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생포된 북한군 모습이라며 1월 11일(현지 시간) SNS를 통해 공개한 장면. (사진=우크라이나 보안국 페이스북 캡처) 2025.01.12 ⓒ우크라이나 보안국
작년 10월 중순은 명태균 게이트와 주가조작 특검 등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의 각종 리스크들로 떠들썩했었죠. 윤석열 지지율은 여전히 20%대 초반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명태균 리스크와 배우자 리스크 돌파구도 마땅치 않았던 그때, 새롭게 대중의 이목을 끈 국외 뉴스가 있었습니다. 북한군이 대거 러시아에 파병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국가정보원은 10월 18일 북한이 러시아군을 지원하기 위한 파병을 결정했으며, 병력 1천500명이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훈련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바로 전날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참석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러시아를 도울 병력 1만 명을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 정보는 우크라이나 정보국발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한국의 정보기관이 연달아 북한군 파병설을 꺼내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의 간접적 당사자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그 파병설에 대해 “확인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뭔가 이상한 지점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당사국이니 그렇다 쳐도 한국은 이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가입니다. 당연히 미국이나 나토에 비해 전황에 대한 정보가 정확할 수가 없죠. 미국과 나토가 확인하지 못한 정보를 한국 국정원이 앞장서서 확인했다고 하고 발표까지 한 것입니다.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확인했다는 정보에 대한 미국의 ‘미확인’ 입장은 한동안 유지됐습니다. 심지어 미 국방부는 북한과 러시아 관계에서 양국의 정보 교류 훈련 교류는 그 자체로 새로운 게 아니다는 말까지 합니다. 북한군이 전장에 파견됐을 가능성보다는 러시아와의 일상적인 정보 교류 군사 교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검토중’, ‘미확인’ 방침과 무관하게 한국과 우크라이나발 정보에 근거한 북한군 파병 규모는 1천500명에서 출발해 3천, 7천, 8천을 넘어 어느덧 1만 명을 넘어섭니다. 그사이 극동 지역에서 훈련 중이라던 북한군들은 순식간에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으로 대거 이동합니다. 11월 중순부터는 북한군이 쿠르스크 전장에서 전투에 참여했다는 뉴스가 우크라이나와 한국 정보기관발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은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주도하는 정보전에 올라타는 선택을 합니다. 다만 파병 및 참전 정보에 대해 ‘그렇게 평가된다’는 말을 합니다.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이 아닌 ‘평가’라는 모호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미국은 북한군 참전을 이유로 자국산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인 에이태큼스(ATACMS) 발사를 승인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드론전과 같은 현대전이나 광활한 대지에서 벌어지는 러시아전의 특성상 실전 경험이 전무한 북한군들이 전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채 희생되고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군 때문에 고성능 무기 사용을 승인합니다. 이런 연결고리들이 하나같이 어색합니다.
10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두 달여에 걸쳐 수많은 증거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증거들은 그 출처가 확인되지 않거나 우크라이나 당국에서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한국 언론들은 아무런 검증도 없이 기정사실화해서 전했습니다. SNS에 북한군 파병 증거라며 무분별하게 돌아다니던 사진과 영상들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인공기를 들고 있는 백인의 모습, 북한군으로 둔갑한 중앙아시아인, 북한군 신분증 합성사진, 개고기라는 이름이 쓰여진 통조림 사진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군 쪽에서 북한군 참전 증거 중 하나로 사망한 북한군 수첩 속 메모를 공개한 일도 있었는데, 이것도 참 재미있습니다. 이 수첩에 찍힌 워터마크는 우크라이나 특수부대군 휘장이었습니다. 러시아를 도우러 간 북한군이 왜 우크라이나군 수첩을 갖고 있었던 걸까요?
명백한 가짜 정보들이 판을 치던 와중에 우크라이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합니다. 동양인의 눈을 가진 군복 입은 사람을 영상에 등장시킵니다. 안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이 남성은 민간인 트럭으로 9266킬로미터를 이동해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됐고, 오자마자 40명 가까운 동료가 죽고 혼자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입 쪽을 다쳐서 발음이 정확하지 않지만, 얼핏 북한말을 그럴싸하게 사용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동안 나온 각종 조잡한 정보들에 비해 꽤 제대로 된 정보처럼 보입니다. 이 포로는 10월 말에 잡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뒤 젤렌스키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북한군과의 교전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앞뒤가 안 맞습니다. 12월 말에도 북한군이 포로로 잡힐 당시 모습이라며 한 사진이 공개됩니다. 그리고는 그 북한군이 치명상을 이겨내지 못해 바로 다음 날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수년 전 공개된 사진과 동일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의혹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1월 9일 생포됐다는 두 명의 북한군 포로 심문 영상은 매우 깨끗한 화질로 공개됩니다. 이 영상은 젤렌스키가 직접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보당국(SBU)과 한국 국정원이 합동 심문을 하는 장면이라고 했습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두 남성은 북한말로 보이는 언어를 구사하는데,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북한에 있는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우크라이나 측은 두 명의 북한군이 각각 1999년생, 2005년생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함께 공개된 이들의 군인 신분증도 뭔가 이상합니다. 1998년생 ‘아란친 안토닌 아야소비치’라는 이름의 신분증인데, 몽골과 국경을 접하는 투바 자치공화국에서 발급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측이 이 신분증을 공개한 배경은 짐작됩니다. 북한군을 투바 자치공 주민으로 위장하고자 이들 신분증을 위조하거나 도용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의문을 품는 서방 언론인들도 속속 나옵니다. 작년 말 BBC 기자가 쿠르스크 전장에서 직접 우크라이나 병사를 인터뷰한 내용이 공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상부에서 북한군 신분증을 지참한 북한군 포로를 생포하라고 지시했고, 생포하면 포상휴가 등 보상을 약속했다는 것인데, 문제는 북한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오메르타Omerta> 지의 편집장인 레지 르 솜미에 대기자는 작년 12월 27일 러시아 쿠르크스를 종군 취재한 내용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핵심은 자기가 본 북한군은 딱 한 명이었는데, 그조차 러시아 이민자의 자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러시아군에 이미 부리야트, 투바, 야쿠트 출신들과 아시아계 인종 병사들이 배치돼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체첸 아흐마트특수부대 사령관 알라우디노프가 자기 부대 ‘코리안’을 소개하는 영상도 있습니다. 작년 11월 22일 공개된 이 영상에서 ‘디마’라는 이름의 이 코리안은 러시아어로 사할린 출신 고려인이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아마 이 ‘코리안’이 프랑스 기자가 ‘북한군’이라고 묘사한 인물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실제로 190개 이상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러시아에서 아시아계 인종은 수없이 많습니다. 고려인 마을 사람들과 우리말로 대화하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도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명백하게 확인된 사실은 쿠르스크에서 북한군을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뉴스 속에서 결국 북한군은 전장에서 철수하기에 이릅니다. 1월 27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전선에 북한군이 철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며칠 뒤 1월 30일 뉴욕타임스도 ‘더 이상 전선에 북한군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2월 4일 한국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전선에 북한군이 철수했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2월 7일 BBC는 북한군이 다시 왔다고 보도했습니다. 젤렌스키는 12,000여명의 북한군 중 50%가 손실을 입어 철수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군 사망자가 수백명에서 수천명에 이른다는 정보도 난무합니다.
서방과 한국의 당국과 레거시 언론들은 우크라이나발 정보들이 어떤 검증 절차를 거쳤는지, 얼마 만큼의 신빙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의도적 묵인이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 많은 북한군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누구도 그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우크라이나와 한국이 주도해서 만들어놓은 이 판에서 북한군은 엄청난 존재가 되었습니다.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약 1만 킬로를 순식간에 이동하고, 전장을 마구 누빕니다. 전사해도 시체가 없습니다. 2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비밀 병기를 능가하는 전세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고스트 아미(Ghost army)’로 등극한 셈입니다. ‘고스트 아미’들이니 또 언제 전장에 모습을 드러낼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우크라이나든 한국이든 그들을 아무 때나 불러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