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황당무계하고 잔인한 정책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 총리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가자 지구를 미국이 "장악하고(take over) 소유하겠다(own)"고 말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 200만명을 강제로 이주시킨 후 미국 주도로 개발해 "중동의 리비에라로 만들겠다"는 말도 했다.
2차 대전 이후 이렇게 노골적으로 영토적 야심을 드러낸 경우는 없었다. 부동산 재벌 출신인 트럼프에게 가자 지구는 그저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땅으로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트럼프가 말한 '임의적이고 영구적인' 강제 이주는 국제법상 명백한 범죄다. 사실상의 제노사이드(소수집단 말살)이며,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온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년 넘게 가자에서 벌여온 학살과 추방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이야기이다.
트럼프는 가자 지구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떠날 것"이라고 호언했는데, 당연하게도 당사자들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하마스 대변인 압델 라티프 알카누는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입장은 우리 국민을 몰아내고 우리 대의를 없애라는 이스라엘 극우파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하마스와 대립해왔던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팔레스타인인을 조국에서 쫓아내겠다는 요구를 강력히 거부한다"고 발표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그곳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고향을 빼앗기고 가족과 헤어진 나크바의 고통을 기억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자신의 땅에서 쫓아낼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트럼프의 구상이 당장 실현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트럼프 행정부의 내부 인사들도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나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도 미온적인 태도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타초경사(打草驚蛇,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의 전략을 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급진적인 정책을 내세워 역내 국가들의 양보를 요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실현가능성과 별도로 트럼프의 구상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이는 20세기 전반을 세계적인 죽음과 파괴,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제국주의의 부활 선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아무런 주저 없이 이 같은 발표를 감행하는 건 절대 용납되어선 안 된다. 망상에 빠진 지도자가 미국을 이끄는 건 당면한 세계의 가장 큰 위협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