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윤 ‘비상계엄 쿠데타’ 결과, 한강 울렸던 ‘사자왕 형제’는 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회 본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4.12.07. ⓒ뉴시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지난 7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수상자 기념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 제목은 '빛과 실'이었다. 당시 한국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로 충격과 혼돈에 빠져 있었다. 당연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터였다.

한강 작가는 이날 강연에서 1979년 8살에 지은 시를 또렷하고 차분하게 읽은 뒤 자신이 집필한 소설들에 관한 생각과 질문들을 이어 나갔다. 언급한 책들은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이었다.

특히 연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광주 항쟁을 다룬 책 '소년이 온다'에 관한 것이었다. 한강 작가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한강 작가는 신군부와 신군부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몇 년 전에도 한 적이 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뒤인 2017년 2월 노르웨이 오슬로 문학의 집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였다.

이 행사에서 한강 작가는 스웨덴 국민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작가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1980년 광주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설명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한강 작가는 자신이 철석같이 잘못 믿고 있던 '시기'에 대해서 언급했다. 바로 자신이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던 1980년 여름에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한강 작가가 이 책을 읽은 것은 3년 뒤인 1983년이었다. 한강 작가는 이 행사에서 "왜 나는 그 해가 1980년이었다고 철석같이 믿어 왔을까? 1980년과 1983년의 여름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라고 질문하며 연도를 착각한 이유에 대해 '1980년 광주'와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평범하지 않은 동화책 속 등장인물과 간략한 줄거리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강 작가와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 ⓒ뉴시스, 창비

궁금해졌다. 그래서 실제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어보니, 1980년 광주를 떠올리게 했고, 동시에 2024년 윤석열 정권의 '비상계엄 쿠테타'도 떠오르게 만들었다. 책 속엔 마을 사람들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독재자 텡일이 있었다. 그리고 텡일의 부하들도 등장한다. 텡일의 살아있는 칼(괴물)인 카틀라도 나온다. 이들은 무력을 앞세워, 사람들을 억압한다. 사람들은 자유를 억압 당하며 힘겹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 거대한 악의 축 반대편에는 사자왕 형제(요나탄과 칼)가 있었다. 형 요나탄과 동생 칼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텡일과 맞서 싸운다. 무엇보다 형제 곁엔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마을의 젊은 남녀부터 나이든 노인까지 함께 연대해 자유를 억압하는 무리들과 싸웠다.

사자왕 형제와 마을 사람들의 연대는 마치 지난 3일 비상계엄 선언과 해제 이후로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한국 시민들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실제 지난 주말 국회의사당 앞과 여의도 일대엔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학생들, 젊은이들, 중장년층, 노년층까지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은 연대했고 함께 투쟁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 사자왕 형제와 마을 사람들은 결국 텡일을 물리쳤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억압에서 풀려나 자유를 되찾았다. 마치 이 결말은 윤석열 정권의 '비상계엄 쿠테타' 결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책의 결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텡일을 끌어내리기 위해 치러야 했던 안타까운 죽음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도 잊지 않는다. 사자왕 형제를 따뜻하게 품어주신 마티아스 할아버지도 돌아가셨고, 후베르트 역시 목숨을 잃었다. 텡일이 죽은 후, 사람들이 자유를 찾게 됐을 때 사자왕 칼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들장미 골짜기가 지난날과 같아질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마티아스 할아버지가 없으니까요."

결말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데, 어쨌든 한강 작가는 자신이 어렸을 때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읽다가 오래 울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비상계엄 쿠데타'로 상처입은 민주주의가 복구되기 위해선 수없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파괴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선 윤석열의 조속한 퇴진과 정의로운 법의 심판이 답이다. 이를 위해 작은 개인들은 더욱 오밀조밀 촘촘히 모여 단단한 연대의 성을 계속 쌓을 것이다.

7일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국민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투표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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