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7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5.02.11. ⓒ뉴시스
“조선시대 원님 재판보다 못하다”, “인권 보장에 눈과 귀를 막았다”, “법과 원칙 무시”, “문명국가의 재판 원칙마지 무시”, “아무 효용이 없는 기관으로 전락할 것”. 이 모두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측이 탄핵심판 변론 기간 동안 헌법재판소를 겨냥해 쏟아낸 말들입니다.
심지어 개별 재판관들을 콕 집어 이념 공세를 벌입니다. 지난 정부 때 임명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 얼마 전 민주당 추천으로 임명된 정계선 재판관이 그 타깃이었습니다. 핵심 이유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거나 배우자 또는 친동생이 진보 성향 활동을 해왔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정치적 예단을 드러냈다”고 주장합니다. 가족의 정치적 성향을 재판관의 예단으로 연결 짓는 기묘한 주장입니다. 12일에는 문형배 재판관을 겨냥해 “일제강점기 재판관보다 못한 헌법재판관”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재판관의 출신 성분이나 주변인들의 성향, 재판 진행을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게 한다는 것 등이 주된 이유입니다. 윤석열 측 주장대로면 윤석열이 임한 정형식 재판관이 탄핵심판 사건 주심을 맡은 것이나, 국민의힘이 추천한 조한창 재판관이 심리에 참여하는 것도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측은 이 부분들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습니다. 또한 주 2회 변론기일 일정을 잡은 것을 갖고, ‘졸속심리’라고 비난을 퍼붓습니다. 이 역시 이율배반적입니다. 박근혜 탄핵심판과 비교하면 무리한 일정이 전혀 아니죠. 그때 박근혜도 헌재 심리를 지연시키려는 전략을 썼습니다. 지금 윤석열과 비슷한 주장을 했었죠. 그때 헌재 측은 단호하게 박근혜 쪽 입장을 일축했습니다. 당시 헌재의 입장을 기자들에게 설명했던 헌재 공보관이 지금 윤석열 대리인단에 있는 배보윤 변호사입니다. 알 만한 사람들이 지금 저러고 있는 겁니다.
실제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 심리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윤석열 측이 주장하는 공정성 시비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윤석열의 직접 신문이나 의견 진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변호인의 증인신문 도중 윤석열이 불쑥불쑥 마이크 잡고 끼어들어도 특별한 제지를 하지 않습니다. 얼핏 윤석열이 자기가 재판관이라도 되 것처럼 행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또한 일부 재판관은 윤석열의 관점으로 증인에게 공격적인 신문도 합니다. 이는 반대로 다른 쪽에서 ‘파면 대상인 윤석열을 너무 배려해주는 것 아니냐’는 식의 문제를 삼을 만한 요소들입니다.
윤석열 측의 행태는 너무도 이상합니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재판을 운영하는 기관을 아무런 명분도 없이 공격하고, 사건을 심리하는 개별 법관을 공격한다? 이러한 행태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실상 금기시되어왔죠. 과거 군사독재 시절 사법부까지 한통속이 되어서 무고한 민중들을 상대로 민주주의를 유린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땐 법관들이 정치권력에 부역하면서 민중들에게 불리한 재판 진행을 노골적으로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시대적 배경이 전혀 다릅니다. 사법부에 불만이 있을 순 있지만 판결이 나기도 전에 대놓고 재판부와 법관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1987년 이후 분명하게 확립된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의 기본원칙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와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헌재를 공격한다는 것을 문제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이 성역이 아니듯 헌법재판소와 재판관들 역시 성역이 아닙니다. 따라서 각각의 사건 당사자의 관점에 근거한, 최종 판결에 대한 평가와 비판은 사회적으로 허용되어온 측면이 있습니다. 윤석열 측의 행태는 그와 완전히 다른 성격이죠.
재판정에서 다퉈야 할 대상은 재판부나 재판관이 아니라 재판의 상대방입니다. 형사재판이라면 검사, 헌법재판이라면 소추위원, 즉 국회 측이 그 대상입니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 바로 윤석열과 윤석열 대리인단 변호사들입니다. 모두 내로라하는 법률가 출신에다 무수히 많은 재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니깐요. 간혹 결론이 뻔한 사건의 경우 재판을 포기한 쪽에서 일탈적 행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윤석열 측의 모습이 딱 그렇습니다. 이대로 가면 파면 결정은 불을 보듯 뻔해 보입니다. 피할 길이 없으니 파면 결정에 불복할 근거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헌재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할 수 있죠.
법률가 출신들이 이러니 여기에 올라타서 헌재를 공격하는 부류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습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같은 정치인들은 물론, 심지어 현직 검사장인 춘천지검장까지 가세했습니다. 지난 15일 울산 집회에서는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현직 의원들도 헌재 재판관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이러한 양상은 헌법과 법치주의에 대한 부정은 물론이고, 극우세력들을 자극해 또 다른 폭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아니 저런 대단한 사람들도 헌재가 문제라고 하지 않느냐? 그러니 우리가 헌재를 테러해서라도 정의를 구현해야 하지 않겠느냐’, ‘저들이 우리를 보호해줄 거야’ 하는 식의 어긋난 명분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죠.
국회 법사위 소속이자 윤석열 탄핵소추위원인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최근 ‘민중의소리’와 통화에서 윤석열 측이 판결도 나기 전에 헌재를 공격하는 데 대해 “매우 특이한 경우”라면서 “윤석열은 4년 전에도 검찰총장 시절 판사 사찰 문건 배포 행위로 감찰을 받았는데, 그때도 판사들에 대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격을 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지금 재판관들을 공격하는 건 나중에 헌재에서 탄핵 인용 결정이 나면 재판관들이 불공정하고 문제가 많다는 논리로 결정에 불복하려는 밑자락을 까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결정이 났을 때 강성 지지층들이 서부지법 폭동 사태와 같은 행동에 나서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자기네 강성 지지층들에게 그런 땔감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극우 집회에서 확인되는 주요 극우 인사들의 언동에서 나타나는 기류들이 심상찮습니다. 전광훈 목사는 “헌법 위에 또 하나의 권위가 있다”며 ‘국민 저항권’을 빌미로 헌재를 향한 공격을 조장하는 발언을 매 집회 때마다 하고 있고,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는 “헌법재판소를 박살내자”고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에는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헌재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거나, 사다리와 야구방망이 등을 준비했다는 글과 같이 헌재를 겨냥한 폭동을 모의하는 듯한 글이 다수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불과 한 달여 전 윤석열 구속영장이 발부된 날 극우세력은 서부지법을 테러했습니다. 그들은 영장 판사를 죽이겠다며 몽둥이를 든 채 법원 청사를 누볐습니다. 21세기 문명 국가에서 벌어졌다고는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분명한 건 이러한 전대미문의 법원 테러의 근저에 윤석열 체포영장 및 압수수색 영장 발부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사법부를 공격해온 윤석열의 헌법 부정, 법치주의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