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과거 중국 공산당이 내놓았던 흑묘백묘론까지 끄집어냈는데, 검든 희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는 없다. 많은 국민들께서 지금도 이 정도인데,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기라도 하면 나라 전체가 공산 전체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대한민국이 제2의 홍콩이 되는 것을 막겠다며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오로지 나라와 국민만 바라보면서, 대한민국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실제로 한 발언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며 경제적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반박이다. 흑묘백묘론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등사오핑 주석이 실용주의를 강조한 표현이다. 일종의 관용구로 정치권에서도 흔히 쓰인다. 이재명식 실용주의의 진실성이나 효용성을 비판할 수는 있는데, 이를 중국과 연결해 윤석열의 트레이드 마크인 ‘공산 전체주의’와 연결한 것은 황당하다.
이런 식이면 체게바라를 인용하면 무장게릴라 노선을 찬양하는 것인가. 공자맹자를 인용하면 중화사대주의이고, ‘새장의 새가 울지 않으면 죽인다는 오다 노부나가, 새가 울도록 만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를 인용하면 친일파가 되는가. 삼국지나 열국지를 인용하면 전쟁에 환장한 사람인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7월 3일 국빈 방문을 위해 서울공항에 도착하자 주중 한국대사였던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영접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한중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4.7.3 ⓒ뉴시스
특히 권 비대위원장은 과거 박근혜 정권에서 주중한국대사를 역임해 당시 친중 또는 연중노선이라 불리던 대중 우호외교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그는 2013년 6월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첫 주중대사가 돼 2015년 3월까지 재임했다. 당시 정권은 친미반중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밀착하는 외교를 펼쳤고, 오히려 일본에는 과거사 문제를 풀 것을 요구하며 냉랭한 상태를 유지했다. 주중대사이던 권 위원장은 2015년 2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92년 수교이래 만 23년이 됐는데 가장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발전전망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반부패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의법치국을 강조하는데 현재까지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호평했다.
그는 2015년 3월 퇴임했지만 한중 밀착은 지속됐고, 그해 9월 ‘항일전쟁승리 70년’ 기념식에 박 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천안문 망루에 올랐다. 한중 외교 최정점의 길을 닦은 것이 권 비대위원장이다. 권 비대위원장은 주중대사 퇴임 직후인 2015년 5월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에 긍정적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시진핑 주석과 중국 지도부에 대해 “시 주석은 화려하진 않아도 굉장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신중하면서도 장악력이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거나 “중국의 급부상은 지도자의 우수성과 맞물린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높게 평가했다.
이런 발언과 행적이 ‘권영세는 친중파’라고 낙인찍을 근거는 아니다. 이른바 ‘4강 대사’ 중 하나를 맡은 최고위 외교관료이자 이후엔 보수정당의 리더로서 당연한 태도이다. 문제는 이런 균형감각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중국의 비유를 들었다고 공산전체주의라 비난하는 몰상식이 국민의힘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반중정서 또는 중국혐오는 친북, 종북 운운하던 데서 변형된 신종 색깔론이다. 북한을 과거처럼 공포의 존재로 과장하기 어렵게 되고, 그 지도부에서도 2국가론을 위시해 ‘남북이 각자 살자’는 기조를 유지하자 새로운 공포의 대상으로 중국이 낙점됐다. 그리고 부정선거론과 맞물려, 중국이 선관위 시스템을 해킹하고 정당과 공무원을 장악해 부정선거를 자행했으며, 목표는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어 지배하는 것이라는 황당한 음모론의 유니버스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중국혐오와 부정선거론은, 내란과 법원 폭동을 일으킨 윤석열과 극우세력의 ‘사상적 양대 기초’가 됐다.
1월 31일 저녁 서울의 주한 중국대사관 앞 멸공페스티벌. 국민의힘 전 당직자들이 앞장섰다. ⓒ자료사진
지금 국민의힘은 극우세력에 휘말려 끝없이 함께 추락하고 있다. 서울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국민의힘 전직 당직자들이 앞장서 ‘멸공페스티벌’을 벌이는 것도 권영세 발언과 같은 당내 분위기와 연결돼 있다. 국민들서는 중국혐오와 멸공이 탄핵반대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기도 어렵지만 그들은 몹시 진지하다.
그래서 흑묘백묘 비유를 공산전체주의로 비난한 권 비대위원장에게 궁금하다. 본인이 1992년 수교 이후 최상의 관계를 만든 중국은 지금의 중국과 다른가. “굉장한 카리스마가 느껴지고, 신중하면서도 장악력이 강하다”던 시진핑 주석과 지금의 시진핑은 다른 인물인가. 무엇보다 여당이 앞장서서 중국을 비난하는 것이 과연 국익, 특히 경제에 도움이 되는가. 보수의 토대라 할 기업들은 국민의힘의 이런 태도를 환영할까. 그러니 지금 국민의힘은 보수정당이 맞긴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