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1시경부터 약 26시간 동안 남태령역 도로 위에서는 차벽으로 길을 막은 경찰과 ‘차 빼’라고 외치는 시민이 대치하고 있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이 구성한 ‘세상을 바꾸는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대행진이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인 남태령고개에서 경찰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전봉준 투쟁단’은 전남과 경남에서 출발해 일주일간 전국의 도로를 누비며 21일 서울로 입성할 계획이었다.
일단 농민들의 트랙터 행진을 가로막은 경찰의 처사는 아무런 명분이 없다. 농민들은 광화문에서 열리는 집회에 함께하기 위해 말 그대로 ‘가는 길’이었고 경찰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것을 가로막을 권한은 없다. 내버려 두면 잘 지나갔을 트랙터 행진을 막아서 일대의 교통을 방해한 것도 경찰의 차벽이었다.
행진하는 농민과 이를 가로막는 경찰의 모습은 과거에도 여러 번 보아왔던 광경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농민들만의 투쟁으로 끝나지 않았다. 남태령의 소식이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전해지면서 집회를 끝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남태령역으로 향했다.
시민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남태령역 인근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시민들은 급속히 불어났다. 이날 새벽과 다음날 아침에도 SNS를 통해 소식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은 계속 모여들었다. 전농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전농TV’의 구독자는 800명 수준이었으나 전농에서 게시물을 통해 ‘라이브 방송을 위해 구독을 해달라’고 호소하자 삽시간에 구독자가 3만명을 넘어섰다. 전농TV는 곧바로 라이브 방송을 시작해 이날 밤의 상황을 전했다.
농민 행진단과 경찰 사이의 대치선이었던 남태령고개는 또 다른 광장이 됐다.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추위 속에서도 농민과 시민은 밤새 자리를 지켰고, 이 모습을 지켜본 시민들은 배달음식을 결제해 배달시키고 핫팩과 담요 등 보온용품도 보내왔다. 전철이 다니는 시간이 되자 남태령역 앞은 더 많은 시민들로 채워졌다.
결국 경찰은 차벽을 치우고 길을 텄다. 애초에 경찰이 막을 권한도 이유도 없는 차로 봉쇄였지만 이 길을 열기까지 밤을 꼬박 새며 항의하고 당연한 권리를 요구한 사람들의 힘이 없었다면 열리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길이 열렸다. 경찰의 봉쇄를 치우고 길을 열어낸 것이 농민과 시민의 연대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윤석열 체포’라는 이날 농민의 구호는 광화문에 모였던 시민들의 구호이기도 했으며, 많은 시민이 농민들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를 외면하지 않고 실제 몸을 움직여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