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정훈의 학교 밖 세상] 고3이 본 계엄 사태, 탄핵이 참교육이다

매월 첫 주에 칼럼을 씁니다. 어제는 지난 2일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이 교육부 장관에게 제안한 ‘고3 내신 2학기 반영, 수능 12월 실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상계엄이 발동되었습니다. 일단 글 쓰기를 중단하고 뜬눈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학교에 출근하여 수능 이야기를 쓰려니 도무지 마음이 안 잡힙니다. 이 시국에 수능 이야기나 할 수는 없겠지요. 체험학습 기간이라 학생들은 학교에 없지만, 우리 반 단톡방에 글을 썼습니다. “얘들아, 어젯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는데, 많이 놀랐지? 너희들은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구나. 어젯밤 소감을 좀 써줄래?”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몇 학생들이 소감 글을 올립니다. 글들을 보면서 이걸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겠다 싶어서 공개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경찰병력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2024.12.3 ⓒ뉴스1

학생 A: 민주주의가 45년 후퇴한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시위한 시민분들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학생 B: 여러모로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일이었겠지만 이러한 위험성이 존재했다는 것을 몰랐고, 세상에 너무 관심이 없었던 것과 대외적으로 비추어질 우리나라의 모습이 좋지 못할 것 같아 그렇게 느꼈어요.

학생 C: 만약 이 비상계엄령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는 게 아닐까’하는 불안감도 잠깐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제되었다고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제 이후 대한민국에 끼칠 막대한 경제적인 영향과 외국에서 보는 대한민국에 대한 시선이 심각함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조직의 수장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학생 D: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는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실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것을 본 후부터 실감을 했고, 뉴스에서 등교 중지, 해외 출국 금지, 통행금지 등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고 대통령 자신이 어떤 일을 벌인 것인지 알기나 하는지 화도 났습니다. 우리나라가 정말 군대와 윤 대통령에게 점령당할까 무섭기도 했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낸다는 명목으로 선포한 비상계엄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망치고 우리나라를 국제적으로 망신시킨 것 같습니다. 계엄령이 해제되었을 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국가 신용도는 떨어졌고 경제적으로도 후폭풍이 올까 걱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엄령이 선포되자마자 국회로 달려가신 시민분들과, 군을 뚫고 국회에 들어가 계엄령 해제를 가결한 국회의원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제가 방에서 뉴스만 보며 상황을 지켜볼 때 직접 나서서 계엄령 철회와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역사적으로도 저런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가만히 있던 저 자신과 정치에 관심이 없던 과거의 모습이 부끄럽고, 이제 성인이 코앞인 만큼 앞으로는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위 4개의 글이 대한민국 고3 학생들 모두의 의견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비슷한 정서일 겁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고3 학생들이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국회로 모인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보며 우리의 미래를 밝게 보게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2024.12.03. ⓒ대통령실 제공

얼마 전부터 민주당의 김민석 의원이 계엄령 이야기를 몇 차례 했는데, 저는 계엄은 할 수 있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계엄군이 탱크를 몰고 서울 시내로 진주하면 시민들이 두려워하고 도망쳐야 계엄의 효과가 있는 것인데, 저는 시민들이 그 탱크 앞을 막아 나설 것이고,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군이 발포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저는 윤석열 일당이 계엄령을 발동하면 그날이 정권 끝나는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 길의 초입에 서게 되었습니다.

교육은 교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교사만이 아닙니다. 이제 진정한 교육은 광장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깨어난 시민의 조직된 힘이 가장 큰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참교육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를 보여줘야 합니다. 계엄 종료로 끝이 아닙니다. 어제는 여의도에서 계엄을 종료시켰지만, 민주주의를 능멸한 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자기 조국을 ‘헬 조선’이라 부르는 아이들에게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2024년 어른들이 해야 할 참교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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