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경영권 불법승계 등의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두고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참여연대는 3일 논평을 통해 “삼성 불법합병 사건 2심 재판에서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법치주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회장 등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사내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분식회계에 관여했다는 혐의(외부감사법 위반)도 받았다.
참여연대는 “2015년 이루어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사업적 필요성보다는 피고인 이재용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 강화 및 승계를 위해 추진되었다는 것은 국내외 자본시장에서 합병이 추진될 때부터 이미 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면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기금 본부장 등은 국민연금이 이 사건 합병에 찬성하도록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피고인 이재용의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와 관련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탄핵됐을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이재용 회장도 뇌물공여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고 짚었다.
이어 “애초에 검찰이 ‘피고인이 훼손한 것은 우리 경제의 정의와 자본시장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적 가치’라고 하면서도 이재용에게 고작 징역 5년과 벌금 5억 원만을 구형한 것도 범죄의 중대함에 비해 부족한 수준이었으나, 법원은 이마저도 인정하지 않고 재벌총수에게 또다시 면죄부를 줬다”며 “법치주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또 참여연대는 “이재용 등의 행위는 재벌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시장질서를 훼손하고 회사와 주주, 더 나아가 전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과 정부에 수천억원의 피해를 입힌 악질 범죄행위”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기는커녕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로 사법정의를 뒤흔들고 사법부 내부의 모순만 불러일으킨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그동안 국가 경제를 고려한다는 명분으로 재벌총수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않는 관행이 있었다”며 “법원마저 특정 재벌총수를 비호한다면 대한민국 재벌그룹의 후진적 지배구조는 더 이상 개선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성명을 통해 “법치의 근간이 흔들리고 위협받는 내란 정국에서 재벌 대기업과 총수에 대해 법치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며 사법부 판단을 규탄했다.
민주노총은 “재벌총수 이재용 회장 한 명을 위해 기존 삼성물산 주주, 정부, 국민연금공단, 외국계 기관투자자 등에게 손해를 끼쳤다”며 “국내 시장의 건전성, 공정성을 훼손시킨 범죄자에게 죄가 없다며 국민 상식에 반하는 판결로, 스스로 법치를 포기한 사법부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은 “검찰은 지금 당장 상고하고, 국민 상식에 반하는 판결로 스스로 법치를 걷어차고 있는 사법부는 비상한 각오로 이재용 회장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민주노총은 “상식이 무너지고 법치가 무너지는 내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법원 역시 이재용 회장에게 면죄를 준다면 사법부는 광장에 나온 노동자 시민들에게 사법부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근원적 질문과 마주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같은 날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파급 효과가 큰 공소사실을 추측이나 시나리오 가정에 의해 형사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양사의 의사와 관련 없이 전단적으로 합병 결정을 했다고 볼 수 없고, 미전실 자금팀이 삼성증권의 자문을 받아 대략 검토한 후 본격적인 검토는 양사가 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