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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한동훈의 자기 소개, 피식 하고 웃었다

한동훈이 책을 낸단다. 그 소식을 듣고 아, 맞아. 한동훈이 있었지! 오랜만에 등장하니 반가운(응?) 마음도 들더라. 반가운(응??) 마음에 온라인 서점에서 한동훈이 썼다는 책을 찾아봤다. 그렇고 그런 별 볼 일 없는 책 소개를 쭉 따라가다 저자 소개 첫 줄에서 피식 하고 웃었다.

‘1973년 서울 중화동에서 태어나 충청북도 청주 모충동에서 자랐다.’

그래, 그 정도 센스는 있어야지. 내가 이 칼럼에서 종종 강조하지만 사악한 것과 멍청한 것은 다른 이야기다. 한동훈은 사악한 놈이지 멍청한 놈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악한 놈이 멍청하기까지 했는데 정치적으로 성공한 놈은 내 평생 윤석열밖에 못 봤다. 윤석열을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라는 이야기다.

한동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초중고를 모두 강남 8학군에서 나온 것이 그의 정치 행보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나라 보수 세력의 한 축을 이끄는 강남의 부자들도 한동훈의 이런 행보에 절대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 보통 영악한 사람들이 아니다. 한동훈이 자신을 대변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렇다고 강남 8학군을 자랑하듯 읊어대는 게 정치적으로 유리한 짓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해할 테니 말이다.

강강약약 같은 소리

나는 한동훈의 보통사람 코스프레에 별 불만이 없다. 일단 한동훈이 자신을 보통사람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은 빵퍼센트에 가깝고, 본인의 이념이 여전히 강남 귀족에 머무르더라도 정치인이라면 아닌 척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도 못 하면 정치고 뭐고 다 때려치워야 한다.

그런데 내가 그의 저자 소개에서 진심으로 웃기다고 생각했던 대목은 맨 마지막 줄이었다.

‘강강약약(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다)으로 권위주의 타파, 구태정치 개혁 등의 한국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강강약약이라고? 누가? 한동훈 니가? 나는 한동훈이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짐작이 간다.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키면서 체포 대상으로 삼은 게 한동훈이었다. 총살하려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한동훈은 계엄에 반대했고 당 대표에서 잘렸다. 지금 한동훈이 취할 수 있는 스탠스는 당연히 윤석열의 대척점에 서는 것이다. 이왕 대척점에 설 거면 이미지라도 잘 만들어야 한다. 신념에 따라 최고 권력자 대통령의 뜻에 반대한 사람, 그래서 당 대표에서도 잘린 사람. 이게 지금 한동훈이 강강약약을 운운하는 이유다.

그런데 한동훈 씨. 우리 진짜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한동훈 당신이 지금 그런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진짜로 당신이 강강약약이었나? 진짜로 윤석열에게 맞서 입바른 소리를 한 충신이었냐고? 당신이 윤석열에게 허리를 90도로 접는 이 사진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 특화시장에서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인사하고 있다. 지난 22일 밤 11시8분께 충남 서천 서천특화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점포 227개가 불에 탔으며 소방 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해 진화작업을 벌여 두시간여 만에 큰 불길을 잡았다. 2024.1.23. ⓒ뉴스1

당신이 감추고 싶은 진짜 속내를 내가 말해주랴? 평생 윤석열에게 아부를 떨다가 윤석열이 “영어를 잘한다”는 황당한 이유로 당신을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인재 풀이 말라버린 국민의힘에서 어쩌다 보니 당신은 유력 차기 주자로 떠올랐다. 당신도 욕심이 생겼겠지. ‘윤석열 저 머저리도 대통령을 하는데 내가 왜 못 하냐?’는 생각도 들었겠지.

그래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았고 현실 정치에 발을 들였는데 윤석열 인기가 바닥인 거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말했겠지. 윤석열과 거리를 둬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지금이야말로 차별화를 해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내가 한동훈 당신이 강강약약 운운할 때 피식 웃는 이유가 이거다. 차별화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 했다. 옆에 있어서 잘 알 것 아니냐?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저지른 범죄가 얼마나 중대한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멍청한지.

그때 용기를 내 윤석열과 차별화를 했다면 지금 당신에게는 훨씬 큰 자산이 생겼을 거다. 그런데 한동훈은 그러지 않았다. 되레 윤석열 앞에서 90도로 고개를 꺾었지. 그런 당신이 강강약약? 작작 좀 웃기자.

홈페이지에서 뒷담화한 거나 해명하라

강강약약이란 강한 자에게 결연히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에게 붙이는 수식어다. 그런데 내 기억이 잘 못 된 게 아니라면 나는 한동훈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 걸 못 봤다. 아, 윤석열 욕하고 다닌 거 보기는 했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아내, 딸, 어머니, 누나, 장인, 장모 이름으로 윤석열 부부 욕하고 다닌 거.

욕만 한 게 아니라 한동훈 당신을 찬양하는 글도 잔뜩 올렸더라. 그런 글이 국힘 게시판에 무려 900여 건이었다는데, 에라이 찌질아. 어느 나라 강강약약이 게시판에서 가족 아이디로 남을 씹고 다니냐?

작년 10월인가? 한동훈 당신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을 만난 일이 있었다. 윤석열이 두 손 쫙 벌려 테이블에 올린 다음 담임 선생님이 훈화하는 표정으로 당신에게 일장 훈시를 늘어놓은 그날 말이다.

미스터 강강약약 씨. 그날 얼마나 강강약약 하셨나 이야기 보따리 좀 풀어봐라. 얼마나 강강약약하셨는데 윤석열은 그로부터 보름 뒤에 내란을 일으키냐고? 내란 낌새도 못 채고 야단만 잔뜩 맞고 돌아온 거 아니냐?

더 웃긴 건 그 만남이 한동훈에게 굴욕적이었다고, 이제는 정말 한동훈이 윤석열과 결별해야 한다고 온 언론이 떠드는데 한동훈은 그 후 입을 꾹 닫아버렸다는 거다. 이게 무슨 강강약약이냐? 그냥 겁쟁이 쫄보지.

아무튼 서울 중화동에서 태어나 충청북도 청주 모충동에서 자라면서 강남 8학군에서는 학교를 나닌 적이 없는 것처럼 자기 소개를 한 한동훈 씨.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댁의 이런 보통사람 코스프레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런 코스프레는 앞으로도 마음껏 하고 다녀라. 나도 별 시비를 걸지 않겠다. 그런데 강강약약 같은 멍멍이 소리는 웬만하면 안 하는 걸로 합의하자.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역겨워견딜 수 없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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