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정리하는 12월 초에 우리는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되었다. 45년 만에 친위 쿠데타를 목도한 것이다. 일상적인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린 이 기가 막힌 노릇 앞에서 민중은 화가 날 대로 났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명확하게 민중의 주권을 반세기 전으로 후퇴시킨 행위에 분노한 것이었다. 헌법재판소의 인용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에서도 흥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당연한 것은 없을 수 있다는 것, 위험은 도처에 깔려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은 작업장 안에도 있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향상시키거나 지키기 위해 사업주가 해야 할 역할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는 줄어들지 않고 특히 중대재해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법을 안 지키는 것이 일상화된 기업들이 중대재해법 제정 이후에는 다소 눈치를 보이는 모습을 보이지만 정부의 제대로 된 감독과 검찰의 기소,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이 자리를 잡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새다.
학교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피해자가 2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학교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피해자 국가 책임 손해배상청구소송제기 기자회견에서 증언을 하고 있다. 2023.06.28 ⓒ민중의소리
중대재해법에서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모든 사업장 경영책임자에게 중대한 책임을 묻는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어도 주요 몇 가지 사항을 제대로 지키면 ‘면책’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관계법령을 지킬 것’, ‘위험성 평가를 실시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외면되어 왔던 위험성 평가에 대한 관심을 경영자들이 먼저 보였다.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아도 벌칙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노사 모두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중대재해법 이후 노조는 여전히 관심이 없지만 사업주들은 ‘알아서, 열심히(?)’ 위험성 평가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정부가 마련한 ‘위험성 평가 지침’에 따르면 작업장 안에 존재하는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모든 위험’을 찾아 개선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굉장한 의미이다. 이에 따르면 ‘작업환경측정’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작업환경측정 대상 항목은 채 200개가 안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화학물질만 5만여 종에 이른다. 학교급식 종사자에게 폐암을 가져다주는 조리흄도, 쓰레기 소각장 노동자들에게 암을 일으키는 다이옥신도 작업환경측정 대상이 아니다. 개별 노동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건강영향, 사고 가능성이 있는 작업과 환경은 모두 다르다. 이를 작업환경측정 대상으로 일일이 명시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작업환경측정은 작업장의 최소 관리 기준이다. 뿐만 아니라 소음이 85데시벨을 넘지 않으면 개선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작업환경측정 기준이다. 그러나 위험성 평가에서는 70데시벨이 나와도 노동자가 힘들어하거나 정신적으로 피폐함을 느낀다면 개선대상이 된다. 단 1의 위험도 0으로 수렴할 수 있도록 개선하라는 것이 위험성 평가의 취지이다.
이제 노동조합이 바빠져야 한다. 벌칙이 없어 사문화된 조항을 다시 살려내 노동자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업장 안에 있는 불쾌함, 불편함, 아차사고(사고가 발생할 뻔한 경우) 등을 이 잡듯 뒤져야 한다. 그 경우가 어떤 경우든 중요하지 않다. 건강에, 안전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모두 찾아야 한다. 찾을 권리가 있고 개선을 요구할 권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노사의 안전보건 논의에서는 항상 ‘법대로 했다’, ‘기준을 넘지 않는다’라는 이유를 들어 사측은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험성 평가의 기준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논리이다.
2025년에는 사업장 안에서도, 거리에서도, 노동자도, 시민도 위험성 평가를 제대로, 전면적으로, 확실하게 하길 바란다. 우리 앞에 발생할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모든 위험’을 찾아 없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