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비극적인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18살 유원

국립극단 [2025기획 초청 Pick크닉] 연극 ‘유원’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_유원_공연사진 ⓒ출처 박태양, 앤드씨어터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비극적인 아파트 화재 사건, 언니는 어린 동생을 살리기 위해 11층 창문 밖으로 동생을 떨어뜨렸다. 기적적으로 한 아저씨가 떨어지는 이 아이를 온몸으로 받아 냈다. 아저씨는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의 다리를 영영 쓰지 못하게 된다. 그때 살아난 아이가 ‘유원’이다. 무대 위에 선 유원은 어깨조차 똑바로 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서있다. 유원은 살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살아서 죄스럽고 미안하다.

명동예술 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유원’은 비극적인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열여덟 살 유원의 독백 같은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연극은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제44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백온유 작가의 소설 ‘유원’이 원작이다. 각색에 신재훈 작가, 연출에 전윤환 연출이 소설 속 인물들을 생생하게 무대 위로 불러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참사 생존자와 참사를 지켜봐야 했던 목격자들의 현재를 복기시킨다.

살아서 죄스럽고 미안한 열여덟 살 유원


유원은 자신을 살리고 죽은 언니의 생일을 준비하며 고마움과 죄책감을 동시에 짊어지며 살아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원의 집을 찾아오는 진석 아저씨는 유원을 살리고 불구가 됐다. 그런 아저씨를 볼 때마다 유원은 자기혐오를 느낀다. 유원은 가족에 대한 부채감으로 한 번도 자기 생각을 내세우지 못한다. 열여덟 살 유원의 하루하루는 이런 천근 같은 감정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_유원_공연사진 ⓒ출처 박태양, 앤드씨어터

닫힌 학교 옥상 철문을 열고 수현이 등장하자 등장인물만을 밝히던 어두운 무대가 밝아진다. 유원은 운명처럼 수현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둘은 친구가 된다. 유원의 집에 놀러 온 수현은 자신의 아버지인 진석과 대면하게 된다. 장애를 핑계 삼아 가족을 괴롭혔던 아버지가 목숨을 구해줬다는 이유로 친구마저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한 수현은 폭발하고 만다. 유원은 그런 수현을 통해 자신을 억누르던 수많은 감정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원작이 청소년 문학이니 이 연극은 청소년 연극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무대 위에 유원은 참사의 생존자로 아픔을 닫고 성장하는 십 대 청소년이지만 유원이 보여주는 스펙트럼은 훨씬 넓다. 유원이 그러하듯 우리 역시 반복되는 참사의 목격자이자 생존자들이어서다. 극의 후반에 다다르자 유원은 더 이상 진석 아저씨에게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 한다. 11층에서 떨어진 이후 지금껏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살았던 유원은 조금씩 자신의 삶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려 한다.

슬픔과 상처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이제 유원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향한다. 그만큼 유원은 단단해졌다. 유원과 수현의 모습은 광장을 메운 응원봉 청년들을 떠올리게 했다. 참사의 목격자이기도 했고 생존자이기도 했던 응원봉 청년들은 미안함과 죄책감 대신 서로의 손을 잡고 힘을 내자고 말했다. 유원의 손을 잡아 준 수현처럼, 수현의 선의에 진심으로 화답한 유원처럼. 사회적 참사와 국가적 참사가 2024년에 이어 2025년 새해까지 우리 사회를 삼켜 버렸다. 그럼에도 우리가 슬픔과 상처에 잠식당하지 않는 것은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이 있어서다.

연극 <유원>에서 지나침과 과장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더 좋다. 유원은 그냥 조금 더 나아졌을 뿐이다. 유원은 죄책감과 부채감을 완전히 덜어내지 못한 채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원의 굽은 어깨가 조금씩 펴지듯이 우리는 조금씩 나아질 것이고 세상은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 열여덟 유원의 오늘에서 희망을 읽는 이유다.

이 작품은 국립극단이 지난해 처음 도입한 프로젝트인 [기획초청 Pick크닉]의 2025년 초청작이다. 민간 극단이 제작한 우수 연극의 레퍼토리화를 돕는 이 프로젝트는 초심자도 연극의 즐거움을 느끼고 연극적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작품들을 통해 창작극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연극 <유원>을 시작으로 양손프로젝트의 연극 ‘파랑새’(원작 모리스 메테를링크, 연출 박지혜)가 2월 8일부터 2월 16일까지 관객을 만난다.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이어지는 연극 <전락>(원작 알베르 카뮈, 각색·연출 손상규) 역시 명동예술 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연극 ‘유원’

공연 날짜 : 2025년 1월 24일(금) ~ 2월 2일(일)
공연 장소 : 국립극단 명동예술 극장
공연 시간 : 평일 19시 30분/주말·공휴일 15시/화요일 및 1.29(수) 설날 당일 쉼
러닝 타임 : 105분(인터미션 없음)
관람 연령 : 12세 이상 관람가(2013년 12월 31일 출생자까지)
원작 : 백온유 <유원> 창비 2020
창작진 : 각색 신재훈/연출 전윤환/드라마투르기 장우재/무대 송지인/조명 박진수/음악, 사운드 정혜수/무대감독 백석현/음향감독 정하윤
출연진 : 강윤민지, 김계림, 윤일식, 민재원, 박혜영, 남재국, 이지향, 홍재이
공연 예매 : 국립극단 홈페이지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