:

마지막으로 한국은행의 기후공시(Climate Disclosure)를 선결사항으로 요청한다. 기후 관련 리스크를 기업 재무정보에 반영하는 기후공시 제도가 세계 주요국들에서 의무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도 기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대 금융기관으로서 기후공시가 권고된다. 금융기관과 산업 전반의 기후공시 정착은 한은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기후공시로 정확하고 풍부한 데이터를 빠른 시점에 얻을 수 있어야 기후의 금융리스크 평가가 가능하고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할 근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행부터 NGFS 권고안에 근거한 자체 공시를 통해 민간에 모범을 보이고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당연하게도,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남용되어서는 안 되고 정치적 이해에 흔들려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 명제를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해석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제안한 정책들은 결코 돌출적 아이디어가 아닌, 국제적으로 논의하거나 제안되거나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중앙은행도 통화정책도 바뀌고 있다. 한국은행은 그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기후위기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다수의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다. 

필자주

1)https://www.politico.eu/article/christine-lagarde-promises-to-paint-the-ecb-green-european-central-bank/
2)https://www.ft.com/content/60d9832c-fa3f-11e9-a354-36acbbb0d9b6 
3)이지원 외, "국내 기후변화 물리적 리스크의 실물경제 영향 분석", BOK 경제연구, 한국은행, (2023.12.)
4)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9/apr/17/the-financial-sector-must-be-at-the-heart-of-tackling-climate-change
5)Patrick Honohan, "Should Monetary Policy Take Inequality and Climate Change into Account?", Discussion Note 2020/3, (2020)
6)Sini Matikainen et al., "The climate impact of quantitative easing", Grantham Research Institute, (2017)
7)Economist Intelligence Unit(EIU), "ECB collateral policy threatens EU’s path to net zero", (2024)
8)European Banking Authority(EBA), "On The Role Of Environmental And Social Risks In The Prudential Framework", (2023.10.), EBA/REP/2023/34
9)https://www.scmp.com/business/article/3274129/chinas-central-bank-extend-lending-support-decarbonisation-projects-until-2027
10)https://greenfdc.org/china-green-finance-status-and-trends-2023-2024/ 
11)Bank of Japan, "Loan Disbursement under the Funds-Supplying Operations to Support Financing for Climate Change Responses", (2024.7.18.)
12)https://greencentralbanking.com/scorecard/
13)https://indonesiabusinesspost.com/risks-opportunities/bank-indonesia-pioneers-green-sukuk-for-global-economic-recovery/
14)https://positivemoney.org/publications/green-central-banking-scorecard-2024/
15)한국은행(2021), "한국은행의 기후변화 대응방향"
16)한국은행 보도자료, “한국은행 대출제도 개편 방향”, 금융기획팀, (2023.7.27.)
17)최기원(2024), “기후위기 앞에 선 한국은행, 그 역할을 묻다”, http://igt.or.kr/view/891

참고문헌

이지원 외. (2023). “국내 기후변화 물리적 리스크의 실물경제 영향 분석”. 한국은행.

최기원(2024). “기후위기 앞에 선 한국은행, 그 역할을 묻다”. 녹색전환연구소.

한국은행(2021). “한국은행의 기후변화 대응방향”.

한국은행 금융기획팀. (2023). “한국은행 대출제도 개편 방향”. 한국은행.

Bank of Japan. (2024). “Loan Disbursement under the Funds‐Supplying Operations to Support Financing for Climate Change Responses”.

Economist Intelligence Unit (EIU). (2024). “ECB collateral policy threatens EU’s path to net zero”. https://www.eiu.com/n/ecb‐collateral‐policy‐threatens‐eus‐path‐to‐net‐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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