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길거리를 장악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현상이 혼란스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50년 넘게 살면서 길거리와 광장은 ‘우리의 자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자리에는 가스통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 현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의 영향력이 박근혜가 키웠다는 아스팔트 우파에 비해 압도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시기 아스팔트 우파는 보수에서도 잉여 인력에 가까웠다. 이들과 손을 진짜로 잡으려 했던 정치 세력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여기다 줄을 대지 못해 안달이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길거리를 장악한 지금 우파의 폭도 정치가 별로 성공할 것 같지 않다. 내 예상이 잘 맞는 편은 아니지만 하여간 지금 내 심정은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이 설명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데, 독자분들께 이 생각을 공유하고 더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려 한다.
개족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들이 막 시작된 분열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때 암기하기 제일 싫어했던 대목이 한국사 조선시대 사색당파의 족보였다.
선조 때 이조전랑 자리를 두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동인은 서인 정철의 처벌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남인과 북인으로 갈렸다. 서인은 숙종의 외척 처분 문제를 두고 노론과 소론으로 갈렸다. 동인 중 북인은 소북과 대북으로 갈렸다. 서인 중 노론은 시파와 벽파로 갈렸다. 이걸 외우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만 좀 싸워라, 니네 때문에 90만 수험생이 개고생 중이다’라는 분노였다.
그런데 지금 보수가 이런 분열의 전조를 보이고 있다. 일단 내란 국면에서 계엄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렸다. 그리고 탄핵 국면에서 이 두 분파는 탄핵 반대파와 찬성파로 진화했다.
찬성파를 축출한 반대파 안에서도 단합은 요원해 보인다. 100% 확실해 보이는 헌재의 탄핵 인용이 결정될 경우 승복파와 불복파로 나뉠 것이다. 불복파 안에서는 부정선거 찬성파와 반대파가 구분될 것이다.
길거리로 몸을 던진 보수들 사이에서 벌써 여의도파(손현보)와 광화문파(전광훈)가 서로 코인팔이를 한다며 쌍욕을 퍼붓고 핏대를 올린다. 여기에 부정선거에 목숨을 건 황교안은 광화문도, 여의도도 아닌 서초동에 자리를 잡았다. 이 긴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면 지금 얘들이 조선시대 사색당파처럼 개족보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얘들 중 누가 누구인지도 구분을 못하겠다만 애들은 지금 나름 진지하다. 서로를 “쟤는 원래 좌파”라거나 “쟤는 원래 화교”라는 황당한 비난이 오고간단다. 아무나 힘내라. 그런데 누구 한 곳이 이 개족보를 정리할 힘을 가질 것 같지가 않다.
왜 이런 분열이 시작됐을까? 먹을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국정원이 돈을 주고 어버이연합을 움직였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돈이 길거리에서 쏟아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길거리가 보수의 이념 결집 장소였다면, 지금은 그곳이 돈의 결집 장소다.
이게 왜 위험하냐? 가난하면 단합이 쉽다. 내 경험상 민주노동당 초창기 시절 우리나라의 수많은 정파들이 정당에 참여했지만 분열은 충분히 봉합 가능한 수준에서만 벌어졌다. 누가 어디서 출마할 것이냐를 두고 별로 싸우지도 않았다. 왜? 출마해봐야 당선이 안 되니까.
윤석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01.18. ⓒ뉴시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입성한 다음부터 이 분열이 터져버렸다. 비례 순번을 결정하는 투표는 각 정파들의 사활을 건 콜로세움으로 변했다. 창고가 텅 비었을 때에는 서로 토닥일 수 있는데, 창고에 뭔가 먹을 것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저걸 누가 먹느냐’의 문제가 대두된다.
길거리 가스통들은 이 경험이 없다. 분열을 해 본 사람은 이걸 수습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막 시작된 저 분열은 내가 보기에 절대 쉽게 봉합할 수준이 아니다. 그나마 대의라도 있으면 억지로라도 봉합이 가능한데, 대의가 아니라 돈이 끼어버리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다음 대선 때 저들 중 누가 정국을 주도할 것인가? 여의도파인가 광화문파인가, 아니면 ‘탄핵반대 부정선거 색출하자’ 파인가 ‘탄핵은 반대했지만 부정선거는 말도 안 된다’ 파인가? 나도 헛갈리는데 쟤들도 헛갈릴 거다. 이 개족보를 저들이 쉽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재벌과 언론은?
두 번째 이유는 그간 한국 보수의 한 축씩을 맡았던 재벌과 보수언론이 이 사태를 어떻게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느냐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역시 잘 될 것 같지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조선일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아젠다를 설정하면 그게 보수의 의제가 된다’고 믿고 살았던 자들이다. 지금도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아니, 버릴 수가 없다. 종이매체 따위가 뭐라고? 지금 조선일보에게 저 의제 설정 기능조차 없다면 조선일보는 1등신문도 뭣도 아닌 그냥 폐지 무더기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의식을 가진 조선일보가 길거리 폭도들의 목소리를 따라갈 것인가? 나는 이게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조중동은 나름 지들이 품위 있는 보수인 줄 아는 애들이다. 길거리에서 난동이나 부리는 자들이 주도권을 잡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조차 없는 애들이란 말이다.
진보언론은 길거리를 존중한다. 진보가 길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여의도를 가득 매운 민주시민들의 응원봉 투쟁이나, 지난해 말 남태령 투쟁을 아름답게 다루지 않은 진보언론이 없었다. 길거리와 진보언론은 상생의 관계이지 주도권을 다투는 관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조중동이 광화문파나 여의도파를 아름답게 보도할 수 있을까? 그들이 설정하는 의제를 미화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부정선거 특집’, ‘서부지법 투쟁은 왜 아름다운가?’ 이런 시리즈를 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할까?
재벌도 마찬가지다. 나는 재벌이 지금 거리에서 발현되는 이 통제 안 되는 가스통들의 목소리를 보고 ‘봐라, 우리 우파도 이렇게 힘이 세다’라고 좋아할 것 같지가 않다. 재벌에게 제일 깔끔한 건 자기들을 밀어주는 대통령이 집권하고 보수언론이 자기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거다. 이러면 통제가 쉽다. 보수언론이야 광고 더 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길거리 가스통들은 어떻게 통제할 건가? 저게 지금 돈 나눠먹기 게임에 머물러서 그렇지 진짜 쟤들이 보수의 주도권을 쥐면 인사권에 개입하려 할 거다. 이 불확실한 상황을 재벌이 과연 반길까? 나는 모르겠다. 도저히 그럴 것 같지가 않아서다.
이번에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키면서 나는 내 알량한 지식으로 함부로 미래를 예측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부터도 잘 안 맞았지만,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는 순간 나 따위의 머리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칼럼은 예언을 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 다만 지금 내 머리의 한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보수의 정국을 주도하는 저 길거리 가스통들의 위력은 지속될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을 말하고 싶었다. 어찌 되는지 함께 두고 보자. 아무튼 윤석열이 우리나라 정치사에 참 대단한 변화를 가져오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