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 해제 사태로 인해 각 부처 장관들이 사의를 밝힌 가운데 국정공백으로 시급한 경제 정책까지 표류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충남 공주시에서 ‘다시 뛰는 소상공인·자영업자, 활력 넘치는 골목상권’을 주제로 국정 후반기 첫 민생 토론회를 열고 전향적인 소비 진작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다음날인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은 2시간 여만인 3일 자정께 국회 과반이 찬성하면서 해제됐지만 후폭풍은 이어졌다. 비상계엄 해제 후인 4일 각 부처 장관들은 일정을 모두 순연했다. 이에 따라 같은 날 발표될 예정이었던 소상공인 지원 강화 방안 발표도 미뤄졌다. 기획재정부 등은 같은 날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회의 자체가 연기됐다.
결국 정부는 예정보다 하루가 미뤄진 지난 5일 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소상공인·자영업자 맞춤형 지원 방안과 경제 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소상공인 종합대책 가속화 △피해구제·규제개선 △매출기반 강화 등이 주요내용이다.
이날 오영주 중기부 장관은 "중기부는 소상공인·자영업자와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관계부처와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12월 5일 대책 이행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소상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해제 사태로 인해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밝혔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단체들은 정부의 지원 방안에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도 내심 국정 공백 상태로 발표한 대책들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에게 어려운 시기인데 정부나 국회가 다 기능을 못 하는 상황에서 힘든 상황이 계속될 것 같다"면서 "사태가 빨리 해결되기 전까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상계엄 관련 사태로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면 소비가 위축될 수도 있고 상황이 더 나빠질 것 같다"면서 "대통령이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반도체 업계도 최근 미국의 대중 반도체 추가 제재가 발표된 가운데 계엄 후폭풍까지 덮치면서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미국현지시간 2일) 미국 상무부는 중국으로 수출되는 반도체 및 장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에는 특히 중국에 대한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출을 금지하고, 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했다. FDPR은 미국산 장비, 기술 등을 적용돼 생산된 제품이라면 미국 외 생산품이라도 이번 수출통제를 따라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에 따라 HBM을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일 반도체 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할 계획이었으나 계엄 관련 사태로 연기됐다. 업계 간담회는 결국 이틀이 지난 6일 오전에서야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반도체 업계는 "미국 신정부 출범 이후 정책이 변화할 가능성을 전망하며 정부가 업계의 이익을 보호하고 불확실성 우려를 낮추는 데 힘써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안덕근 산업부 장관도 사의를 표명한 상태로 업무 혼란은 당분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 들어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강력한 대중 무역 경쟁을 예고하고 있어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국정 공백 등 국내 불안 요인까지 겹친 셈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하게 돌아가는 산업이라서 국내외에 불확실성이 많은 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 국회도 입법 논의 중단..."탄핵 즉각 결정해야 혼란 줄어"
국회도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표결을 앞두면서 자본시장법 개정안, 연금개혁 등 경제 관련 입법 논의가 중지된 상태다.
특히 장기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연금개혁에 대한 입법 논의는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9월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2%로 조정하고, 보험료율 인상을 세대별로 차등 적용하는 등의 정부안을 제출한 바 있다. 여야 의견 차이로 논의조차 시작되지 못한 상황이지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또한 사의를 표명해 올해 안에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난망한 상황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지원을 위해 발의된 반도체특별법과 전력망특별법 논의도 중단됐다. 다만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에 한해 주 52시간 노동시간 적용을 예외로 둔다는 내용을 두고 야당과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주 52시간' 내용을 뺀 반도체특별법에 대해선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반도체, 2차전지 등에 대한 시설 투자의 세액 공제가 올해를 끝으로 일몰될 상황이다.
전력망특별법은 전력망 구축 사업의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 공급 인프라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규모 송전망 건설, 재생에너지 공급 저해 등을 이유로 환경단체가 반대하고 있는 법안이기도 하다. 두 법안 모두 여야 간 쟁점이 큰 법안들이다. 논의가 지연될수록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커진다.
본회의 통과만 앞두고 있는 단통법 폐지안(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과 AI기본법(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안)도 제동이 걸렸다. 단통법 폐지안은 부작용 논란이 많았던 지원금 공시 제도를 폐지하고 선택약정할인을 유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AI기본법은 AI 산업 지원과 규제 방안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법안이다.
다만 단통법 폐지안은 단독으로는 단말기 가격 구입 부담이나 통신비 부담을 완화하는 데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AI기본법은 '금지AI', '고위험AI' 등 인권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AI에 대한 규제가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으로 차기 정부까지 과도기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미 대통령의 기능은 상실했기 때문에 윤 정부가 하려고 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면서 "이제부턴 어떻게 신속하게 수습하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즉각 탄핵을 결정하고 여야가 정치일정을 합의해서 대비해야 한다"면서 "차기 대통령이 들어설 때까지 과도기에 있는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과도기를 최소화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가 이후 상황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 극단적인 대치로 나가면 과도기적인 상황도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