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을 가로막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8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공동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 자체는 평범한 내용에 그쳤는데, 이 자리에서 한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으로 혼란을 최소화해 국민과 국제적 불안감을 해소하고 민생과 국격을 회복시키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또 "퇴진 전이라도 윤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 부분에 대해 국민과 국제사회의 우려가 없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윤 대통령을 압박해 "임기를 포함해 정국 안정 방안을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직전까지 한 대표는 탄핵에 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을 흘렸고, 윤 대통령이 물러서자 자파 의원들을 본회의장에서 철수시켜 탄핵 표결을 무산시켰다. 윤 대통령을 당장의 탄핵과 사법처리의 위협에서 구하는 대신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킨 셈이다. 요 며칠간 권력 최상층과 야당, 국민을 상대한 솜씨만 놓고 보면 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문제는 이런 한 대표의 곡예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정치적 정당성도 없다는 데 있다. 대통령의 권력은 대통령 개인이나 여당 대표, 고위 관료 누군가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국민이 부여한 것으로 그 권력을 이양하는 것 역시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한다. 우리 헌법이 정한 대통령 권한의 정지 절차는 탄핵이 유일하다. 탄핵 없이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누구에게 이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헌이다. 여기에 무슨 '질서'가 있는지 설명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 대표에게 무슨 정치적 정당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대표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바 없고, 의회 소수당의 대표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내부 사정으로 보면 한 대표가 소속 의원들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다. 단지 탄핵 표결의 결과를 바꿀 수 있는 20석 안팎의 계파를 이끌고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이 국무총리와 함께 국정을 책임진다는 건 아무리 비상적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렵다.
윤석열-한동훈의 '담합'이 견고한 것도 아니다. 한 대표는 교묘한 화법으로 윤 대통령이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국방은 왜 들어가 있지 않은가? 그것은 어떤 논리로도 탄핵이 없는 한 윤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장관들이 사표를 낸다면 한 총리가 이를 수리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윤 대통령과 친윤계가 언제까지 뒤로 물러서서 한 대표의 전횡을 구경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거의 없을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지적처럼 한 대표의 곡예 정치는 "국민주권과 헌법을 무시하는 오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