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은 대한민국과 모든 국민에게 ‘결정적인 날’이었다. 상식을 벗어난 기행과 거짓의 술수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비상계엄’을 자행하다니! 시민들과 국회의원의 발 빠른 진압으로 비상계엄이 무산된 뒤, 이에 대한 정치적 법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면피용 내란수괴 윤석열의 담화는 역시 ‘역시나’였다. 오직 순간만 사는 인간인지라 한남동 관저에 숨어 지내며 법적, 정치적 책임 대신 수많은 모략과 내란에 대한 내전을 통해 숨통을 이어가며 대한민국과 한반도에 어떤 일들을 벌일지 모르는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다.
매일 매주 수많은 시민이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와 대한민국이 내란과 전쟁의 격란 속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려고 추위와 삶의 고달픔을 무릅쓰고 있다. 지금 내란수괴 윤석열과 매국 세력들의 준동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의 운명이 우크라이나 혹은 팔레스타인처럼 될 수 있다는 절박함에 말 그대로 ‘아수라장’에 전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탄핵 구속 촉구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가 응원봉과 손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24.12.13 ⓒ뉴스1
‘아수라’는 원래 고대 인도 신화에 나오는 착한 신이었으나 불교의 수호신 제석천(帝釋天)과 싸우면서 악한 신으로 변했다고 한다. 시기와 증오심이 가득하여 싸우기를 좋아하여 전쟁의 신이라고도 했는데 아수라가 하늘과 싸워 이기면 세상에 빈곤과 재앙이 온다고 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후 어느 정권에서도 보지 못한 대한민국의 법질서 파괴와 성장이 멈춘 지 오래다. 이태원 참사 등으로 인해 위로가 필요한 이웃들 또한 여전히 많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이곳을 전쟁의 참화로 만들고 싶어 하는지 차마 눈뜨고 지켜볼 수 없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현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야말로 현대판 아수라가 윤석열 정권이 아닌가 싶다.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을 천명하였다. 조선말 왕조에 대항하여 동학을 일으킨 최제우는 ‘사람(人)이 곧 하늘(天)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사상으로 주권재민의 헌법적 질서를 이미 50여년 전에 사상으로 실천으로 완결시켰다. 아수라가 정의의 상징인 하늘과 싸워 이길 수 없음에도 윤석열은 내란과 외환을 통해 정의(正義)보다는 부정(不正)을 획책하고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을 통해 세상을 불안과 혼미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것만이 궁극의 목적인 양 온갖 술수를 부리고 있다. 결국 아수라를 물리치는 것은 결국 촛불과 응원봉을 가진 국민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의 주인이고 하늘인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정의를 구축할 때 아수라는 이 땅에 발을 못 붙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아수라를 만들어낸 윤석열 정권 대통령과 권위자에 책임 넘기고 내란에 복종한 관료들 국민의 힘으로 관련자들 처벌해야 멈출 수 있다
최근 방송이나 언론에서 평론가들은 윤 정권의 각료나 재판관들의 면면들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대통령이 탄핵 심판에 넘겨지면서 국무총리와 부총리는 성격이 어떠해서 이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그들에게 권한을 주었을 때 평소의 모습과 달리 180도 돌변하면서 적지 않게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이성과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해 의심을 가졌던 심리학자가 스탠리 밀그램이다. 소위 ‘아이히만 실험’이라는 권위에의 복종 실험에서 그는 사람들의 예측을 깨고 실험에 참여한 65퍼센트가 450볼트의 전기 버튼을 눌러 사람들을 기절하는 상황까지 몰고 가는 것을 밝혀냈다. 실험에서 인권이나 존엄성의 가치를 팽개치고 끝까지 전기 버튼을 누른 사람들의 변명은 “난 단지 명령 집행자의 지나지 않았다”라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당시 내가 책임을 질 테니 버튼을 누르라고 했던 흰 가운 실험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신은 철저하게 권위에 복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흰 가운을 입은 한 사람은 문제를 내고 틀렸을 때 버튼을 누르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참가자가 괴로워하고 있어. 더 이상은 위험해. 중지하자!”라고 말을 꺼냈을 때 전기 볼트가 150볼트에 달한 시점에 버튼을 누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로 비상계엄 해제를 선언 가운데 긴급 소집된 회의를 마친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및 국무위원들과 국무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2024.12.03. ⓒ뉴시스
여기서 우리는 소위 관료들의 복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나 권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고 악한 행동을 하는 책임 소재가 애매하면 애매할수록 사람들은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인권이나 양심의 작용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조직의 우두머리가 될수록 양심이나 인권은 작동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집단이 커지고 권한이 커질수록 개인의 성격이나 양심이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조직 구성원이 법규를 준수하고 통제하고 감독하는 체제의 위반을 목도하고 있는 요즘 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촛불과 응원봉을 통해 “내란은 위헌이 아닌가?”, “당신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어!”라고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럴 때 관료들의 내적 통제 위반을 멈출 수 있다. 그리고 이번 내란의 주동자들을 제대로 감시하고 처벌하는 역사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시국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행동일 것이다.
비록 윤석열이라는 아수라를 만나 잠시 힘들고 괴로워 삶이 아수라장처럼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희망과 열정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밤이 가면 동트는 아침이 오고 추위가 가시면 따뜻한 봄날이 온다. 누군가 어떤 술수를 쓰더라도 세상은 순리대로 흐른다. 아수라장 같은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현실일지라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주권을 행사하는 순간, 아수라는 존재 기반을 잃고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