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작성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이 공개됐다. 윤 대통령 측은 그가 공수처에 의해 체포된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이를 공개했는데, 그 내용이 자못 가관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대통령 직무에 관련해 쓸데없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은 후 자신의 계엄 선포가 "자유민주주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진정으로 심각한 대목은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과 '부정선거'에 대한 그의 인식이다. 윤 대통령은 "권위주의 독재 국가, 전체주의 국가는 많은 국가들을 속국 내지 영향권 하에 두려한다"면서 국내 정치세력이 이들과 손잡으면 "영향력 공작의 도움을 받아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데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이 대목에 대해 막상 윤 대통령은 아무런 증거나 정황도 내놓지 않았다.
부정선거에 대한 인식도 놀라울 정도다. 윤 대통령은 "선거 조작으로 언제든 국회 의석을 계획한 대로 차지할 수 있다든가 행정권을 접수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면서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다"고 단언했다. 요컨대 민주당이 부정선거로 지난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었고 그 증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그가 나열한 '증거'란 선거 소송의 검표에서 "엄청난 가짜 투표지"가 나왔고,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이 해킹과 조작에 무방비"이며, 선관위가 "발표된 투표자 수와 실제 투표자 수의 일치 여부에 대한 검증과 확인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 수많은 선거 소송에서 법원은 이러한 주장이 모두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투개표 부정과 여론조사 조작"은 "한 국가의 경험 없는 정치세력이 혼자 독자적으로 시도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서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과 '부정선거', 그리고 야당을 연결시켰다. 3년간 대통령으로 직무를 수행했던 사람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고, 이 때문에 위헌·위법적인 계엄과 내란사태를 촉발시켰다니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윤 대통령은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사이 더더욱 자신만의 음모론과 피해망상에 빠져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윤 대통령과 그를 비호하는 국민의힘 세력이 이를 통해 극우 대중운동을 자극하고 정치적으로 동원하려는 태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비합리적인 음모론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력한 정치세력이 음모론을 활용해 대중을 동원하면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더욱 극심해지기 마련이다. 민주공화국을 파괴하는 힘은 여기서 나온다. 이제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과 함께 망상에 빠진 '반국가세력'이 될 것인지, 이성을 회복해 그와 갈라설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