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내란으로 후퇴한 성장률, 추경으로 회복해야

“추경 반대는 허위사실”이라는 국힘...야당 양보에도 논의 ‘난망’

대형마트의 농산물 코너(자료사진) ⓒ뉴시스

설 명절 밥상머리 화두 중 하나는 민생이었다. 자영업 위기, 실업률 증가 등 내수 침체 상황이 계속되면서 1997년 외환 위기 시절보다 더 어렵다는 말들이 나온다. 여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예고한 보편 관세 부과로 수출도 걱정되는 상황이 되자 경제 이야기를 하면 한숨으로 시작된다.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속보치)은 전분기 대비 0.1%에 불과했다. 당초 한국은행의 전망치인 0.5%보다도 0.4%p(포인트) 낮았다. 성장률 하락의 주된 원인은 12.3 비상계엄 사태다. 예상치 못한 계엄사태 이후 국내 정치적 충격 등으로 인해 경제심리가 크게 악화되고, 내수가 위축된 탓이라는 것이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예상보다 큰 계엄 충격의 여파는 올해 성장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계엄 사태의 여파로 올해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1.9%)에서 약 0.2%p 낮아진 1.6~1.7%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잠재성장률(2.0%)과 실질성장률(1.6~1.7%)의 간극이 커지는 것이 문제다. 잠재성장률은 국가가 가진 모든 자산을 통해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내에서 이룰 수 있는 성장률이다.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돈다는 것은 소비자나 기업이 가진 능력보다 소비,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비,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수요보다 공급이 커지는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 소비 감소로 재고가 쌓인 기업은 생산을 줄이고, 이는 실업률 증가로 이어진다. 실업률 증가는 소비를 줄어들게 만들고, 기업의 재고는 점점 쌓이면서 악순환에 빠져든다.

이에 추경(추가경정)예산 편성의 필요성이 나온다. 정부가 지출을 늘려 잠재성장률과 실질성장률의 틈을 좁혀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약 20조원 이상 규모의 추경 예산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올해 예산에서 증액심사가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과 잠재성장률과 실질성장률의 간극을 고려한 의견이다.

해외 투자 기관도 추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23일 발표한 보고서 '최소한의 성장'(Growing at Bare Minimum)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1.5%로 전망하면서 20조원 규모의 추경을 추진할 경우 성장률을 20bp(0.2%p, 1bp=0.01%p) 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민주당은 정부·여당에 추경 편성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31일 그동안 추진하던 '민생회복지원금 정책'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진의가 의심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이 대표가 정부가 생각하는 추경안을 수용할 의사가 어느 정도 있다고 했는데 정부가 추경안을 낸 적이 없다"면서 "그래서 저희는 국민을 호도하기 위한 립서비스라고 생각한다"고 평가 절하했다.

국민의힘은 '추경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31일 "국민의힘이 무작정 추경에 반대하고 있다는 건 허위사실"이라면서 "국민의힘은 추경 요인이 있을 때 여야정 협의를 통해 추진하자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이는 행태는 추경에 부정적이다. 지난 23일에는 '15~20조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찾아가 설명을 요구했다. '대화를 나누겠다'며 이 총재를 찾았지만 누가봐도 추경 발언을 단속하는 모습이다.

정부도 추경 편성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추경 편성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다음날인 22일 돌연 "정부는 현재 추경 사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내면서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더니 23일에는 "국회·정부 국정협의회에서 추가경정예산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냈다. 민주당은 정부의 이런 행태가 여당의 압박에 의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 모수개혁을 두고 여야가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 다시 떠오른다. 당시 민주당은 진보진영의 비판에도 소득대체율(받는 돈) 44%를 제시하면서 대폭 양보했다. 정부·여당은 모수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구조개혁이 먼저'라면서 합의를 거부했다. 당시 여야가 주장하는 소득대체율의 차이는 단 1%p 차이였다. 정부·여당 말한 '모수개혁의 필요성'은 1%p를 넘지 못한 셈이다.

국민의힘이 '추경을 반대하고 있다는 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이를 열 번 말하는 것보다 국정협의체에서 추경 편성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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