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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오늘의 노래, 민중은 어디에

2월 12일 광화문에서 열린 내란종식 대보름 한마당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가수 강허달림. ⓒ유튜브 캡쳐

지난해 연말부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가 계속 이어지면서 민중가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렇다고 집회에서 민중가요만 활용하진 않는다. 여러 번 이야기했듯 최근의 집회에서 민중가요의 비중은 낮은 편이다. 물론 민중가요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호기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최근에 와서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알게 된 이들도 많지 않을까. 광장의 힘이다. 투쟁의 힘이다.

그런데 오늘의 민중가요와 대중음악에서 민중은 어떻게 등장해 노래가 될까. 민중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다를텐데 대체로 빼앗기고 억눌렸으며 싸우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는 저항과 혁명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민주주의자와 좌파가 세운 개념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빼앗기고 억눌리고 힘없고 소외된 이들은 모든 시대와 사회에 존재한다. 그들 중 저항하며 목소리를 내는 이들 역시 항상 존재한다. 다만 모든 피압박계급/계층이 다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변혁적 지향을 가진 지식인/활동가들은 싸우는 민중을 이상으로 여겼지만, 민중 안에는 서발턴(Subaltern)이 존재할만큼 민중은 복합적인 존재라고 보아야 한다.

어쨌든 근현대의 진보적인 예술가들은 빼앗기고 억눌린 이들이 스스로 민중으로 자리매김해 변혁의 주체가 되거나, 사회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민중들의 처지를 고발하고 증언했다. 진보적인 예술/운동이 추구해온 중요한 방식이자 활동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지식인이 민중을 계몽하는 방식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중이 주체화/급진화하는 과정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지난 2월 15일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11차 범시민대행진에서 공연하는 이한철 밴드. ⓒ유튜브 캡쳐

흥미로운 지점은 한국사회에서 민중에 대한 담론이 증가한 시대가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1980년대였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민중은 투쟁하는 민중이기도 했지만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대중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를 사로잡은 민중이라는 개념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시민과 개인이라는 담론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사회와 정치, 운동 모두 그렇게 변했다.

그래도 진보적인 예술운동 특히 음악운동에서는 민중에 대한 천착과 주목이 1990년대까지는 이어졌다. 반면 2000년대부터는 민중가요 진영에서도 민중에 대한 묘사와 서술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전투적인 민중가요를 부르는 이들이 여전히 활동했음에도 민중가요 속 민중은 기실 조직된 운동권에 가까웠고 그 밖으로 확장하지 못했다. 삶을 걸고 싸우는 이들과 연대하는 이들은 항상 존재했고, 이들 곁에서 노래하는 이들은 갈수록 늘었지만, 민중가요 밖에서는 민중을 음악에 담는 일이 더더욱 드물었다. 운동의 주체와 문화가 바뀐 탓이었다. 예술가들의 지향과 정체성이 변한 탓이기도 했다. 갈수록 집회와 예술에서 민중을 호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최근의 음악가들이 완전히 민중을 외면했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2010년대 이후 김동산, 예람, 황경하 등의 음악인들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장과 사드 반대 투쟁 현장 등에 꾸준히 연대하면서 [새 민중음악 선곡집]을 비롯한 음반을 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노래는 민중가요의 모델처럼 여겨지는 꽃다지, 노래를찾는사람들, 안치환, 우리나라만큼 인기를 끌거나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기존의 민중가요 진영에서 노래하거나 결합하지 않은 이들을 노래로 끌어안았다. 민중가요의 전통적인 정신을 계승하면서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방식이었을 뿐 아니라 현장에 밀접하게 결합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활동은 더 많은 주목과 평가가 필요하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10차 범시민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형형색색의 피켓과 응원봉을 들고 윤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2.8 ⓒ뉴스1

또한 사회운동의 성장과 맞물리며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같은 전통적인 의미의 민중에 포함되지 않았던 이들, 기존 민중가요에서 노래하지 않았던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노래하거나 당사자들이 직접 노래하는 사례가 늘어났다는 점도 중요하다. 여성음악인들이 위안부 피해자 여성의 삶을 담은 [이야기해주세요] 음반을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여성들의 삶을 담은 음악은 꾸준히 많아지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을 페미니즘의 대중화라고 볼 수도 있고 민중가요의 내용적 계승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의 곤궁한 삶을 노래하고, 또래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고발하듯 노래하며 싸움을 선언한 이랑의 노래는 2000년대 이후 저항음악의 눈부신 정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운동 당사자들은 노들테크노음악대를 만든데 이어, 음악가 이민휘와 함께 음악을 창작한다. 퀴어 당사자 중에는 지보이스 합창단을 꾸려 오래도록 활동 중인 이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이 4·16 합창단을 만들어 노래하는 모습도 민중이라고 호명할 수 있는 당사자의 자발적 예술실천이라는 차원에서 중요한 사례다. 물론 이들의 창작활동은 전문 예술가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이들의 노래는 전업 예술가들이 노래하지 않는 삶을 표현하면서 저항의 언어를 확장할 뿐 아니라 당사자들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 노래 안에 여전히 민중이 있다고, 이 노래들이 오늘의 민중가요라고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난헤 12월 28일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에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합동 공연을 펼쳤다. ⓒ유튜브 캡쳐

아직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내란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이번 사태를 거치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는 이들이 많아졌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태령 대첩처럼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들이 만나고 존중하고 연대하며 동지애를 쌓는 일이 늘어났다. 케이팝과 민중가요가 광장에서 만나는 중이기도 하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주체를 만든다. 달라진 감각과 태도는 다른 언어와 메시지를 가진 노래, 새로운 민중가요를 낳는 씨앗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노래, 지금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긴 노래, 완전히 다른 민중가요의 시대가 어디선가 싹트고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해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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