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초입이던 지난 25일 강원도 한 석재 공장에서 우즈베키스탄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작업을 하던 컨베이어 벨트에 온몸이 끼인 채 심정지로 발견되었지만 생명을 구할 수는 없었다. 22살인 그는 고국에서 한국어를 배워 우리 대학에 유학을 왔고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사고 당시 그는 혼자였다. 작업 현장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 수칙인 2인 1조 근무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국적만 달랐을 뿐 태안화력발전소의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님이 당한 것과 똑같아 너무 안타까운 상황이 됐다.
건강한 휴식과 즐거운 만남이 있어야 할 명절에도 산업 현장의 비극적 사고들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2024년 설이나 추석 명절(대체휴일 제외)에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2,225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사망자만 해도 29명에 이른다.
사실 명절 연휴가 노동 안전 사각지대가 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대다수 노동자가 휴가를 맞는데도 납기를 맞추거나 설비 관리를 위한 업무가 필요해 일용직 노동자를 무리하게 투입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상시 노동인력이 평소보다 줄어드니 당연히 안전관리 업무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고용노동부는 연휴 기간 비상상황 담당자를 지정하고 위험상황 신고실을 운영했다지만 얼마나 실효적으로 움직였는지는 의문이다. 신고 접수 중심의 소극적 행정이 아니라 평소 파악이 된 취약 지구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순찰과 단속을 벌였다면 그만큼 사고 발생 위험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앞선 자료에 따르면 특히 사고가 난 공장의 규모를 살펴봤을 때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1,573명이 사고를 당해 전체의 71%나 차지했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6년 전 일어난 고 김용균님의 사망 사고는 우리 사회에 산업 안전에 관한 큰 경각심을 일깨웠고 그 결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다시 유사한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대규모 건설 현장의 산재 사고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시공 능력 평가 상위 20위 건설사들의 건설 현장 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총 1,868명으로 알려졌다. 전년보다는 다소 줄었다지만 2년 전의 1,666명과 비교하면 12.1% 늘어난 수치다. 사망자만 보면 28명에서 35명으로 전년보다 오히려 25.0% 증가했다.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은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거해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며 중대재해처벌법의 손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개정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제정 단계부터 누더기라는 오명을 둔 법을 손질하라면 처벌과 예방을 더 강화하는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 맞다.
내란세력을 단죄하는 과제와 함께 그다음 사회는 어떤 사회여야 하는가에 관한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적어도 일하다가 죽어 집에 가지 못하고, 먼 이국땅에서 쓸쓸히 일하다 죽어 고국으로 가지 못하는 비정한 현실은 더 이상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고국을 떠나 한국을 선망하며 배우고 일하러 온 우즈베크 청년의 죽음을 다시 한번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