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집회를 함께 준비하며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행사기획을 하면 든 생각들

18일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01.18. ⓒ뉴시스

요즘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내가 속한 부서는 비상행동의 행사기획팀. 집회의 무대 준비, 공연 프로그램, 시민발언, 행진 등을 총괄하는 부서다. 그 중 연출팀에서는 매번 집회에서 문화예술 퍼포먼스를 어떻게 결합시킬지, 어떤 예술가가 함께하면 좋을지, 어떤 음악을 활용할지 등등을 함께 논의하고 실행한다. 나는 주로 어떤 예술가가 광장에 어울릴지를 고민하고 제안하고 연결하는 역할이다.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광화문과 국회 앞, 한남동 관저 앞 등지에서 집회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민중가수와 대중음악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연대해 공연을 펼친다. 문화예술 퍼포먼스를 고민할 때는 다양한 세대, 직업, 젠더, 가치관을 가진 시민들의 호응을 잘 끌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시위 현장에서는 민중가요 음악인과 민족예술인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촛불집회의 시대에는 민중가요 음악인보다 인디 음악인들이 더 늘어났고, 이름난 대중음악인들도 심심찮게 함께 한다. 광장에 함께 하려면 뜻이 맞아야 할 뿐 아니라, 정체성이 다른 이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라이브 퍼포먼스 능력이 필요하다. 인기가 있다면 금상첨화인데, 그보다는 노래와 퍼포먼스가 광장의 열기를 배가시킬 수 있어야 한다. 솔로 싱어송라이터보다 밴드가 적절하고, 민중가수가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 구속 긴급행동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01.05 ⓒ뉴시스

그런데 지난 한 달 넘게 집회가 계속 이어지는 동안 갑작스럽게 집회를 결정하는 일이 잦다보니 민중가수들이 더 많은 수고를 감당했다. 특히 지난 1월 초 한남동 관저 앞에서 밤을 새워가며 집회를 할 때는 급하게 출연진을 찾기 어려워 집회에 익숙한 민중가수들에게 SOS를 칠 수밖에 없었다. 박준, 세여울, 손현숙, 송희태, 지민주, 희망새를 비롯한 민중가수들은 새벽까지 기다려가며 노래로 연대했다. 민중가수 지민주는 1월 4일 토요일에는 네 번이나 무대에 올라 노래할 정도로 강행군 했고, 노래패 맥박의 이마주는 1월 5일 일요일 아침에 경남 진주에서 올라와 단 두 곡만 부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개런티가 없는 공연, 밴드도 부를 수 없는 무대를 위해 누군가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때 급히 광장에서 함께 할 음악인을 찾는 소셜미디어 글에 호응한 음악인들도 수 십 명이다.

사실 광장의 열기는 어떤 노래든 뜨겁게 만든다. 음악인들도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하고 긴장하며 무대에 오른다. 12월 14일 국회 앞 집회에서 이랑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과 함께 합창공연을 선보이며 광장의 변화를 압축했다. 12월 21일 집회에서 브로콜리 너마저의 멘트와 노래에 감동받은 이들도 많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의 광화문 집회에 함께 한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사과>의 원 가사 “술맛은 아리따운 여인이랑 마실 때가 최고지”를 “혁명은 지금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해내지”로 바꿔왔을 뿐 아니라, 곡과 곡 사이에서 징을 치며 구호를 외쳤다. 그날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공연은 횃불 같은 선동이었다. 시민들은 활활 타올랐다. 12월 28일 집회에서 이날치와 함께 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얇은 무대의상만 입고 진심을 다해 춤추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난헤 12월 28일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에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합동 공연을 펼쳤다. ⓒ유튜브 캡쳐

안타까운 제주항공 참사로 인해 12월 31일 송년콘서트는 취소되었지만, 1월 11일 집회에서 옥상달빛이 부른 노래는 지치고 상처받은 시민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로였다. 그날 부산에서 올라온 스카 웨이커스와 제주에서 올라온 조성일의 공연 역시 심장의 온도만큼 뜨거웠다. 1월 18일 집회에서 말로의 공연을 보면서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대부분의 공연이 시민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겼다.

물론 집회는 집회이지 콘서트나 페스티벌은 아니다. 하지만 광장의 음악이 케이팝으로 바뀌고 촛불이 응원봉으로 바뀌었으며 민중가요의 역할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는 더 새롭고 대중적이며 감동적이고 위력적인 공연 퍼포먼스를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음악은 가장 자주 활용하고 가장 많은 이들이 동시에 함께 할 수 있는 장르이자 언어이기 때문에 유독 많은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겨울이라 집회를 짧게 진행할 수밖에 없으며, 상황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출연 팀 하나, 노래 하나를 선택할 때도 무척 고민이 된다. 인권감수성을 놓치면 안되기 때문에 좀 더 예민해지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집회의 주인공은 활동가나 기획자, 예술가가 아니라 시민이라는 사실이다. 역사를 열어가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의 희망을 대변해야 하고, 시민의 양심을 지키며,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음악가/예술가의 연대는 여전히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싸움은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고, 민주공화국을 바로 세우기 위한 투쟁이다. 거짓을 참으로 우기는 이들이 몰려오는 지금, 무섭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암울하고 캄캄한 시간을 맞이해야 할지 모른다. 맘 편히 노래하고 연주할 자유를 빼앗길 가능성이 충분하다. 독재자가 날뛰는 세상에서 인기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세상에서 예술가만 행복할 수 있을까. 집회에 나오고, 집회에서 공연을 해야만 시민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모두가 평소보다 많은 용기를 내야 한다. 그 용기가 우리를 더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게 만들 것이다. 극우들의 반발이 두려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정치적인 분란에 휘말릴까 두려워할 때가 아니다. 음악의 힘을 보여준 전설적인 음악인들에게 받은 감동을 지금 광장의 시민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음악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도록 각자의 노력을 더해야 할 때다. 우리는 지금 역사를 함께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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