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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놓치기 아까운 2024년의 음악, 김반월키 [빈자리]

김반월키 '빈자리' ⓒ포크라노스

매년 대중음악평론가와 매체의 연말 대중음악 결산들을 놓치지 말고 살펴야 할 이유가 있다. 아무리 많은 음악을 챙겨 들어도 놓치는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김반월키의 [빈자리]도 그 중 하나다. 동료 평론가 김학선이 이 음반을 거명하지 않았다면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하루 평균 5,000곡의 신곡이 나오는 한국대중음악 생태계에서는 이렇게 놓치는 음반이 수두룩한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이 음반을 숨어있는 걸작이라거나 비운의 음반 같은 수사로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실상 어떤 음악도 숨지 않았으며, 어떤 음악도 비운을 타고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음반은 당대의 빅히트곡들이 지향하는 사운드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낯설고 대중적이지 않다. 매체에서 자주 소개한다고 즉시 반향이 오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뒤늦게 이 음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유는 이 음반의 남다른 사운드 때문이다. 인디/포크 음악 마니아라면 음악을 듣는 즉시 유사한 팀들을 떠올릴 법한 김반월키의 음악은 사이키델릭 포크와 챔버팝 사이에 걸쳐져 있다. 음반 전체를 지배하는 나른하고 부유하는 사운드. 폭발하거나 분출하기보다는 유영하는 사운드는 기존의 한국대중음악 신에서는 비주류에 가까운 질감이다. 보컬은 진성이 아니라 가성으로 노래하고, 악기는 단출하거나 클래시컬하다. 악기와 보컬 모두 공간감을 증폭시킨 소리의 울림 가운데 존재하는데, 그 질감이 남다른 감각을 창출한다. 즐겁거나 열정적인 감정과 태도로 연결할 수 있는 질감이 아니다. 그보다는 냉소, 퇴폐, 관용에 가깝게 다가오는 질감이다. 음악이 희로애락의 명징한 감정과 감각만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음악이다. 음악은 무료함과 답답함과 담담함 같은 회색의 감정과 감각 역시 수용한다.

김반월키 (Kimbanourke) - 빈자리 (Absence) 앨범 전곡 듣기

김반월키의 남다른 사운드는 노랫말로 표현한 상황과 감정을 다르게 수용할 수 있도록 이끈다. “더 이상 / 해줄 수 있는 것도 / 해주려 할 수도 / 없는걸”(‘디퓨저’) 같은 노랫말을 노래하면서도 김반월키는 감정을 과도하게 분출하지 않는다. “우린 다시 / 어떠한 활기도 띠지 않은 채 /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은 채 / 어떠한 변화의 꿈도 꾸지 않은 채 / 기다릴 너를 향한 그리움에 / 색을 덧입히네”(‘기억에 의존한 초상화’) 역시 마찬가지다. 몽환적인 사운드는 다른 장르라면 더 선명하게 다가올 감정을 꿈꾸듯 아련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함으로써 익숙한 감정을 서술한 노래를 다르게 체험하도록 이끈다. 음악이 다른 세계와의 만남임을 잊지 않는다면 김반월키의 음악은 대중적이거나 상투적인 감각의 세계와는 거리를 둔 세계를 창조하는 셈이다. 그 세계는 투신의 세계가 아니라 냉소와 달관의 세계에 가깝다.

사운드는 노랫말의 태도와 한 몸이며 그 태도를 외화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별난 사람들’의 노랫말 “너로 수군대는 사람들 / 눈을 뒤집으면서 / 그들에 반박을 하고”의 들끓는 감정과 달리 유려한 멜로디와 사운드는 김반월키가 탐미주의자임을 추측하게 한다. ‘미라쥬’에서 선보인 매끄럽고 클래시컬한 사운드가 삶을 찬미하는 노랫말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모습을 지켜보면 이 같은 추측은 확신으로 바뀐다. “그 '현재'는 바래고 금가고 흐릿하네”(‘겨울에 접어들 무렵’)이라는 노랫말에 김반월키가 구사하는 사운드와 멜로디 또한 여유롭고 편안해서 김반월키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추억이란 /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 조밀해지는 것이리라”는 인식에 이르는 타이틀곡 ‘단상 : 불나방’이 구사하는 코러스 연출의 아름다움은 김반월키의 음반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단번에 설명한다. 무려 13분에 이르는 ‘…그러나 과거에 갇혀 살 수만은 없기에 모쪼록 가슴에 묻어두고서 나는 앞을 응시하고…’도 마찬가지다. 다른 세계를 만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음악을 듣는 것인지 모른다. 이 음반은 그 수많은 증거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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