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만 열면 ‘경제 어렵다’던 재계, 계엄 사태엔 침묵

계엄·탄핵엔 ‘입 꾹’...‘탄핵 요구’ 금속노조 파업엔 “자제하라”

한국경제인협회(자료사진)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 해제, 이어진 탄핵 정국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불확실성이라는 위기를 맞은 가운데 주요 경제단체들이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이번 사태로 증시를 비롯한 금융·외환시장이 충격을 받은 데다 반도체특별법 등 재계가 요구하던 법안들도 국회에 묶여 있어 재계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사태 해결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민감한 정치 이슈에는 일단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 전국금속노동조합에는 "자제하라"며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10일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은 비상계엄, 탄핵과 관련해 "특별한 입장은 없고, 공식 입장을 낼 계획도 아직 없다"고 밝혔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정치 이슈라서 경제 단체가 언급할 사항은 아닌 것 같다"면서 "일단 사태와 국회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도 "엄중한 상황이라 저희가 거기에 대해 입장을 내기보다 국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 후 해제로 인해 증시와 외환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여당인 국민의힘의 불참으로 표결 불성립으로 불발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부추기고 있다.

탄핵 불발 후 첫 개장일인 지난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37원(오후 3시 30분 기준)에 마감됐다. 같은 날 원·달러 환율은 1438.3원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10일 외환시장도 전날 종가 대비 6.10원 내린 1,430.9원에 개장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426.9원에 거래를 마쳤다. 경제 당국의 시장안정 조치로 다소 안정을 찾는 모습이지만, 탄핵 정국이 장기화된다면 다시 요동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과 주요 그룹 사장단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2024.11.21. ⓒ뉴시스

'계엄·탄핵'엔 침묵...'탄핵 촉구' 파업에는 '반대' 밝힌 재계


이 같은 상황에도 경제단체들은 이날까지 "정치적 이슈"를 이유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에 대해 정치권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지난달 21일 한국경제인협회는 주요 기업 사장단과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을 발표하며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하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까지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경협은 긴급 성명에서 국회를 향해 "최근 논의되고 있는 상법 개정 등 각종 규제 입법보다 경제살리기를 위한 법안과 예산에 더욱 힘써주시기 바란다"면서 "상법 개정은 기업경영 전반에 상당한 차질을 야기할수 있다"고 강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해당 성명에는 삼성, 현대차, SK, LG 등 국내 주요 기업 16곳의 사장단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경총 역시 상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달 1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안 등에 대해 기업 경영에 부담을 더해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도 지난 2일 대구에서 열린 전국상의회장 회의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낡은 법과 제도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와 국회를 향해 규제 완화를 촉구했다.

그동안 정치권을 향해 재계가 목소리를 내왔지만, 이번 비상계엄, 탄핵정국에 대해 침묵을 유지하는 것은 어떤 입장을 내더라도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경협의 경우,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기 국정농단 세력에 동조한 '적폐세력'으로 규정되면서 결국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현재 명칭으로 바꾼 경험이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계엄·탄핵으로 인해 흔들리는 상황인 만큼 재계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어느 쪽 이야기를 해도 탄핵 반대 혹은 찬성 측에서 다 욕을 먹을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하기 어려울 듯하다"면서도 "그럼에도 정치적 프로세스가 완결되는 게 좋겠다는 정도의 입장은 그동안의 재계의 자세를 생각하면 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 자본과 정권이 그동안 끈끈이 연계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몸을 사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면서 "지금 대기업들도 아마 눈치를 보는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고 환율 문제가 불거지면 피해를 보는 건 수출 대기업일 텐데 거기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건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경총은 10일 계엄·탄핵에 대한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는 가운데 공식 입장문을 내고 "금속노조의 총파업은 사회 혼란과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는 만큼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을 요구하며 다음 날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계엄·탄핵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탄핵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에는 반대 입장을 낸 것이다.

이에 대해 우석진 교수는 "실정법이 정치적인 파업에 대해 금지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 같다. 억울하면 기업도 입장을 내놓으면 될 것"이라며 "지금 (계엄, 탄핵에는) 가만히 있다가 노동자만 비난하는 건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강병구 교수도 "금속노조 파업에 대해 그런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예컨대 간접적으로 정부와 동맹관계를 나타내는 식의 시그널을 줄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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