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7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5.02.11.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 배경 중 하나로 '야당이 박수를 안 쳐줘서'라는 황당한 이유를 내세웠다.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 때 야당이 자신을 냉대했다는 취지인데, 정작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한 달여 전인 지난해 11월 시정연설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야당과 벽을 쌓으며 '11년 만에 시정연설 불참'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윤 대통령은 11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7차 변론기일 중 국회 탄핵소추위원단 측에서 '야당과 타협, 대화하지 않고 계엄으로 국면을 해결하려고 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제가 취임하기 전부터도 더불어민주당과 야권에서는 선제 탄핵을 주장하면서 제가 계엄을 선포하기 전까지 무려 178회를 퇴진과 탄핵 요구를 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이어 "제가 국회에 예산안 기조연설(시정연설)을 하러 가면 아무리 미워도 얘기 듣고 박수 한번 쳐주는 것이 대화와 타협의 기본인데, 취임하고 갔더니 아예 로텐더홀에서 대통령 퇴진 시위를 하면서 의사당(본회의장)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여당 의원만 놓고 반쪽짜리 예산안 기조연설을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반쪽짜리 기조연설'은 지난 2022년 10월 취임 이후 처음 나선 예산안 시정연설이다. 시정연설은 정부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하는 연설로,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직접 하는 것이 관례다. 새해에 나랏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를 설명하고, 동시에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자리다.
지난 2022년 시정연설 때 민주당 의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시정연설 전날 이뤄진 검찰의 민주당 중앙당사 압수수색 등으로 반발이 거셌다. 정의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착석했으나 '부자 감세 철회', '이 XX(욕설 발언) 사과하라' 등 피켓을 내걸며 항의의 뜻을 표출했다. 당시는 21대 국회였다.
윤 대통령은 또 헌재에서 지난 2023년 10월 시정연설을 언급하며 "다음번에는 (야당이) 들어왔는데, 전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제가 끝나고 악수하니까 안면이 있는 일부만 하고 전부 거부했다"며 "심지어 저에게 '빨리 사퇴하라'는 의원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제가 대통령으로서 야당이 아무리 저를 공격하더라도 왜 대화와 타협을 안 하겠나"라며 "이 정권을 파괴시키는 것이 우리(야당)의 목표라고 하는 것을 명확히 보여줬다"고 야당에 계엄 선포 책임을 돌렸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정작 계엄 선포 한 달 전 진행된 2024년 11월 시정연설은 불참했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첫 시정연설 자리였는데, 취임 이후 두 차례 시정연설을 한 윤 대통령은 지난해에는 이를 '패싱'했다. '명태균 녹음 파일'로 드러난 공천 개입 의혹, 김건희 여사 비위 논란 등 윤 대통령이 입장을 밝혀야 할 현안이 많았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 연설문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했다. 2013년 이후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직접 해 온 관행을 윤 대통령이 깼다.
앞서 그해 9월, 윤 대통령은 22대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해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첫 현직 대통령' 꼬리표를 달았다. 대통령실은 "국회가 이성을 되찾고 정상화돼야 한다"며 윤 대통령의 불참을 정당화했다.
여야의 대치, 경색된 정국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역할이 필요했지만, 윤 대통령은 야당의 비판을 무시하며 대부분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정쟁 우려' 등을 이유로 야당과의 접촉은 사실상 회피했다. 야당이 비판할 모습이 훤한데 '뭐 하러 국회에 가냐'는 식이었다. 협치에서 점점 멀어진 윤 대통령은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하며 날 선 태도를 보였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 시절,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도 손뼉을 치지 않거나 피켓팅을 하며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정연설에 냉랭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윤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이어 시정연설도 불참하면서 '야당의 박수'를 계엄의 명분으로 드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야당은 비판을 쏟아냈다. 민주당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내 "야당이 임금님 행차 대접해 주길 바랐나. 사사로운 감정에 분풀이로 군대를 동원해서 헌법기관인 국회를 습격했다는 말인가"라며 "뻔뻔하다"고 지적했다.
조국혁신당 강미정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통령 대접 안 해주니 일 못 해 먹을 만도 하셨겠다"고 헛웃음을 지었고, 정혜경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내 "한마디로 삐치고 빈정 상해서 총 들고 국회를 침탈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박찬대(왼쪽 다섯 번째)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해 11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앞두고 윤석열 정권 규탄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2024.11.04.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