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분노와 울화가 지배하는 정국에서 새해 첫 칼럼은 희망찬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윤석열 체포영장 기한이 1월 6일이었기에 윤석열이 수갑 차는 날, 기쁨을 담아 글을 쓰고자 기다렸는데 틀려버렸습니다. 그래서 울화를 담아 2025년 첫 칼럼을 씁니다.
지난 12월 27일 서울대 학생들이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내란수괴-내란공범 42명, 선배님 부끄럽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서울대 출신 내란범, 내란 동조자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학생들은 내란수괴 79학번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67학번 한덕수 국무총리, 77학번 권영세 국민의힘 대표 등 서울대 출신이 행정부에 7명, 국민의힘 국회의원으로 35명 있다며 탄핵 절차와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또한 내란 동조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졸업장을 반납하라고도 했습니다.
윤석열 퇴진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소속 서울대 학생들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서울대 출신 내란범·내란동조자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할 것과 함께 졸업장을 반납할 것을 요구했다. 2024.12.27 ⓒ뉴스1
이번 내란의 주요 공범들을 보면 공부 하나는 정말 잘했던 자들입니다. 수십 년 공직 생활을 탄핵으로 마감한 한덕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도 받았습니다. 지금 국민들 약을 올리고 있는 최상목도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서울대 출신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이번 내란을 배후에서 악질적으로 기획한 ‘아기보살’ 노상원은 육사 수석 입학자라고 합니다. 윤석열 사수에 목숨 건 경호처장 박종준도 경찰대 수석 졸업자라고 합니다.
내란수괴 윤석열과 공범들을 보면 도대체 공부를 잘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를 곰곰이 돌아보면 언제나 공부 잘하는 자들이 나라를 팔아먹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 치고 공부 못한 자가 있었습니까? 대부분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에 유학하여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온 자들이 친일파가 되었습니다. 공부 많이 해서 사회적 영향력 있는 자를 포섭하여 친일파를 만들어야 쓸모가 있지, 배운 것 없는 촌구석 농민을 친일파로 만들어봐야 무슨 영향력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반사회적 인간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해방 직후 친일파 처단을 제대로 했다면, 친일파의 후예 군부독재 부역자들을 제대로 처벌했다면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의 나치 잔재 청산을 배워야 합니다.
프랑스는 1940년부터 4년 동안 나치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때 나치에 협력했던 자들은 1944년 프랑스가 해방된 후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프랑스는 나치 협력자들을 처벌하면서 하급 경찰을 비롯한 단순 가담자가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이 큰 지식인, 언론인, 출판인, 예술가들을 엄격히 처단했습니다.
언론인의 예를 들자면, 900여 개 신문 잡지 가운데 나치에 부역한 649개가 폐간되거나 재산을 몰수당했습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신문 ‘르 몽드’는 나치에 부역했던 ‘르 탕’를 폐간한 뒤 사옥을 몰수한 후 나치 치하에서 해직된 기자들과 레지스탕스 출신 지식인들이 만든 신문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천황 폐하 만세’를 외쳤던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지금도 민족 정론지라고 우겨대는 한국과 너무 비교되지요.
프랑스는 민족의 혼과 정신을 팔아먹은 반역자는 ‘프랑스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나 마찬가지’라고 규정했습니다. 나치 부역자 청산을 주도했던 드골 대통령은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을지라도 또다시 민족 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나치 청산을 단호하게 진행했습니다.
나치 협력 혐의자 35만 명 중 12만 명 이상이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3만8천여 명이 징역과 금고형을 받았고, 6천여 명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중 정규 법정 밖에서 약식 처형된 사람이 9천 명, 합법적으로 처형된 사람은 1천5백명이었다고 합니다. 5만여 명은 공민권이 박탈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도 철저한 나치 청산을 우려하며 관용과 용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는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으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게 된다. 정의로운 프랑스는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라고 일축했습니다.
반민특위가 들어있던 현 국민은행 명동영업부 건물. (롯데백화점 명동점 바로 건너편) ⓒ월간 말
대한민국은 친일파 청산을 어떻게 했을까요?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해 만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취급한 사건은 모두 682건이었습니다. 전체 조사 대상 7천여 건 가운데 10%도 되지 않았습니다. 408건의 영장이 발부되었는데, 그중 221건만이 기소되었습니다. 재판이 종결된 것은 불과 38건으로, 징역형 12건(무기징역 1건, 사형 1건 포함), 공민권 정지 18건, 무죄 6건, 형 면제 2건이 선고되었습니다. 징역형을 받은 12명 또한 보석이나 형집행정지로 1950년 한국전쟁 직전 모두 석방됩니다. 친일파 중 단 한 명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는 나치 점령 4년 기간을 철저히 청산했는데, 대한민국은 식민지 강점 35년을 하나도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군부독재 부역자들 청산은 어땠습니까? 박정희는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고, 12.12 쿠데타가 일어나 부역자를 처벌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노태우는 겨우 2년 감옥살이 후 석방되어 천수를 누리다 떠났습니다. 국정원, 기무사 등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부정선거를 획책한 이명박·박근혜도 죗값을 치른 지 5년도 안 되어 사면·복권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의 실패가 군부독재로 이어졌듯이, 군부독재와 그 잔당들에 대한 철저한 청산이 실패한 결과 45년 만에 내란이 재발했습니다.
프랑스에는 ‘대학 위의 대학’이라 불리는 교육기관, ‘그랑제꼴’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지도층 인사 중 80%는 그랑제꼴 출신입니다. 그랑제꼴 출신 중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진보적인 사람도 있지만, 자기 조국을 배신하거나 자기 국민을 적대시하는 반사회적 인간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프랑스인들의 DNA가 우수해서가 아니라 나치 부역자를, 특히 사회 지도층 인사를 철저히 청산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것들이 다 저 모양인 건 서울대 탓도 아니고, 개인의 수양 부족 탓도 아닙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거나 잠시 감옥에 갔다 오면 사면 복권된다는 걸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친일파, 군부독재 부역자를 청산하지 못한 벌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윤석열 내란을 진압하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 불관용의 원칙으로 후세에 귀감이 되게 철저히 내란범들을 처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두 번 다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