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됐어도 돌아간다

수십만 팔레스타인 피난민 27일부터 귀향

이스라엘이 2025년 1월 27일 월요일 15개월 간의 공격 이후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난민 수천 명의 귀환을 허용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가자 북부 집으로 돌아가는 팔레스타인 난민들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이스라엘이 가자 대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한 지 15개월만에 팔레스타인 난민이 북부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230만 가자 팔레스타인인의 대부분이 거주하는 가자시티  북부는 이스라엘의 집중 공격 대상이었다. 가자시티 건물의 74%가 전쟁으로 손상되거나 파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부 봉쇄가 풀리자마자 수십만 명이 고향으로 향했다. 이를 전하는 가디언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Hundreds of thousands of Palestinians return to north Gaza as Israel opens checkpoints


이스라엘의 군사 검문소가 개방되면서 1월 27일 1년 넘게 가자를 분단시켜 온 장벽이 무너졌다. 수십만 팔레스타인인이 북부 가자로 물밀듯이 돌아왔다. 영구적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던 강제 이주의 시간을 뒤로하고, 마침내 집과 사랑하는 이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새벽녘부터 길가에서 밤을 지샌 인파는 검문소가 열리자마자 자기 집과 가게(혹은 그 잔해)를 향한 긴 여정을 시작했다. 설렘과 불안이 교차하는 가운데 행렬은 지중해를 끼고 폐허가 된 가자시티를 지나 가자 북부로 이어졌다. 유엔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만 8만여 채의 건물이 파손되거나 무너진 상태다.

유엔은 27일 아침 20만이 넘는 인파가 북쪽으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가자의 하마스 당국은 이미 30만 명 이상이 북부로 귀환했다고 전했다.

탬버린 소리에 맞춰 즐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 곁으로 고양이와 앵무새 같은 반려동물을 품에 안은 이들과 목발에 의지한 절단 장애인들,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북쪽을 향했다. 어떤 귀환민은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는 듯 거대한 물탱크를 굴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동쪽의 또 다른 검문소에서는 수천 대의 차량이 수 킬로미터에 걸쳐 길게 줄지어 섰다. 북쪽으로 향하기 위한 검문과 허가를 기다리는 행렬이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물러난 자리에서 이집트 인력과 미국 사설 보안업체가 무기 반입 여부를 살폈다고 한다.

북쪽으로 향하는 이들 대부분은 이미 자기가 돌아갈 곳이 거의 폐허만 남았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쪽의 혼잡한 임시 수용소들 사이를 전전한 몇 달을 끝내고, 자신의 땅에서 텐트를 치고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가자시티 곳곳에서는 환호하는 군중이 귀환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50세의 공무원이자 다섯 아이의 아버지인 오사마는 도시로 들어서며 “심장이 막 뛴다. 다시는 못 돌아올 줄 알았다. 휴전이 성사되든 안 되든, 그리고 이스라엘이 우리 한 사람당 탱크 한 대씩 보내도 다시는 가자시티와 북부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 보복이 시작되자마자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이스라엘이 지시했을 때 가지 못했거나 가지 않기로 한 가족과 친지를 찾으려 북쪽으로 돌아왔다. SNS에는 전쟁 발발 후 15개월 만에 부모와 자녀, 친구와 형제자매가 재회하는 기쁨의 순간들이 넘쳐났다. 어떤 이들은 무너진 잔해 속에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신을 찾고 제대로 매장해서 추모할 무덤이라도 마련하려 돌아오기도 했다.

원래 26일 시작될 예정이었던 귀환은 불안정한 휴전 협정으로 첫 위기가 터지며 24시간 연기됐다. 25일 예정대로 이스라엘 인질 아르벨 예후드가 풀려나지 않자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여성 민간인부터 석방하기로 한 합의를 위반했다고 비난하고 보복조치로 북부 검문소들을 열지 않았다.

양측의 비난이 오가는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대 15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주변 아랍 국가로 이주시키는 방식으로 가자를 ‘비워버리는’ 방안을 언급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이번 휴전 협정에 반대해 온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에게 환영받았다. 이들 중에는 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도 있었는데, 그는 가자를 점령하고 군사 정부를 세우자고 촉구했던 인물이다.

언제 깨질지 모를 휴전 속에서 트럼프의 발언과 이스라엘 정부 일각의 호응은 팔레스타인인의 영구 추방 우려를 더욱 키웠다. 하지만 검문소가 열리자 후삼 조믈롯 주영 팔레스타인 대사는 귀환 행렬을 두고 ‘우리를 고향에서 영원히 몰아내려는 세력에 보내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SNS를 통해 "강제 이주와 억압의 100년이 지났어도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남은 길은 해방과 귀환뿐"이라고 역설했다.

휴전 협정은 1월 26일 밤늦게 이어진 막바지 협상 끝에 겨우 명맥을 이어갔다. 합의에 따라 당초 일정을 앞당겨 23일에 인질 3명을 풀어주고, 27일 아침엔 북쪽 통행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이번 단계 석방 대상인 26명의 인질 현황을 모두 제출했다고 밝혔고 27일엔 그중 8명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북쪽으로 돌아가는 주민에게 이스라엘군 주둔 지역을 피하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군은 여전히 국경을 따라 완충지대와 네차림 회랑을 장악하고 있다. 이 회랑은 전쟁 발발 몇 주 만에 설치돼 가자를 남북으로 분단시켰고 그동안 팔레스타인인에게 목숨을 건 남행만이 허용됐다. 인권단체들은 이 같은 남쪽 대피령이 사실상의 강제 추방이라고 비판해 왔다.

그간 팔레스타인인의 북부 귀환은 철저히 봉쇄됐다. 그럼에도 약 40만 명이 북부에 잔류했는데, 이들은 남부보다 훨씬 더 가혹한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 이스라엘이 기존의 봉쇄를 한층 강화하면서 북부로 향하는 식량 지원이 수개월간 사실상 중단됐다. 그 결과 심각한 영양실조가 가장 먼저 북부를 덮쳤고, 전쟁 중에는 국제 전문가들이 기근 위험을 경고하기도 했다.

북부는 특히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과 군사시설 파괴 작전으로 건물 피해가 극심했다. 전쟁으로 누적된 막대한 손실에 귀환 물결까지 더해지자 인도주의 단체들은 긴급 물자 수송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북쪽으로 향하면 그만큼 수요도 폭증할 수밖에 없다". 현재 가자에 머무는 유니세프 팔레스타인 홍보책임자 조너선 크릭스의 말이다. "기본 서비스는 전무하고 물조차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가족들이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을 꾸리지만 대부분 보따리가 그리 크지 않다. 걸어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또한 남레바논 주둔군 철수 시한을 2월 18일로 연장하는 데 동의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이 리타니강 이남 지역 확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협정에 따라 헤즈볼라가 그 지역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1월 26일 이스라엘은 고향 마을로 돌아가려던 민간인 시위대와 이들을 호위하던 군인을 향해 발포했다. 최소 22명이 숨지고 124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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