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죽음으로 몰아넣은 쿠팡 로켓배송·심야노동 폐지하라”

쿠팡 청문회 이끈 고 정슬기님 대책위 “기존의 반노동 체제를 완전히 뜯어고쳐라”

강민욱 택배노조 쿠팡본부준비위원회 위원장 발언 및 인터뷰 영상

쿠팡 과로사 투쟁을 이어온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쿠팡을 향해 청문회에서 약속한 재발 방지 대책을 제대로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노동자를 과로로 몰아넣은 로켓배송과 심야노동의 폐지를 강조했다.

‘쿠팡 택배노동자 고 정슬기님과 함께하는 기독교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는 4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 로켓배송과 야간노동 폐지를 촉구했다.

정 씨는 쿠팡의 배송 계열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남양주 2캠프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5월 과로사했다. 근로복지공단 조사 결과 정 씨는 사망 전 12주간 일주일 평균 73시간 21분을 일했다. 고용노동부의 ‘뇌혈관 질환의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인 일주일 평균 60시간을 훌쩍 넘는다.

정 씨 사망 이후 지난해 9월 기독교와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모여 유가족과 함께하는 대책위를 발족했다.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수개월간 릴레이 1인 시위 등 투쟁을 이어왔다. 국민동의청원 5만명을 달성해, 지난 1월엔 쿠팡 청문회가 개최됐다. 쿠팡 측은 청문회 직전 유가족과 합의하고, 청문회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노동자가 배송 구역과 물류센터를 수차례 오가며 배송하도록 하는 다회전 배송, 분류 작업과 같은 공짜 노동, 물류센터 휴게시간 등의 개선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대책위는 입장문에서 “대책위에 속한 기독인들과 시민사회단체는 함께 모여 기도하고 활동하는 가운데 죽음을 막고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변화와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다”며 “이제 우리는 일터에서 일어나는 어떤 불의에도 간과하거나 침묵하지 않고 노동자가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연대의 끈을 단단히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성과는 있었지만, 아직 쿠팡 과로사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대책위는 강조했다. 대책위는 “개선책과 약속들이 얼마나 신실하게 잘 지켜지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라며 “쿠팡이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위해 내놓는 재발방지책이 제대로 실효성 있게 진행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로켓배송과 심야노동이 근원적으로 폐지돼야 한다”며 “로켓배송과 심야노동은 소비자 편의를 증진시킬지 모르지만, 노동자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치고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은 이미 의학적으로, 실제적으로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 씨의 초등학생 딸이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쿠팡의 로켓배송이 아빠를 데려가 버렸다’고 한 말을 전하며 “쿠팡은 이번 기회에 경험했겠지만,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피의 대가는 혹독하다는 것을 반드시 엄중하게 기억하길 바란다”고 했다.

대책위 고문을 맡고 있는 박득훈 목사는 쿠팡이 유가족과 합의하고 사과한 데 대해 “다행이라기보다는 괘씸하기 이를 데 없다”며 “청문회에서 조금이라도 비난을 덜 받기 위한 몸짓이라는 인상을 지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쿠팡을 향해 “유가족 합의로 면죄부를 받았다고 착각하지 말라”며 “다시는 과로사로 노동자가 죽는 일이 없도록 기존의 반노동 체제를 완전히 뜯어고쳐라”고 주문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사도 “쿠팡은 살인적인 노동조건, 그걸 은폐하는 거짓선동, 노동운동 탄압을 일삼으며 일터의 민주주의를 빼앗아 왔다”며 “쿠팡의 사과가 완성되려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동조건에 대한 약속을 조속히 제대로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쿠팡 택배노동자 고 정슬기님과 함께하는 기독교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는 4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 로켓배송과 야간노동 폐지를 촉구했다. ⓒ민중의소리

노동 현장에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강민욱 택배노조 쿠팡본부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청문회가 끝난 지금, 달라진 것은 없다”며 “여전히 쿠팡 택배노동자는 혹독한 노동조건 그대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야간 배송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감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청문회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임상혁 녹색병원장이 ‘연속된 야간노동으로 대표되는 장시간 노동 등 고강도 노동수준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점을 상기시켰다.

쿠팡 노동자를 육체적·정신적으로 압박한 이른바 클렌징 제도가 시급한 개선 대상으로 꼽힌다. 클렌징 제도는 대리점이 배송 목표 항목을 충족하지 못하면 쿠팡 CLS가 배송 구역을 회수하는 것을 이른다. 가령 클렌징 항목 중 하나인 프레시백 회수율 요건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는 이집저집을 뛰어다니며 건당 수수료가 100~200원에 불과한 프레시백을 거둬야 하는 것이다.

강 위원장은 “쿠팡은 클렌징 항목 10개 중 6개를 삭제했지만, 삭제한 요건 중 프레시백 회수율, 배송마감시간 준수율을 대리점 재계약 평가지표(SLA)에 넣었다”며 “조삼모사”라고 비판했다. 기존에는 쿠팡 CLS와 대리점 간 위수탁계약서에 있던 클렌징 항목을 대리점 재계약 평가지표라는 위피만 바꿔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 위원장은 “쿠팡 노동자는 여전히 고용불안 속에 과로를 감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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