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 등을 촉구'하는 트랙터 대행진이 1박2일째 이어진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인근에서 집회 참가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12.22. ⓒ뉴시스
자정이 넘은 시간. 경찰이 남태령 8차선 도로를 가로로 막고 있었고 경찰차와 기동대버스가 여기저기 즐비하다. 차는 도로를 통과할 수 없었고 유턴해서 돌아가야 했다. 다행히 인도를 통제하지는 않았다. 나처럼 뒤늦게 온 이들이 여기저기 잰걸음으로 두 명씩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10분을 걸으니 ‘전봉준체포단’,‘윤석열체포 구속’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트랙터들이 보였다. 아, 경찰에 막혀 앞으로 가지 못한 농민들의 염원이구나. 좀더 10분을 더 걸으니 구호 소리와 음악 소리가 들린다. 드뎌 형형색색의 불빛이 보인다. 각자가 들고 온 응원봉과 촛불들이 가득하다. 빛이구나. 다른 세상을 열, 아니 열어가고 있는 빛이구나!
억압받던 그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쓰고 옷을 동동 맨 사람들은 대부분 10대에서 30대로 보이는 시스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들 800명~1000명 정도 앉아있었다. 거의 95%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스여성이라고 (시스젠더_신체적 성별이 자신이 느끼는 성별과 일치하는 사람)라고 칭하는 이유는 사회적 편견으로 여성으로 보이는 외모라고 여성이라고 단정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에도 스스로를 젠더퀴어라고 말하며 발언한 이가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 자신을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여성이라고 소개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고대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런 자리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조금 부끄럽지만, 저는 약 6년 동안 우울과 불안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현재 저에게 이 상황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슬프고 불안합니다.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렵고 매일 밤 약을 먹어야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비단 저만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중략) 농민분들의 길을 막고 있는 지금도 저는 우울보다는 분노가 느껴집니다. (중략) 악은 선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깁니다.”
이 발언에서 왜 젊은 여성/성소수자들이 거리로 나오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녀들은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억압받고 있다. 20대 여성 자살률 1위, OECD 가입이래 줄곧 성별임금 격차 1위인 나라,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며 그나마 있던 성평등정책을 줄이고, 여성을 지우고 예산을 지웠던 윤석열 정권에서 여성혐오는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전 정부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은 최악의 정점을 찍은 정권이다. 그 결과 윤석열 정권 아래서 성폭력과 여성 대상 흉악범죄는 늘어났다. 자신의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연애하자는 거절했다는 이유로, 아니 재미로 딥페이크로 능욕하는 딥페이크성폭력이 넘쳐났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라도 2023년 자살을 시도한 10대·20대 여성이 1만2287명이었다. 전체 인구 대비 31%다. 끊이지 않는 젠더폭력과 불안의 경험은 이제는 비인간적인 혐오폭력의 사회를 끝내야한다는 절박함으로 광장에 나온 것이다. 어디를 가도 모욕당하지 않고, 최소한의 생존을 누리는 것도 쉽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가 그/녀들을 광장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남태령고개에 농민들과 연대한 시민들 ⓒ전농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배제당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 장애인은 생존도 할 수 없는 작은 기초수급이나 받으며 시설이나 집에서 사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는 사회에서 그 ‘당연의 벽’을, ‘당연의 차별’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죽기 직전까지 몰린 사람들이 광장에 나온 것이다. 살아야겠기에, 동료시민들을, 친구를 살려야겠기에 나왔는지 모른다. 우울을 넘어 분노로, 연대로 저항한 것이다.
실제 광장은 외롭지 않았다. 나는 탄핵을 외치던 여의도에서도, 그리고 ‘차빼라’를 외치던 그 추운 밤에도 외롭지 않았다. 나와 함께 뜻을 외치는 사람, 나와 모양새가 다르더라도 들어주는 그 경청과 수용의 문화를 느꼈기 때문이다. 인권운동가로서 먼저 남태령으로 가자고 제안하지 못하고서도 그 긴긴밤을 혼자 있을 용기가 없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그곳에 인사 한번 건넨 이들의 가진 포용성과 개방성을 생각하며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실제 그곳에는 큰무리를 지어온 사람들보다 혼자거나 두세 명이 온 사람들이 많았다. 추웠지만 등이 시립지 않을 정도였다.
밤새 노래와 춤, 짧은 발언으로 밤을 지새웠다. 하필 1년 중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지였다. 그래도 이곳저곳에서 보내준 밥과 음식을 먹었다. 핫팩과 초콜릿 등 간식도 나눔하고 나중에는 어묵차도 들어왔다. 남태령에 못오는 분들이 선결제로 수많은 지원을 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함께하지는 못해도 마음은 같은 방향을 이어지고 있었다. 추워서 목도리와 머플러를 건네받아 따뜻하게 밤을 샜다. 함께 구호를 외치고 일어나 춤을 추기도 했다. 노래는 ‘다시 만난 세계’나 ‘불타오르네’ 등 대중가요만 부르지 않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 연대투쟁가, 농민가 등 민중가요도 불렀으며, 참가자들은 민중가요를 가르쳐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균열을 내는 사람들이 만드는 다른 세상
사실 그/녀들은 이미 오래전에도 거리로 나와 차별과 착취에 반대하며 소리 내었다. 다만 자각되지 못했을 뿐인지 모른다. 코로나시기를 거치면서 공개적이고 열린 광장이 사라져 함께 모일 공간은 없었다. 또한 중년남성이나 대표에게만 발언권이 주어지는 집회에서 그녀들이 말할 기회는 잘 오지 않았기에 더욱 그/녀들은 있었으나 보이지 않았으리라. 자유발언의 기회가 많은 대중운동의 장에서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그/녀들은 온라인이든 각자의 현장에서 소리를 내고 집회를 나가고 공부를 하고 의견을 모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열린 태도와 연결의 감각은 감동적이었다. 세계와 나가 연결되었음을, 자신의 해방이 타인의 해방과 연결되었음을 호소하는 발언에서 나타났다. 자신의 의제가 아니어도, 예를 들어 노동자이니 노동권에만 관심을 갖거나 여성이니 성평등에만 관심을 갖거나 하지 않았다. 발언자의 상당수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대해 언급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팔레스타인학살까지 언급하는 모습에서 노동자국제주의, 세계시민주의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애국주의를 뛰어넘고 있음에 울컥했다.
12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역(지하철 4호선) 집회 현장 모습. 2024.12.22. ⓒ김도희 기자
어쩌면 기존 운동권(소위 노조 및 단체활동가들, 전문가들)들이 자신이 담당한 의제에 몰두하다보니 흐려졌던 연결의 감각, 해방의 연결성이 돋보였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촘촘하게 억압하고 있기에, 그 질서를 깨지 않고는 온전히 나로서 살아갈 수 없기에 그/녀들은 ‘해방의 연결성’을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또한 경찰폭력에 가로막힌 기존 운동세력의 숱한 경험이 위헌적인 집회시위의 자유 침해에 대해 무력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그/녀들은 틀에 갇히지 않았다. 헌법과 인권기준을 배운 그/녀들은 ‘이건 아니다’라며 ‘곁에서 함께 있자’라고 호소할 정도로 조직가였다. 그야말로 분수처럼 인권이 분출되어 넘쳐났다. 넘치는 열망은 즐겁기까지 했다. 대중가요를 부르며 춤을 추고 불나비를 따라부르며 응원봉을 흔들면서 추위를 이겨냈다. 즐겁지 않다면 혁명이 아니라는 말처럼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며 즐겁게 저항하는 법을 그날 밤 우리는 다시 확인했다.
그 힘으로 기존 조직 운동이 가진 관성을 넘어 경찰체제에 균열을 내었기에 트랙터들이 대통령 관저가 있는 한남동까지 행진할 수 있었다. 비록 상경한 모든 트랙터가 아니라 10대만 행진한 것이기는 해도, 남태령의 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 추운 동짓날을 농민들의 곁에서 밤을 새는 연대와 저항을 몸소 보여줬기에 다음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고, 그것이 경찰 차벽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윤석열의 악행만이 아니라, 다양한 의제를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의료민영화에 대해, 노동탄압에 대해, 성차별적 노동환경에 대해, 여성농민에 대한 차별에 대해, 장애인차별과 성소수자인권에 대해 말이다. 광장은 학습의 공간이었고 다른 세상을 만드는 장이 되어가고 있다.
‘누구 빼고 누구 나중에’가 아니라 ‘함께 같이’
함께 했던 사람들은 서로 배우며 사유한다. 조금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거나 차별적이라면 바로 지적해달라며 발언하는 이도 있었다. 사람들은 친절하게 존엄과 평등을 말할 수 있었다. 25년 농업을 했다는 여성농민의 발언은 그러한 친절함과 명확함 속에 있었다. 그녀는 “사실 여태까지 대통령 중에 단 한 명도 농업을 생각해 준 대통령은 없었다”며, 양곡관리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생산할 때 천 원이 들었으면 천원을 매기고 2천 원이 들었으면 2천 원을 매기는 법이라고. 그러면서 그녀는 하나를 더 부탁했다. “여성 농민의 법적 지위 보장이 35년째 미뤄지고 있다”며, 외롭게 싸우고 있으니 남성농민들도 포함해 연대해달라고, ‘성평등한 농촌’을 만들자고 말했다.
12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역(지하철 4호선) 집회 현장 모습. 2024.12.22. ⓒ김도희 기자
그래서일까. 사회자가 그의 발언이 끝나고 “누구 빼고 누구 나중에가 아니라 함께 같이 갑시다”라고 말했다.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할 때마나 민주당을 포함해 기득권들은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며 ‘나중에’라고 했다. 여성인권 장애인인권, 이주민인권을 말할 때마다 나오는 ‘나중에’ 논리를 사회자가 콕 짚어준 것이다. 그 순간 2022년 인터뷰했던 20대 여성농민이 떠올랐다. 그녀도 이곳에 왔으려나···
이런 존엄과 평등 그리고 즐거운 광장의 모습이지만 아직 우리가 갈 길은 멀다. 우리가 희망의 빛을 만들고 있지만 그 희망의 빛이 잠시 파르르 떠오르는 성냥개비의 불로 그치지 않고 들불이 될 수 있으려면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더 많이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른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제안해야 할 것이다. 실제 남태령의 밤을 보냈던 이들은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남태령이라는 이름으로 기금을 보내고 있다. 노동혐오를 넘어 연대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만들 세계는 단지 윤석열만 없는 세상이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배운 친절과 존엄으로 춤추며 해방의 체제를 일구자고 다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