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잔인한 12월이다. 12월 3일, 몰염치한 광자의 내란을 마주한 이후 좀처럼 일상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는 눈을 뜨고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뉴스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나를 본다. 내란 세력에 대한 분노와 시민들에 대한 고마움이 엉켜 감정이 널뛰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연말이라 곳곳에 마무리할 일들이 쌓여 있는데 말이다. 그러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소식을 접했다. 손쓸 새도 없이 수많은 이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가 떠올랐다. 쿵, 마음을 지탱하던 지지대가 무너진 것 같다. 어제는 내내 힘들다가 자정을 넘긴 시간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다 비로소 내 상태를 알았다. 아,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많이 불안하고 화가 나는구나. 비참하고 슬프구나. 내 마음이 이렇게 참담한데 유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제주항공 여객기 충돌 폭발 사고 이튿날인 30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대합실에서 한 유족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다. 2024.12.30 ⓒ뉴스1
일상을 지키기 위한 일상 안팎의 싸움
12월 3일부터 지금까지를 한 줄로 줄이자면, 일상을 지키기 위한 일상 안팎의 싸움이었다.
혼돈의 그날 밤부터 다시 되짚어본다. 계엄령 선포가 있던 날, 대부분의 고등학교 1~2학년은 기말고사를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우리 학교는 5일부터 시험이었고, 학생들은 다음날 학교가 정상 운영되는지 물었다. 사실 나도 철 들고는 이런 일이 처음이었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국회로 모이고 있지만 만약 비상계엄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시험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안심시키고 싶었다. 별도의 알림이 있기 전에는 정상적으로 학교가 운영된다고 알고 있으면 된다고 우리 반 단체카톡방(반톡)에 공지했다. 아이들에겐 계엄만큼 무서운 시험일 것이다.
밤늦게 반톡이 활발해졌으니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헌법 제77조 계엄에 대한 조항을 알려주고,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때와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는 요건을 확인하게 하고, 지금의 계엄 선포가 헌법에 부합하는지 물었다. 지금까지의 계엄령 선포 사례도 알려 주었다. 학교 가면 의견을 나눠보자 했다. 그렇게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될 때까지 한밤중 반톡에선 짧고 생생한 교육이 진행되었다.
돌아보면 이렇게 그날을 회상할 수 있는 건 계엄 선포를 듣고 곧바로 국회 앞으로 뛰어나간 시민들,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선 시민들 덕이다. 또한 빠르게 국회에 모여 계엄 해제를 요구한 국회의원들 덕이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명령을 수행하지 않은 군인들 덕이다. 죽음을 불사한 그들 덕분에 멀쩡한 일상을 맞았다. 새벽 일찌감치 도착한 학교에서 만난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은 벅차게 소중한 일상을 일깨워주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란범은 대통령 권한만 중지되고 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일상은 전혀 일상적이지 않다. 겉으론 일상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일상의 안팎에선 끝없는 싸움이 진행 중이다. 12월 3일 국회 안팎에서 진행된 내란 세력과 시민들과의 싸움이 형태만 바뀐 채 이어지고 있다. 나의 일상에서도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내란 세력과의 싸움이 진행 중이다.
새로운 세대가 밝히는 빛에 기대어
너무나 명백한 내란 행위가 아직도 제대로 종식되지 않았고,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려 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서로가 밝히는 희망의 빛으로 일상을 지키며 싸우고 있다. 몇몇 사람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는 일상이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지켜지고 있다.
학교에서도 그랬다. 내란 시도 바로 다음 날인 12월 4일에는 어느 역사 선생님이 밤새 분노로 만드셨다는 ‘12.3 비상계엄사태: 어젯밤 이야기’ 계기 수업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전교조에서는 4일부터 바로 윤석열 즉각 퇴진 촉구 교사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이후로 고등학생들도 시국선언에 나섰다. 교사들의 시국선언도 확대되어 국어교사, 사회교사, 역사교사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이런 움직임 덕분에 내란범이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상황에서도 분노를 교육으로 승화(?)시켜 학교에서 두 발로 버티며 교사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학교 밖에서는 더 큰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시민들의 응원봉 집회는 절망 따위를 시원하게 날려 버렸고 기어이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안을 가결하게 했다. 특히 20~30대 여성 시민들의 대대적인 집회 참여는 영하의 날씨에도 마음에 불을 지폈다. 연대의 힘은 기어이 전봉준투쟁단 트랙터와 함께 남태령 고개를 넘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함께이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는 새로운 세대가 밝히는 빛에 기대에 몸과 맘을 추스르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부로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 2024.12.04. ⓒ뉴시스
누군가의 작은 지지대가 되어야겠다
국난 극복이 취미여서가 아니다. 때론 견딜 수 없이 힘든 일상이지만 이마저도 소중한 삶이므로. 우리 삶을 저들이 짓밟게 놔둘 수는 없기 때문에 힘을 내어 곳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렇게 일상을 버티다 여객기 추락 사고 소식을 접했다. 또다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참사를 대하니 가까스로 유지하는 일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다. 이렇게 무너질 순 없지 않은가? 내가 응원봉을 들고 함께 한 젊은 세대들에게 기대에 힘을 냈듯이, 나도 지금 몸과 맘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의 작은 지지대가 되어야겠다. 곁에서 함께 버티는 버팀목이 되어야겠다.
지금 우리의 싸움은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닐 것이다. 멀게는 동학농민운동으로부터 80년 광주를 넘고,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와 촛불혁명을 넘어 지금까지 이어온 역사가 우리를 이렇게 바꿔놓았을 것이다. 권력이 민의를 거스를 땐 거침없이 일어나도록, 군인이 시민에게 폭력을 행하지 않도록, 탄압당하는 이웃의 옆을 함께 지키도록. 한강 작가의 질문,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일은 현실이 되었다. 그런 것처럼 지금 우리가 만드는 역사는 다시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 너무나 아프지만 물러설 수 없는 싸움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고통의 시간을 건너자. 누구보다 마음이 아플 여행기 참사 유가족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 참사를 내란 지속에 이용하려는 시도는 단 하나도 허용하지 말자.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음이 힘든 이들의 옆을 지키자. 함께 모여 애도와 응원을 나누고, 우리의 일상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내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큰 걸음을 이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