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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삼성전자 위기, ‘52시간’ 때문이라는 궤변

국회에 계류 중인 ‘반도체특별법’에는 현행법상 상한인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을 시킬 수 있는 조항이 담겨 있다.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시민사회는 반도체산업 발전과 장시간 노동 허용은 상관이 없다고 강력 반대하고 있다. 글로벌 최첨단 산업의 흥망이 구시대적인 장시간 노동에 달렸다는 것도 황당한데,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는 여러 측면에서 나오고 있다. 심각한 저출생과 함께 선진국 수준에 경제가 올라서며 항시적 저성장이 도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중 갈등에서 일부 반사이득도 있었으나 리스크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트럼프 2기 출범으로 자국우선주의와 관세장벽이 강화해 제조업 기반 통상국가인 한국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감세와 축소재정이 누적되며 경기침체를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에서 매출이 가장 많은 기업인 삼성전자의 부진이 깊어지는 것도 국민으로선 불안하다. 조기에 파운드리를 분사시키지 못하고, 인공지능(AI) 반도체용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투자 타이밍을 놓친 것이 결정적 패착이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이재용 체제의 경영능력 부족이 원인이니 해법은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지배구조를 수술하거나 더 유능한 경영자를 영입하는 등도 포함될 것이다.

엉뚱하게 경제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활용해 기업의 민원을 해결하려는 작태가 노골적이다. 52시간의 벽을 허물려는 시도가 그중 하나다. 마치 노동자들이 일을 너무 적게 해서 경제가 어려워진 것처럼 책임을 전가한다. 기업은 주 5일제가 도입될 때도 경제가 망할 것이라 주장했다. 축소되고 약화한 중대재해법이 시행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논리라면 선진국은 다 망했어야 한다. 기업은 경기가 좋을 때든 나쁠 때든 노동시간 연장, 임금 억제, 노조 약화, 고용 유연화를 원한다.

빤히 보이는 기업의 꼼수에 ‘경제성장 리더’의 이미지를 얻고 싶은 정치권이 야합한 결과가 반도체특별법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실용적 해결’을 강조하며, 설 연휴 뒤 신속히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특별법 찬성 쪽으로 기울었다고 평가된다. 비상계엄 내란과 트럼프 2기 출범으로 경제가 너무 어렵다는 명분이 더해졌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통해 “자본의 무한 탐욕 보장을 위해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부정하려는 정책은 반노동·친자본의 정체성을 드러낼 뿐”이라며 “민주당은 자본의 청부입법을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삼성전자와 같은 반도체 업종인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두 기업의 법정 노동시간은 같다. 언제까지 지금은 때가 안 좋다며 부담은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과실은 기업에 몰아주는 후진적 경제시스템을 고수할 것인가. 주 52시간 노동을 허문다고 삼성전자가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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