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광장의 노래는 계속 바뀌고 있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2024.12.08. ⓒ뉴시스

광장은 계속 바뀌었다. 광장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사실 한국 현대사에서 광장은 좀처럼 존재하기 어려웠다. 총과 칼로 억누른 정부 때문이다. 광장에 모이기 어려웠고, 광장에 모이면 ‘애국가’나 ‘우리의 소원’ 같은 노래만 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이한열 열사 장례식 대열이 시청 광장에서 ‘아침이슬’을 합창했다지만, 100만 명의 시위대는 최루탄 몇 방에 순식간에 흩어졌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대부분의 시위는 학생과 노동자들이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대치하거나 행진하는 모습을 시민들이 지켜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거리에서 수많은 민중가요를 불렀어도 노래는 운동권 대오 안에서 맴돌았다.

광장이 바뀌고 광장의 노래가 바뀐 계기는 2002년 미선이효순이 사건으로 인한 촛불집회 때부터가 아니었을까. 당시 네티즌 앙마가 제안한 ‘촛불’에 수많은 이들이 호응해 일반 시민들이 대거 참여한 집회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비로소 광장이 광장으로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시민의 참여는 더욱 늘어 촛불집회는 집회의 대명사가 되었다. 대중예술인들의 참여도 많아졌다. 광화문 사거리에 만든 집회무대에서 신해철이 공연을 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그 후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는 광장과 광장의 문화를 완전히 바꾸었다. 집회 경험 없는 일반인들이 광장으로 물밀 듯이 밀려들었고, 집회를 주최한 시민사회단체의 깃발을 내리라는 압박이 쏟아졌다. 조직된 운동권들이 경찰과 몸으로 싸워 광장을 열 필요가 없는 집회, 시민들의 자유발언 비중이 높아진 집회의 주도권은 더 이상 시민사회단체에만 있지 않았다. 다함께 민중가요 ‘헌법 제 1조’를 합창했지만, 무대에는 인디 음악인들이 더 자주 올라갔다. 이 또한 집회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민중의소리

그렇다고 2000년대 이후에는 촛불을 든 평화로운 집회만 있었다고 말하는 건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집권시기 한미FTA 집회에 나선 이들은 한겨울에 물대포를 맞으며 배반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물대포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집권기로 이어졌다. 정권은 경찰버스로 차벽을 만들어 광장을 봉쇄했고, 시민의 발걸음을 가로막았다. 한평생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늙은 농부는 결국 물대포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노래는 계속 변화했다. 광장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들리기 시작했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세월호 참사로 우는 이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촛불집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집회와 행사에는 김목인, 시와, 야마가타 트윅스터, 허클베리 핀을 비롯한 인디 음악인들이 수없이 등장했다. 민중가요처럼 다함께 부르지 않는 노래였고, 운동의 지향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노래도 아니었지만 노래가 광장에 오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무대에 올라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이승환이 자신의 기존곡을 불러도 광장은 그 노래가 다른 의미로 들리게 만들어버렸다. 광장의 힘이었다. 노래의 힘이었다.

2016년~2017년 박근혜 탄핵 촛불광장에는 더 많은 음악과 예술이 공존하는 게 당연해졌다. 두번째달과 실리카겔의 노래가 박수를 받았고, 민중가수들과 노동자노래패의 합창이나 뮤지컬 배우들의 합창이 탄성을 자아냈다. 그만큼 많은 음악인들이 무대에 올랐고, 광장에 다양한 음악이 넘실거렸다. 일렉트로닉 음악인들은 별도로 사운드 트럭을 끌기도 했다. 변화는 계속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다음날인 2016년 12월 10일 오후 광주 금남로에 박근혜 탄핵을 축하하고 ‘박근혜 즉각퇴진, 새누리당 해체, 부역자 처벌’ 등을 새로운 과제로 제시한 7차 광주 시국촛불대회를 열고 있다. 박근혜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7차 촛불집회에 시민 7만여 명이 함께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청소년들과 시민들이 무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연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김주형 기자

그래서 지난 12월 7일 토요일 서울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주최측 활동가가 케이팝과 팝을 계속 틀면서 집회를 진행한 방식 또한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날 집회가 있기 얼마 전부터 주최측의 김지호 활동가는 친근한 대중가요 노래 가사를 바꿔 부르는 방식을 시도하며 시민들과의 소통을 고민했다. 사회를 맡은 활동가 박민주는 에스파의 ‘위플래쉬’에 맞춰 구호를 외치는 방식을 선보였다. 4자씩 끊어지는 구호의 리듬을 바꿔버린 남다른 시도였다. 이 시도는 트위터(X)등에서 열렬한 호응을 얻었는데, 이 모습을 보며 기존의 케이팝 팬들이 응원봉을 들고 나가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게 아니었을까.

이들 역시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 등 다양한 집회에 꾸준히 함께 해온 우리 사회의 일원이며, 특히 팬덤의 일원으로 그동안 부당한 상황에 맞서 함께 행동하며 정치적 훈련을 거듭해온, 어쩌면 더 많이 훈련된 준비된 시민들이다. 단순한 음악팬이 아니라는 얘기다.
운동권 일색이거나 시민들이 참여해도 별도의 언어를 만들지는 않았던 집회의 언어가 2008년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짤과 밈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하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하는 짤이 비분강개한 시민들의 연설과 공존하면서 위력을 발휘했는데, 여기에 더해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부터는 오타쿠/히키코모리 성향의 하위문화 정체성을 드러낸 깃발들이 하나둘 등장했다. 재치 있고 유머 있는 방식이며, 개인이 단체의 이름을 빌린 방식이라는 점, 예전에는 내리라고 압박했던 깃발을 자발적으로 만들고 들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만약 예전처럼 시민사회단체의 조직대오가 주도하는 집회였다면, 최루탄과 화염병이 맞서는 집회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지난 12월 7일 토요일 집회에 대거 등장한 응원봉과 케이팝/팝 음악에 맞춘 구호 제창 역시 마찬가지다. 집회에 응원봉을 든 젊은 시민들만 있었던 건 아님에도 주최측에서 그들의 감각과 지향을 최우선으로 존중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집회에 참여한 중장년세대들도 그 변화와 노력을 수용한 것이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집회가 끝난 뒤의 반응이다. 케이팝이 민중가요보다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민중가요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민중가요를 배워 부르고 싶다고 밝혔고, 중장년세대들은 그날 집회 때 함께 들은 케이팝/팝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며 응원봉을 구입해 자랑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의 문화와 감각을 존중하고 배려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토요일 집회 때 탄핵안 투표 부결이라는 기막힌 상황에도 흥겨운 분위기를 만든 게 적절했는지, 그날 활용한 노래들이 모두 아무 문제가 없었는지, 상품으로 존재하는 케이팝/팝만 활용하는 게 최선이었는지 등등에 대해서는 더 의견을 나눠볼 필요가 있다.

7일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국민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투표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다만 다시 광장이 열리고 광장이 꿈틀대는 상황에서는 상상력의 문을 활짝 열어두어도 좋지 않을까. 지금의 집회는 단체와 개인을 아울러 수 십 만 명이 참여한 집회답게 폭넓은 연령, 지역, 젠더, 취향, 정치적 입장이 공존한다. 한쪽의 지향만 고려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도전해보고 실험해보고 모색해보지 않으면 변화하지 못한다. 반드시 응원봉을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청년음악인의 노래였던 '아침이슬'이 민중가요의 시원이 되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새로운 민중가요가 되어가듯 케이팝이 다른 의미를 갖게 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말이다. 미리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

다들 응원봉을 들어보아도 좋고, 민중가요를 배워 불러도 좋고, 케이팝을 배워도 좋을 이유는 이곳이 광장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배려와 정치적 올바름과 재미와 자유로움이 살아 숨쉬는 광장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장이다. 2024년 겨울 우리는 광장에서 배우고 광장에서 논다. 이렇게 싸우는 사람들이 이기는 건 당연하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