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녹색전환을 한다고요?] 비상상황이 된 일상, 문제는 정치야

민주주의의 밤, 비상계엄이 만든 국가비상사태

긴 밤이었다. 12월3일, 이틀 일정의 출장을 마친 뒤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차담을 나눴다. 한강 너머 국회를 바라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영업시간이 끝날 때쯤 카페를 나서 집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타고 양화대교를 건너는 도중 중학생 아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거 진짜야?”라고 물으며 속보 기사를 캡처해서 보낸 것이었다. 속보 기사는 “윤 대통령, 비상 계엄 선포”였다. 가짜뉴스겠지라고 생각하며 검색해보니 실제 상황이다. 믿어지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계엄령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최근 몇 달 사이 정치권에서 계엄령에 대한 경고가 있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생각했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집에 도착해 뉴스를 보니 이미 국회는 아비규환이었다. 국회 출입구를 경찰이 통제하고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어 하나둘 본회의장으로 모여들었다. 헬기와 장갑차를 탄 군인들이 국회로 향하고, 한밤중에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지금이라도 자전거를 타고 국회로 달려가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마음이 놓이진 않았다. 이 무도한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 가슴 졸이며 밤을 보내야 했다. 새벽 4시가 넘어 비상계엄 해제 소식을 듣고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이 땅에 다시는 정치적 밤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외쳤지만, 어쩌면 대한민국은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빠질 수도 있었다. 참 다행이다.

잠이 부족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출근길에 나섰다. 늘 보던 풍경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 내 자전거 옆을 지나치는 자동차들. 하지만 이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매일 반복되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콧날이 시큰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민주주의는 매우 견고한 것 같지만 의외로 상당히 연약하다. 평온한 일상도 마찬가지다. 비상계엄 세부계획들이 지난 한 달 동안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치인들이 입만 떼면 이야기하는 민생, 즉 국민의 생활과 생계는 안중에도 없었다.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지만 국정은 마비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은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화 환율이 급등하고 경제 성장률 전망이 하락하는 등 경제 지표들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 지지 여론이 70%밖에 안 된다고 한다. 아직 국가비상사태는 진행 중이다.

기후비상사태, 한계에 이르고 있는 우리 삶의 토대

지구도 비상이다. 2023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20ppm을 돌파했다. 2023년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약 1.45℃ 높았다. “이건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기후 붕괴(climate breakdown)다. 파멸로 가는 이 길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2024년이 역대 가장 더운 해였다는 세계기상기구(WMO)의 발표를 재확인하며 밝힌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경고다. 세계기상기구의 이 발표에 따르면 2024년 1월~9월 지구 평균 지표 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보다 1.54℃(±0.13℃) 높았다. 2015년 파리협약에서 합의한 목표 1.5℃를 초과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1.5℃는 장기 평균기온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 해 평균기온으로 한계지점을 넘어섰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기온상승 속도와 경향성을 보면 비상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 두 가지 사건으로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꼽는다. 1만 년 전 농업혁명이 가능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안정화된 기후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적 성취는 안정화된 기후라는 토대 위에 이룩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정적이었던 기후가 붕괴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근간이 무너진다는 의미다. 세계경제포럼이 발간한 2024년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Global Risk Report 2024)는 ‘기상 이변’을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다. 2020년 1월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금융위기를 뜻하는 ‘그린 스완(Green Swan)’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기후변화가 자연생태계와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화폐와 금융의 안정성까지 흔들어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결제은행(BIS)이 펴낸 ‘기후변화 시대의 중앙은행과 금융안정’ 보고서 표지 ⓒ국제결제은행 보고서

파국적 기후위기 앞에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2020년 6월 한국의 226개 기초지자체는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그해 10월에는 국회도 기후위기비상선언 결의안을 채택했고, 한국 정부도 2050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국제사회 평가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독일의 비영리연구소 저먼워치(GermanWatch), 세계 기후단체 연대기구 기후행동네트워크(CAN, Climate Action Network) 등이 발표한 2025년 기후변화대응지수에서 한국은 최하위권으로 조사 대상 64개국 중 63위를 기록했다. 조사 대상국 중 파리협약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경로를 따르고 있는 나라는 없기 때문에 1~3위는 비워졌다. 한국은 파리협약 온실가스 감축 경로에 부합하지 않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계획, 느슨한 석탄발전소 퇴출 계획, 신규 석유⋅가스 사업 투자 의지 등이 낮은 성적의 이유로 꼽혔다.

2025년 기후변화대응지수(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 평가 순위 ⓒCCPI 2025 보고서

결국, 정치가 답해야 한다

정치적 혼란과 기후 위기는 모두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위협한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통치자가 국민들의 이해관계의 대립을 조정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이다. 정부는 탄소중립 선언 이후 탄소중립 기본법을 제정하고 탄소중립 기본계획도 수립했다. 기본계획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파리협약의 경로를 따르고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수립한 정책 목표도 달성할 가능성이 낮다.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 즉 정치가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 핵심 과제는 기후 이슈를 정치적으로 의제화하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의제임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에서는 중요한 정치 의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기후위기에 대한 시민들의 민감도는 높아지고 있지만, 시민들은 왜 기후위기 대응을 다른 의제보다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는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2023년 12월 기후정치바람(녹색전환연구소, 로컬에너지랩, 더가능연구소)은 기후위기 국민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기후정치바람의 기후위기 국민 인식조사는 17개 광역지자체별 1,000명씩 총 17,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유권자 33.5%가 기후유권자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시민사회, 언론, 정치권이 함께 집담회,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추진했다. 언론에서도 500여 건 이상 기후정치 관련 보도가 이어져 기후유권자를 개념화하고 가시화하는 성과를 얻었다. 주요 정당이 기후전문가를 공천했고, 지역구 당선자 중 25%가 기후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할 수 있는 기후정치인, 기후공약은 충분치 않았다. 기후정치바람은 다가오는 주요 선거 국면에서 기후의제를 주류화하기 위해 기후위기 국민 인식조사뿐만 아니라 기후정책과 공약을 만들고, 기후유권자와 정치인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대응 교육을 하고, 지역별 기후촉진자를 양성해 기후캠페인도 전개할 것이다.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최근 경향신문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후위기 대응은 여전히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있다. 국민들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정치권의 국민 통합, 인구 문제 해결을 새해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은 산업, 일자리, 불평등, 삶의 질 등 우리 삶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산업통상 분야에서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녹색무역장벽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의 RE100과 같은 에너지전환까지 기후위기 대응 이슈가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후위기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과 달리 위기 상황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고 체감하기 쉽지 않다. 폭염과 한파, 산불과 홍수 등 기후재난은 일상이 되었고 안정적 기후는 붕괴하고 있다. 그 위험을 간파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정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시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주거 문제와 보건 복지 등과 같은 의제는 기후위기 대응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경제, 사회, 환경 등 주요 국정과제가 기후 이슈와 연계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차기 대선에서 기후 단일 이슈로 후보자 토론회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후와 산업, 기후와 복지, 기후와 농업, 기후와 인구감소 등 다양한 정책의제들을 기후 중심으로 질문하고 후보자들의 답을 들어야 한다. 산업, 노동, 교육, 과학, 문화, 복지, 농민 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집단을 만나 이들의 요구 사항을 기후의제와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일부 유권자가 아니라 다양한 집단이 함께 기후 공약을 요구하면 훨씬 더 중요하게 대통령 공약에 담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2025년 한국이 직면한 정치적 혼란과 기후위기는 분명 심각한 도전이자 위기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밀턴 프리드먼은 “오직 위기만이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또한, “우리의 기본과제는 기존 정책을 대체할 대안 정책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한(impossible) 것에서 정치적으로 불가피한(inevitable) 것이 될 때까지 그것을 생존하고 적용 가능하게 개발하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빛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성숙한 시민들의 민주주의가 정치를 바꾸고 기후정책을 불가피한 정책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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