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정리하며 그해의 음반이나 노래를 뽑는 일은 이제는 상당히 고루한 일이다. 물론 여전히 몇몇 대중음악 시상식이 열리고, 매체에서 그 해의 이슈와 히트곡을 정리해보곤 하지만 대중의 취향은 제각각 갈라져 있는데다 대중음악평론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는 갈수록 줄어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날마다 발표되는 음악이 너무 많고, 음악을 음반 단위로 듣는 이들이 줄어들었다는 사실 또한 이 같은 방식의 연말 결산을 무용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2024년의 음반과 노래를 뽑는 일이 얼마나 유용한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 해의 음반과 노래를 뽑는 일은 비평가가 자신의 관점과 판단을 드러내는 중요한 작업이다. 또한, 음악마니아들에게는 놓친 음악들을 몰아듣는 기회를 준다는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며칠 전 한국일보에서 진행한 대중음악평론가 10인의 올해의 노래·앨범 선정 작업을 참고할만한 이유다.
세대, 젠더, 전문 장르가 조금씩 다른 대중음악평론가 10명의 의견을 모은 이 작업에서 가장 많은 지목을 받은 음반은 수민과 슬롬의 [MINISERIES 2]이고,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만세]가 뒤를 이었다. 소음발광의 [불과 빛]은 네 명의 지지를 받았다. 검은잎들의 [비행실], 모허의 [만화경], 미역수염의 [2], 이승윤의 [역성], 혁오와 선셋 롤러코스터의 [AAA]도 두 명 이상이 거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최소한 이 음반들 정도는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결과는 대중적 인기와 비평적 찬사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오래된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한국 대중음악계가 꾸준한 변화와 세대교체 중이라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도 있다. 이들 대부분이 40대 이하의 음악인이거나 정규음반을 아직 다섯 장 이상 내지 않았다는 점은 새로운 음악인들이 끊임없이 등장해 남다른 음악을 내놓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음악마니아들에게도 끊임없는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증거다. 반면 올해의 노래 부문에서는 대중적인 히트곡들이 눈에 띈다. 여섯 명이 에스파의 ‘Supernova’를 꼽고, 비비의 ‘밤양갱’을 다섯 명이 골랐다. 그러다보니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 뉴진스의 ‘How Sweet’가 세 명의 선택을 받은 결과 역시 당연하게 느껴진다. 반면 사비나앤드론즈의 ‘아무도 모른다’가 세 사람의 호명을 받은 사실은 이채롭다. 이영지의 ‘Small Girl’, (여자)아이들의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데이식스의 ‘Welcome To The Show’는 두 평론가의 지명을 받았다는 사실 역시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음악 ⓒpixabay
사실 이 작업에 참여한 내가 고른 곡과 음반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다른 매체에서 진행한 작업을 길게 인용했다. 나는 검은잎들의 [비행실],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만세], 모허의 [만화경], 미역수염의 [2], 소음발광의 [불과 빛] 음반 다섯 장을 골랐다. 노래로 고른 다섯 곡은 강아솔의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로제의 ’APT.‘, 모허의 ’박수기정‘, 비비의 ’밤양갱‘, 에스파의 ’Supernova‘다.
여기에 강아솔의 음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김수철의 [김수철 45주년 기념 앨범 너는 어디에], 라이즈의 [RIZING], 반도의 [반도지형도], 브라운의 [Monsoon], 브로콜리너마저의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선우정아의 [너머(2. White Shade)], 솔루션스의 [N/A], 옥상달빛의 [40], 이선지의 [Eternal], 혁오와 선셋 롤러코스터의 [AAA], 휘의 [humanly possible] 정도를 포함하면 내가 뽑은 2024년의 추천작이 대략 완성될 것이다.
그런데 이 리스트에 포함하지 못하더라도 수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음반은 훨씬 많다. 실제로 내가 매달 추천음반을 정리하면서 고른 음반들은 훨씬 많다. 내가 추천하지만 최종 20여장 안에는 포함하지 않은 음반, 내가 추천하지 않았지만 동료 음악평론가들이 추천한 음반, 내가 아직 들어보지 못해 추천하지 않은 음반까지 합치면 2024년의 추천작은 두 배 이상 늘어난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 대중음악이 지난해 독보적인 음반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메시지/사운드/스타일/장르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와 결과물을 내놓는 생태계가 되었다는 반증이다. 음반뿐만 아니라 노래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대중음악의 진면목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만큼 다양한 성취를 모두 놓치지 않기는 어려울 정도다. 지난 해 화제가 된 몇몇 곡들이나 케이팝 제작사에서 벌어진 분쟁이 한국 대중음악의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가 길었다. 음악이 BGM이 되고 마케팅의 발판이 되는 시대에도 음악인들은 음악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완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세상을 거꾸로 돌리려는 이들이 있고, 그들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지만 새해에도 계속 들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