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재용 2심 무죄, 또 다시 재벌 앞에 무너진 상식

지난 3일 서울고등법원은 삼성 불법합병 사건 재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무려 19개의 혐의로 2020년 기소됐던 이 회장과 삼성 임직원 14명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벌총수는 무슨 짓을 해도 어떻게든 빠져나간다는 사례 하나가 추가됐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이루어진 불법행위는 그야말로 공공연한 것이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루어질 당시부터 이 합병의 진짜 목적은 ‘승계’라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통용됐다.

삼성물산을 지배하는 사람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지분구조 하에서 아니나 다를까 합병은 제일모직의 대주주였던 이 회장에게 최대한 유리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자회사의 회계부정을 비롯해서 온갖 의혹이 이어졌는데 하필 벌어지는 일마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을 헐값에 장악하도록 해주는 일뿐이었다. 재판부의 이번 판단은 이 모든 것이 의도치 않은 우연이거나 문제가 있더라도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 상식과 아득히 먼 거리가 있다.

이번 판결은 연관된 다른 재판에서의 판단과도 동떨어져 있다. 국민연금이 이 사건 합병에 찬성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2015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기금 본부장이 이미 형사처벌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 회장의 승계를 위한 뇌물을 받은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 회장 본인도 뇌물공여죄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뇌물을 주고받고 부당한 압력도 행사한 사실이 모두 입증됐는데 막상 승계 과정의 다른 모든 혐의는 무죄라니 어불성설이다.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분식회계가 있었고 그것이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는데 이 판결과도 배치된다.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외국계 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은 한국정부를 상대로 ISDS(국제투자분쟁)를 제기하고 승소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합병 과정에서의 불법과 정부의 부당한 압력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정부가 불복해서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수천억 원을 혈세로 물어줘야 할 판이다. 여기에 비추어 봐도 이재용 회장이 무죄일 수 없다.

이 사건은 누구나 범인을 알고 있는 범죄다. 신뢰받는 사법 시스템은 이럴 때 검찰이 그 범죄를 입증해서 범인을 처벌하거나, 재판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의혹을 해소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온갖 증거가 널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증거 확보 과정에서의 절차적 하자를 자초하며 입증에 실패했다. 긴 재판 과정에서 의혹은 어느 하나 해소된 것이 없는데 재판부는 모든 것을 삼성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며 무죄로 덮어버렸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법신뢰가 무너진다.

이제 대법원 상고만 남았고 검찰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무죄가 확정된다면 그것은 삼성의 사법리스크 해소가 아니라 국가의 사법신뢰에 대한 거대한 리스크로 귀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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