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트럼프가 기준금리 인하를 강하게 압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준은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건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재발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인데, 트럼프가 호언장담하는 정책들이 순도 높게 시행된다면 인플레이션의 불길이 다시 거세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연준의 매파적 스탠스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도 강하게 제약할 수밖에 없다. 자칫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할지 모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인플레 염려하며 기준금리 동결한 미 연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월 29일(현지시간) 새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날 금리 동결에 앞서 연준은 지난 9월 이후 세 차례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달아 인하한 바 있다. 인하 개시 전 5.25∼5.50%였던 기준금리는 현재 4.25%∼4.50%로 1%포인트 내려온 상태다.
기준금리 동결 결정 후 발표한 성명에서 연준은 “노동시장 상황은 견조한 상태이지만 인플레이션이 다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고 “물가 상승률이 위원회의 목표치인 2%에 근접했다”는 표현을 아예 삭제했다.
또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현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는 기존보다 현저히 덜 제한적이고 경제는 강한 상황”이라며 “통화정책 기조 변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관세·이민·재정 정책, 규제와 관련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 알 수 없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도 언급했다. 트럼프가 공표한 경제정책이 순도 높게 시행될지, 시행된다면 인플레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데이터를 보면서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참고로 향후 금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점도표에 따르면 연준 위원들은 올해 말 기준금리 전망치로 3.9%를 제시했다. 기존 작년 9월 전망치(3.4%)보다 0.5% 포인트나 높아진 것으로 현재 금리 수준(4.25~4.50%)을 고려하면 당초 예상한 네 번이 아니라 두 번 정도만 올해 추가 인하한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한결같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견조한 노동시장을 비롯한 강한 경제가 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관세정책과 감세정책, 이민자 정책이 실제 어떻게 실행되고, 미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자리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트럼프가 공언한 관세정책과 감세정책 그리고 이민자 정책은 모두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요인들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이견을 찾기 어렵다.
관건은 사실상 국가권력 거의 전부를 장악하다시피 한 트럼프가 자신이 호언장담한 정책들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어떤 속도로 실현하려 할지다. 만약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벌이고 감세폭탄을 투하하고 폭력적이고 대대적인 이민자 추방정책을 돌진적으로 펼친다면 수그러드는 듯했던 인플레이션은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연준은 기준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진다. 성장률이 곤두박질치거나 금융공황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01.16. ⓒ뉴시스
한국은행의 정책적 입지가 좁아지고 있어
문제는 한국이다. 당장 이달 25일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앞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가뜩이나 궤멸 상태인 경제가 내란 사태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터라 0.25% 포인트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매파적인 태도를 고수하면서 사정이 완전히 변했다.
그렇지 않아도 환율 급등 및 원화 약세로 기준금리 인하에 제약을 받던 한국은행 입장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선언한 연준의 태도는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린 것과 다르지 않다. 만약 한국은행이 효과도 의심스러운 기준금리 인하를 덜컥 단행했다 환율이 급등한다면 소탐대실도 그런 소탐대실이 없다 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트럼프가 관세정책 등을 돌진적으로 추진해 인플레이션이 살아나고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는커녕 인상하거나 계속 동결하는 것이다. 그리되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아예 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미 연준의 통화정책과 미 연준의 통화정책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한국은행의 처지가 함의하는 바는 간명하다. 고금리 기조가 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는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시장에는 불행한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