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소영의 교사생각] 윤석열과 투블럭 청년, 그리고 교사의 정치기본권

젊은 세대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극우 유튜브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키는 걸 보면서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지금 벌어지는 현실이 맞는지, 드라마의 한 장면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의원 아니라 요원, 계엄령 아니라 계몽령이라는 헌법재판소 소식을 보면서는 이것이 정치풍자 코미디의 한 장면이 아닌지 헛웃음이 나온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코미디보다 더 기가 막힌 현실. 하루하루가 참으로 불안한 요즘을 살아내고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국 사회는 얼마나 위태로웠는가를 확인하면서 분석과 성찰의 목소리들이 들린다. 나도 교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고등학교 교사로서 자연스레 교육 시스템을 돌아보게 된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청사 안으로 불이 붙은 종이를 던진 혐의 등으로 구속된 10대 A씨 ⓒ뉴시스

윤석열과 투블럭 청년

“살다 보면 성적보다 중요한 게 많더라. 자기만 생각하는 1등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인문계고 2학년 담임을 맡았던 내가 종업식 때 우리 반 학생들에게 한 말이다. 진심으로 한 말이지만 우리 반 학생들이 느끼는 현실과는 한참 떨어진 말이었을 것이다.
“누구 저격하는 말 아니에요?”
맘에 둔 사람(?)은 있었지만 웃어넘긴다.
“우리 반엔 그런 사람 하나도 없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그와 함께 지금까지도 기회를 엿보는 동조자들의 상당수는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이고, 학생 시절엔 성적으로 최상위권이었을 테다. 이들은 어쩌다 내란을 기획하고 지금은 또 재판정에서 말장난을 늘어놓고 있는가?

극단적 입시 경쟁 교육 체제인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 성적 최상위권이 되려면 다른 것을 돌볼 여유 없이 모든 조건을 총동원해서 입시 경쟁에 쏟아부어야 한다. 최상위권 학생이 어쩌다 한 과목 삐끗해서 2등급이 나오면 세상 가장 우울한 학생이 된다. 그러다 보니 최상위권 중 일부 학생에게서 비인간적 행동을 볼 때가 가끔 있다.

이번 겨울 윤석열은 괴물이 된 제자를 떠올리게 했다. 학년말 교무실에서는 교사들끼리 괴물 제자의 경험을 떠올리며 걱정을 나눴다. 적자생존의 양극화 사회와 입시 경쟁 교육이 괴물을 키워내고 있다고 말이다. 마음속으론 괴물 양산 시스템에 우리가 일조하는 게 아닌지 자괴감을 느낀다. 남들보다 성적만 잘 받으면 인정받는 극단적 입시 경쟁 교육 체제에서는 제2, 제3의 윤석열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윤석열 같은 예는 익숙하기도 하다. 윤석열보다 더 큰 화두는 투블럭 청년이다.

이번 서부지법 폭동에 적극 가담한 사람 중 하나인 투블럭 청년을 보면서 놀랍고 두려웠다. 그리고 걱정이 밀려왔다. 저렇게 젊은 친구가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극우 유튜버의 말을 맹신하고, 법원을 부수고, 방화를 시도하고, 판사를 응징하겠다고 찾아다니는... 저쪽 무리 중 내가 아는 청년이 있으면 어쩌나. 우리 학교에도 극우 유튜브에 빠진 학생이 있으면 어쩌나.

사회에서도 극우 유튜버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학생들에 대한 걱정이 많다. 서울교대 권정민 교수님이 아들을 극우 유튜버에게서 구해내기 위해 오랜 기간 토론을 했다는 화제의 기사를 봤다. 많은 남학생들이 극우 유튜버들을 신봉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수님은 세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첫째, 토론과 글쓰기, 세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지식의 학습을 통해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육으로 학교 교육을 바꾸자, 둘째, 민주적 가치관을 가진 2030 남성 유튜버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제안, 셋째, 논술, 토론, 디베이트처럼 비판적 사고력을 집중 훈련할 수 있는 입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어느 면에선 고개가 끄덕여지고, 어느 면에선 갸우뚱하게 된다.

일단 세 번째 제안에서 가장 거부감이 컸다. 극단적 입시 경쟁 교육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토론이든 논술이든 아무리 좋은 방안을 가져와도 그것은 입시의 한 방편으로 여겨져 오히려 새로운 사교육 붐만 일으킬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지금까지 많은 시도들이 그러했듯이.

극단적 입시 경쟁 교육 시스템은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 그러려면 열심히 일을 하고 싶어도 변변한 일자리가 없거나,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먹고 살 길이 막연한 이 사회 시스템도 같이 바꾸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 일은 단시간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제안 중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는 건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이 혼란의 시기는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생생한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하고,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회를 잘 살리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과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합의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변호인단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5.01.23. ⓒ뉴시스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과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합의

계엄령 선포 직후, 수업 시간에 이를 다룰 때 한편으론 불안함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 중 한 명이 교사가 수업 시간에 정치 사안을 얘기한다고 고발하면 어쩌나,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다. 아무리 편향되지 않게 잘 다루더라도 피곤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속된 말로 ‘재수 없으면’ 교사직까지 위험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막 흘러간다. 습관적인 자기검열이다. 그냥 포기하면 편한데 안 그래도 바쁜 학기말에 이걸 해야 하나, 그래도 이런 위중한 사안을 그냥 넘어가면 어떻게 하나, 이런 고민의 과정 끝에 다시 용기를 내어서야 계기수업을 시도할 수 있었다.

본선투표권 외에는 어떤 정치기본권도 없는 교사의 처지가 민주시민교육에 적극 나서지 못하게 만든다. 오히려 학생들은 고1부터 정당 가입이 가능하고 고3부터는 선거에 입후보도 가능한데, 교사는 근무시간 밖 정치 활동까지 전면 금지된다.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에 후원금조차 내지 못하고 SNS에서 ‘좋아요’를 누를 수도 없다. 잘못했다간 교사직을 빼앗길 수 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살아 있는 논쟁적 주제로 민주시민교육을 시도하는 게 쉬울까? 안 그래도 툭하면 고발 운운하는 요즘 같은 때에? 민주시민교육엔 한없이 소극적인 태도가 된다. 그러니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선 당장 교사가 정치적 금치산자의 신세를 벗어나야 한다.

아울러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과 같은 정치교육의 지침을 마련해서 학교 수업에서 논쟁적 사안을 적극 다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사가 특정 결론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정보를 찾고 분석하고 서로 주장과 근거를 논박하다 보면 자연스레 비판적 사고력이 길러진다. 유튜브를 보며 같은 생각을 가진 집단 안에서만 얘기하는 걸 넘어 공개적인 곳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얘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투블럭 청년이 어쩌다 저렇게 되었는가는 제대로 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교육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전환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12월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몇 번의 고비를 힘겹게 넘고 있다.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여한 젊은 세대에게서 암흑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보았다면, 서부지법 폭동과 극우 유튜버에 포섭된 젊은 세대를 보면서는 위기의식이 든다. 실로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전환기, 전환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우린 앞으로도 많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우리 교육도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어쩌면 올해가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과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귀한 시기가 될지 모른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될 리 없다. 교사들이 좀 더 힘을 내야 한다. 자, 기합을 넣고 끝까지 가보자. 새해를 맞이하며 스스로 독려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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