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결과 거부하고 국정 마비시킨 프랑스 마크롱

5일(현지시각) 프랑스 생장드루즈의 한 술집에서 손님들이 술을 마시는 동안 TV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셸 바르니에 총리의 사임과 관련해 대국민 연설하는 모습이 방영되고 있다. 바르니에 총리는 전날 하원이 정부 불신임안을 통과시키면서 사퇴하게 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본인에 대한 사임과 조기 대선 요구에 대해 “2027년까지 임기를 채울 것"이라며 “조속히 새 총리를 지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62년 만의 정부 해산으로 혼란을 맞은 프랑스에서 사퇴 요구를 받아온 에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이 5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2027년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있겠다"며 거부했다.
마크롱이 7월 조기 총선에서 과반 의석없이 다수를 차지한 좌파연합과 손 잡기를 거부하면서 9월에 겨우 구성한 바르니에 정부가 1958년 5공화국이 출범한 이래 ‘최단명’ 정부로 기록됐다. 샤를 드골이 대통령이던 1962년 조르주 퐁피두 총리 내각 이후 62년 만에 내각 불신임안이 통과된 것이다. 불신임의 계기는 2025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다. 바르니에 내각은 국가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다며 공공지출을 줄이기 위해 600억유로(약 89조3700억원)을 삭감한 예산안을 제출했다.이에 좌파연합은 복지가 축소될 수 있다며 반대했고, 극우 국민연합(RN)은 이민자 지원 예산 삭감 등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압박이 커지자 바르니에 총리는 의회 표결 없이 예산을 처리하는 헌법 49조3항을 발동하겠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정부 불신임안이 통과된 것이다. 이에 대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다른 사람들의 책임을 절대 떠안지 않을 것'이라며 국가적 혼란을 야기한 책임이 좌파와 극우 진영에 있다고 강조하며 사퇴와 조기 대선에 대한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이를 강력하게 비난하는 가디언 사설을 소개한다.

원문:  The Guardian view on France’s political crisis: belatedly, Macron must look left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혼란과 적대, 비난으로 점철된 두 번째 임기 동안 거만한 고집으로 일관했다. 마크롱은 지난주 황금시간대 TV 연설에서, 임명한 지 겨우 석 달 만에 중도우파 총리가 실각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만에 프랑스가 겪고 있는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대해 일말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마크롱은 ‘이 상황을 두고 나를 탓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게 훨씬 편할 것’이라며 미셸 바르니에의 사임을 받아들이면서 비꼬는 투로 말했다. 마크롱은 오히려 1961년 이후 처음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임 결정을 내린 정치 세력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불신임이 ‘반공화국적’인 방해 행위라고 단정했다. 좌파 성향의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이런 마크롱의 태도를 두 단어로 간결하게 요약했다. ‘노골적 부정’(flagrant déni)라고 말이다.

하지만 비난 공방이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는 이제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그것이 문제다. 여름철 단행된 조기 총선의 재앙적 여파가 여전히 펼쳐지는 가운데 프랑스는 불과 6개월 만에 또다시 정부 기능이 마비돼 버렸다. 마크롱은 의회에서 다수당 지위를 잃었고 마린 르펜의 극우 세력에게 사상 초유의 정치적 영향력을 넘겨줬다.

이제 마크롱은 1년 만에 네 번째 총리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그러나 새 총리가 이전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의회는 여전히 세 개의 정치 세력이 적대적으로 맞서고 있고 내년 7월 이전에는 새로운 선거조차 치를 수 없다. 프랑스 시장이 흔들리고 있고 2025년 예산안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바르니에 전 총리가 물러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연금제도 축소를 반영한 긴축 예산을 마린 르펜이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금 수급자는 그녀의 차기 대선 승리에 꼭 필요한 유권자 집단이다. 마크롱은 며칠 내에 새 총리를 지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르펜의 협조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중도파나 중도우파 인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 역시 르펜이 원하는 시점에서 다시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보다 지속 가능하고 윤리적인 해결책은 마크롱이 여름의 도박으로 얻은 교훈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지금이라도 겸손해지는 것이다. 지난 7월 조기 총선은 근소한 차이로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PF)의 승리로 끝났다. 이 연합에는 사회당과 장뤽 멜랑숑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도 있는데 마크롱은 NPF가 자기 주요 정책, 특히 연금 개혁과 같은 비인기 정책을 뒤집을 것을 우려해 좌파 인사를 총리로 임명하지 않았다.

그건 비민주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결정었다. 마크롱은 의회의 가장 큰 세력인 좌파 연합을 무시하고 적으로 돌려 공화국의 가치를 훼손해 ‘비공화국적’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마크롱의 정치 경력은 사실 르펜과 같은 극우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국민이 그에게 표를 몰아준 덕분에 가능했다. 이른바 ‘공화국적 표’라는 정치적 연대 덕분에 권력을 유지해온 것이다.

지난 7월에도 극우 정부의 등장을 막기 위해 다양한 정치 세력이 급히 연합해 극우를 저지했지만 마크롱은 이를 존중하지 않고 좌파 연합과 협력하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마크롱은 정치적 계산속에서 극우 세력을 간접적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 받고 있다.

자기 임기가 무기력하게 끝나거나 더 나아가 굴욕적인 사임으로 치닫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마크롱은 선거에서 패배한 자가 조건을 제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르펜에게 의존해 다음 정부를 꾸리려는 정치적 계산을 멈추고 이제는 공화국적 가치를 단순히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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