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헤 12월 28일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에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합동 공연을 펼쳤다. ⓒ유튜브 캡쳐
지금 광장에서 민중가요는 주류가 아니다. 다른 지역은 어떨지 몰라도 서울의 경우에는 케이팝이 더 많이 울려퍼진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물론이고, 에스파의 ‘위플래쉬’, ‘Supernova’, ‘Next Level’, 로제와 Bruno Mars의 ‘APT.’ 같은 노래들이 광장을 주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장에서 부르는 민중가요는 ‘헌법제1조’ 아니면 ‘임을 위한 행진곡’ 정도다.
하지만 민중가요의 위력을 느끼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 우선 민중가수들은 연대 공연을 요청했을 때 이런 저런 사정을 이야기 하면서 양해를 구하지 않고 즉시 달려온다. 무엇보다 민중가요는 쉽고 간명하게 표현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명쾌하게 말한다. 광장에서는 은유적으로 말하거나 행간으로 말하는 것보다 명명백백하게 말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고 이야기 할 때 알아듣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민중가요 아닌 노래라고 어렵게 말하지는 않지만, 민중가요가 아닌 노래들은 구체적인 사건과 이름과 가치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방식이 익숙하지 않아서이거나 예술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노래들은 광장에 모인 이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여의도, 한남동, 경복궁 앞 등에서 이어진 광장에서 음악인들이 연대공연을 펼칠 때, 가장 뜨거운 반응을 끌어낸 이들은 평소와 다르게 노래 속에 “윤석열을 구속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거나, “윤석열을 파면하랍신다”라고 공연한 음악인들이었다. 이들은 민중가요를 부르는 이들은 아니었지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적확하게 대변할 줄 알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유효기간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한남대로에서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 대개혁 비상행동' 참가자들이 철야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2025.1.6 ⓒ뉴스1
그리고 민중가요는 따라 부르기 쉽다. 민중가요가 아닌 노래들은 따라 부르기 어렵다는 건 아니다. 누군가가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따라 부르지 못하는 경우 세대 차이가 크게 작용한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들은 케이팝을 따라 부르는 게 어렵지 않지만, 중장년세대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민중가요는 어떤 세대든 따라 부르기 어렵지 않다. 민중가요 역시 예술가의 자의식과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게 중요하지만, 듣는 이들이 쉽게 수용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대중성과 확장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중가요 음악들이 대부분 연주력을 부각시키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부터 광장에 나온 인디 음악인들과 민중가요 음악인들의 노래에서 가장 큰 차이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인디 음악인들의 노래 중에는 따라 부르거나 함께 부르기 어려운 곡들도 있고, 함께 불렀을 때 싱얼롱의 매력을 느끼기 어려운 곡들이 대부분이다. 곧 공개할 민주노총의 컴필레이션 음반 [새노래]의 수록곡들 역시 광장에서 함께 부르기는 쉽지 않은 곡들이 많다. 인디 음악인들의 곡들은 함께 부르기보다는 혼자 듣거나 감상하기 좋은 노래들이 더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광장에 민중가요보다 케이팝이 더 자주 울려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광장을 주도하는 세대가 민중가요보다 케이팝이 더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 아닐까. 10대부터 30대까지의 세대는 케이팝을 훨씬 많이 듣고 자랐다. 그동안 그들이 참여한 집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이후의 촛불집회 문화는 ‘헌법제1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같은 몇몇 민중가요를 제외하면 대부분 인디 음악인들의 노래로 채워졌다. 1980~90년대의 학생운동권은 수많은 민중가요를 부르면서 투쟁했던 상황과 비교하면 2010년대 이후에는 학생운동의 영향력이 미미해졌을 뿐 아니라 민중가요의 결합력도 낮아졌다. 일상에서 케이팝이 친근하고, 민중가요를 만날 수 있는 경험이 줄어든 이들이 모인 집회에서 케이팝을 활용하는 게 당연하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 등을 촉구'하는 트랙터 대행진이 1박2일째 이어진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인근에서 집회 참가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12.22. ⓒ뉴시스
만약 민중가요가 케이팝을 비롯한 당대 대중음악의 사운드와 유사했다면 광장에서 좀 더 자주 울려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에는 새로운 음악인이 등장하지 않은 민중가요의 사운드는 당대 대중음악 사운드의 변화와는 거리를 둔 과거의 사운드로 머물렀다. 댄스블하지 않고 일렉트로닉 하지 않으며 록킹하지 않은 사운드, 다정하게 위로하거나 힐링하게 하지 않는 노랫말을 비롯한 민중가요의 언어는 현장성과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대를 만나고 사로잡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대개 50대 이상인 민중음악인들이 이러한 일들을 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반미, 노동해방 같은 구호가 당연했던 시대가 지나간 뒤에는 민중가요가 지향할 가치도 막연해졌다. 그러다보니 광장의 열기가 다시 민중가요를 호출하고 있지만 광장의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함께 할 수 있는 민중가요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남태령의 시간을 기억하는 이들은 더 뜨거운 노래, 더 생생한 노래를 요구할지 모른다. 더 많은 현장으로 연대하는 이들과 함께 윤석열과 전광훈이 씨 뿌린 반동의 시대를 싸워나갈 노래는 어디에서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