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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만세] 관계와 관계를 잇는 돌봄

의사와 건강리더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진료 통합돌범 서비스 ⓒ필자 제공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최근에는 노인을 돌보는 데에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아이든 노인이든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 가정의 노력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고 참여해서 함께 돌보아야 한다고 하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노인의 돌봄을 위해 지역사회 내 다양한 분야의 네트워크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하는 움직임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초고령사회를 준비하는 해법으로 ‘커뮤니티케어’에 주목했다. 2019년부터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라는 명칭으로, 선도사업에 참여할 지자체를 선정해서 각 지역의 역량을 활용해 새롭게 돌봄을 디자인하도록 했다.

경기도 부천시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자체 중 하나였다. 우리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부천시가 통합돌봄을 준비할 당시 시장과의 면담을 통해 지역사회 돌봄을 위해서는 일차의료기관과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부천시가 이를 받아들였고 협약을 맺어 본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통합적인 돌봄을 위해 필요한 분야를 보건의료, 주거, 생활, 돌봄 분야로 구분하고 케어창구를 통해 필요한 돌봄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 부천의료협동조합은 의사의 방문진료와 지역주민의 돌봄을 결합한 건강돌봄 사업으로 참여했다. 한국의 의료협동조합이 30년의 역사 속에서 실천해온 주민 중심의 건강돌봄을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으로 구현한 것이었다.

2019년 당시만 해도 의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진료는 지금보다 더 생소하게 여겨졌다. 방문진료가 어떤 효과를 가지게 될지 아직 누구도 알지 못했을 때였다. 시에서 건강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노인을 우리에게 의뢰하면 의사와 건강리더로 교육을 받은 지역주민이 함께 찾아갔다. 대부분 혼자 살거나 협소한 관계망 안에 살고 있는 분들이었다. 큰 질병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합병증이나 큰 병으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었다. 고립된 외로움이 병을 키우는 경우도 많았다.

의사가 집으로 방문하게 되면 환자가 살아온 과정과 환경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아무리 큰 병원을 다녀도 통증의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어떤 분이 있었다. 의사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 의료기록을 참고하고 청진을 해보아도 큰 질병의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혹시 마음 아픈 일이 있는지를 물었다. 쌍둥이 동생의 임종 소식에도 가보지 못한 설움이 오랜 세월 마음속에 응어리지어 몸까지 아팠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다.

마음의 위로를 충분히 받고,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할 수만 있다면 통증이 이전보다 나아질 수 있다. 의사의 진단과 처방이 있은 후, 함께 갔던 건강리더가 매주 방문하여 이야기 나누고 건강을 체크하고 운동을 하면서 그분은 이전보다 좀 더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통합돌봄을 하면서 지금까지 5년간 300여 명이 그렇게 의사를 집에서 만났고, 건강리더가 매주 방문하여 건강을 관리했다. 건강리더가 방문한 기간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4년간 이어졌다.

의사와 건강리더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진료 통합돌범 서비스 ⓒ필자 제공

대부분의 건강 문제는 단지 신체의 문제 생리적 질병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인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무엇을 먹는지, 어떤 집에서 사는지, 평소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하는지, 생활습관은 어떤 지가 중요하다. 오랫동안 고립되고 우울감이 깊어지고 신체의 노화까지 와서 통증이 만성이 된 노인은 누구보다 더 아프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것이 아픔의 가장 큰 원인이 되기도 하다.

의사와 건강리더가 직접 집으로 방문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처방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내가 나를 돌보기 위한 작은 움직임 하나가 나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그 과정에 함께 동참해 주는 이웃과 공동체가 있다고 하는 신뢰. 통합돌봄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여야 한다. 정해진 서비스의 목록의 나열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필요에 반응하는 관계가 중심이 되어야 행복한 돌봄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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