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의힘은 ‘부정선거론’에 입장 분명히 해야

부정선거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안착되지 못한 국가에서 흔한 현상으로 우리도 군사독재시절까지는 횡행했다. 그러나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부정선거는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상식이다.

2024년 난데없이 부정선거론이 되살아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 해제 이후 국민의 분노에 맞서 발표한 ‘29분 담화’에서 부정선거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이라며 북한의 선관위 시스템 해킹, 데이터 조작, 방화벽 부재, 극히 단순한 비밀번호 등을 막무가내로 쏟아냈다. 급기야 ”이번에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했다“며 중앙선관위 등에 병력을 투입한 것을 정당화했다. 윤 대통령이 평소 부정선거론에 심취해 있었다는 참담한 정황이 속속 수면 위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굳이 전문가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사실관계가 모두 틀렸다. 중앙선관위도 즉각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 제기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자기부정”이라며 강하게 “규탄”했다. 국민들 역시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반응이다.

그러나 부정선거론은 극우세력의 음모론으로 수년간 음지를 배회하며 세력을 키웠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극우 유튜버들의 영상이 주로 고령층의 카톡방을 타고 크게 번졌다. 여기에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려는 중국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선관위 서버의 화웨이칩을 원격조종한다’ ‘사전투표를 하면 민주당 지지표로 둔갑한다’는 다양한 버전의 음모론이 합세했다. 윤 대통령 담화에서 중국이 언급된 배경으로 짐작된다.

대통령이 음모론을 신봉하고 국민 앞에 계엄의 근거라고 들이댔다. 그런데도 여당이 탄핵을 거부하면서 이에 동조했으니 부끄럽지 않은가. 국민의힘은 그간 극우세력의 부정선거론을 방치했고, 나아가 이들에게 비위를 맞추며 지지층으로 적극 포섭했다. 부정선거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 선거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듯한 주장도 종종 내놓았다. 장관이나 전현직 국회의원 중 부정선거론을 따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선관위 말마따나 108석이나 가진 정당이 부정선거론에 젖어있다는 것은 “자기부정”이다.

시스템이 해킹돼 부정선거가 이뤄진다면서 대선, 총선에는 뭐하러 출마하나? 결국 당선되면 괜찮고, 낙선하면 부정선거라는 식이다. 오죽하면 한동훈 전 대표가 사퇴의 변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자들, 극단적 유튜버들 같은 극단주의자들에 동조하거나 그들이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공포에 잠식당한다면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했겠는가. 물론 한 전 대표 역시 사퇴할 때까지 부정선거 주장과 세력을 뻔히 알면서도 끊어내지 않은 책임이 크다. 이제 국민의힘은 거리로 나가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항쟁할 것인지, 선거시스템을 인정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금배지 달고 앉아서 국민 세금 꼬박꼬박 받아먹으며 부정선거 주장에 동조·합세한다는 것은 국민이 용납하기 어렵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