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쿠팡의 배송 계열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남양주 2캠프에서 일하다가 과로사한 고 정슬기 씨(사망 당시 41세)가 생전 남긴 메시지다. CLS 측의 ‘달려주십쇼’라는 배송 독촉에 정 씨는 그렇게 하소연했다.
정 씨는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시달렸다. 근로복지공단 조사 결과, 정 씨는 3개월간 일주일 평균 73시간 21분을 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의 ‘뇌·심혈관 질환의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인 일주일 평균 60시간을 훌쩍 넘는다. 근로복지공단은 “만성적으로 과중한 업무에 노출됐다고 판단된다”며 정 씨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정 씨를 옥죈 건 육체 피로만이 아니었다. 배송 마감 시간으로 인한 정신적 긴장 상태가 부담을 가중시켰을 것이라는 분석이 판정서에 담겼다.
무엇이 정 씨를 극한으로 밀어 넣었을까. 노동자 일자리를 볼모로 한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이다. CLS는 대리점이 배송 목표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배송구역을 회수한다. 이른바 클렌징 제도다. ‘CLS-대리점-노동자’로 이어지는 하청 구조에서 대리점이 배송구역을 회수당하면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배송 목표치는 매일 새벽 7시 전에 배송을 완료할 것으로 요구한다. 허용되는 배송기한 미스율은 고작 월평균 0.5%다. 200개 중 1개만 늦게 배송해도 클렌징 대상이 된다. 커뮤니티엔 빙판길을 뛰어 6시 59분을 겨우 맞췄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프레시백 회수율 목표치는 90%다. 이 목표치를 채우려면 배송 물건이 없는 곳까지 가서 프레시백을 집어와야 한다. 프레시백 수수료는 건당 100~200원 불과하다. 클렌징 항목에는 이런 배송 목표치가 10개나 제시돼 있다.
지난달 21일 열린 쿠팡 청문회는 의미 있는 변곡점이었다. 정 씨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추진한 국민동의청원이 한 달 만에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청문회가 성사됐다. 쿠팡이 자사 배송 시스템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국회 차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쿠팡의 노동착취 해결을 위한 시민들의 연대가 확인된 것이다.
청문회에서 쿠팡은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도출되는 결론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쿠팡의 새벽 배송 근로 여건은 열악하지 않다”(홍용준 CLS 대표, 2023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하지만 현장은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강민욱 택배노조 쿠팡본부준비위원장은 “올해도 분명히 쿠팡 택배 현장에서는 과로사고가 있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청문회 이후 현장은 달라진 게 없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쿠팡의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불신의 근원은 쿠팡의 눈 가리고 아웅식 대응이다. 앞서 쿠팡은 클렌징 항목 10개 중 6개를 삭제하기로 했다. 삭제 대상 항목에는 배송기한 미스율과 프레시백 회수율 등 항목이 포함됐다. 문제는 삭제하겠다고 한 항목을 사실상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클렌징 항목이 CLS-대리점 간 위·수탁계약서에 기재했다. 쿠팡은 위·수탁계약서에서 배송기한 미스율과 프레시백 회수율 항목을 삭제한 대신, 최근 신설한 대리점 재계약 평가 기준에 넣었다. 계약서의 외피만 바꾼 채 클렌징 항목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강 위원장은 “예전에는 클렌징 항목 수행률이 낮은 배송구역만 회수가 됐다면, 지금은 대리점이 통으로 재계약이 안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대리점들이 느끼는 압박이 더 커져서, 대리점이 기사를 더 압박하는 일이 실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쿠팡의 살인적인 클렌징 제도로 쓰러지는 노동자가 생긴다면 사회의 분노는 더 거세질 것이다. 쿠팡의 전향적인 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