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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새로운 밴드의 이름, 행간소음 [독백적 집단]

록 마니아들이 이 음반을 들으면 계속 즐거움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밴드 행간소음 '독백적 집단' ⓒ헹간소음

한 달 전쯤 밴드 행간소음이 보낸 메일을 받았다. 새 음반 [독백적 집단]을 냈다는 소식이었다. 가끔 이렇게 음반이나 싱글을 냈다고 알리는 메일을 받곤 한다. 이런 연락이 반가운 이유는 몰라서 놓치는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5,000곡이 나오는 세상에서는 놓치는 음악이 있기 마련이다. 직접 메일을 보내서 알려주는 음악인들이 고마운 이유다. 그래서 적어둔다. 내 이메일 주소는 bandobyul@gmail.com이다.

4인조 록밴드 행간소음은 2023년 9월 25일 첫 번째 싱글을 발표했다. “당신의 행간에서 일어나는 소음이 되고자 하는” 밴드가 첫 정규음반을 내기까지 1년 반이 걸린 셈이니 그리 늦은 편은 아니다. 만약 행간소음이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들의 존재를 영영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거다. 좋은 음악은 어떻게든 알려진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전해도 가장 효과적인 통로는 입소문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겠지만 낭중지추 같은 행간소음의 소문을 듣게 되었을 게 분명하다. 그만한 음악이다.

특히 록 마니아들이 이 음반을 들으면 계속 즐거움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이 음반에는 그동안 국내외 밴드들이 만들어놓은 사운드와 작법의 그림자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12곡의 수록곡을 듣는 동안 많은 밴드와 장르의 이름이 떠오를 거다. 한국의 모던록밴드부터 시작해 익스페리멘탈 밴드와 아트록 밴드까지 떠올리게 하는 곡들이 이어진다. 이쯤 되면 밴드의 능력과 야심에 대해 묻고 싶어진다. 어떤 음악을 들어왔고, 어떤 밴드를 좋아했는지 밤새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구조와 사운드가 펼쳐지는 음반인 탓이다. 사실 활동경력이 짧은 음악인들의 음악에는 영향 받은 음악들이 도드라지곤 한다. 참고했을 사운드의 순간과 자기만의 사운드로 나아간 순간이 혼재한 음악은 이후의 변화를 예고하며 모든 예술가들은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행간소음 - 아무것도 아니야

가령 두 번째곡 ‘아무것도 아니야’의 초반부에서 행간소음이 만들어내는 영롱한 기타 사운드가 차츰 묵직해지고 격렬해질 때 행간소음의 지향은 선명해진다. 연주가 더욱 길어지다가 급기야 빨라지면 행간소음을 이렇게 저렇게 규정할 수 있을 것 같아진다. 연주의 격렬함에 대비되는 보컬의 순하고 풋풋한 질감 역시 마찬가지다.

이쯤에선 노랫말을 살펴야 할 순서다. “막연하게 길을 잃은 듯 / 몽롱함에 비벼지는 듯 / 천천히 미끄러지듯 / 행복한 꿈을 꾸는 듯”이라고 노래하는 ‘아무것도 아니야’는 행간소음의 이 같은 사운드를 지향하는 밴드의 목표를 고스란히 고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노래하는 가사는 단일한 의미나 장르에 갇히기를 규정하기를 거부하는 밴드의 의지처럼 다가온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음악들로부터 영향 받았지만 “끝이 없는 끝말잇기”처럼 계속 변주하려는 태도는 타이틀곡이 아닌 노래에서 이미 선명하다. 한편 비정한 관계를 노래하는 ‘이른 귀가’, “오늘 밤은”이라는 가사를 반복하는 ‘오늘 밤은’에서 행간소음은 완성되어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노래하지 않는다. 어긋나고 부서지는 감정의 파장을 노랫말로 써내려가고 그 감정을 연주로 분출하는 방식이다.

길이가 긴 곡과 연주곡이 공존하는 음반은 이들이 어떤 사운드의 세계를 탐구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점층적으로 음악의 서사를 쌓아가다 폭발시키는 방식은 록 음악에서는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행간소음의 음악에 귀가 쏠리는 이유는 음악의 서사가 탄탄하고 연주에서 에너지의 밀도가 흩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같은 구조가 전형적일 수 있다는 위험을 덜어내기 위해 곡과 곡 사이 연주곡을 배치한 게 아닐까.

특히 노랫말이 잘 들리지 않는 익스페리멘탈 곡 ‘술래’는 음반의 제목 [독백적 집단]과 연결되는 노랫말로 관계의 조화와 어긋남을 성찰하면서 밴드의 지향을 풍성하게 표출한다. ‘정동 23번에 대한 메모’ 역시 마찬가지다. 타이틀곡 ‘17시’는 아트록에 가까운 사운드 메이킹과 장르의 혼재와 변형, 전형을 깨는 흐름을 통해 타이틀곡의 이유를 증명한다. 그에 비하면 ‘느린 춤’과 ‘나에게 맺힌 수만 가지의 당신에게’는 훨씬 전통적인 어법의 곡이지만 매끈한 멜로디로 사로잡는다. “이젠 지나버린 시간을 등지고 / 느린 춤을 추며 웃는 표정으로 / 모두 괜찮다고 아무도 안 믿는 / 귀한 위로들을 애써 나눠 갖네”라는 노랫말에 배어 있는 정서는 흔쾌하지만은 않지만, 훨씬 품이 넓어진 모습이다. 자신에게 스며들어있는 수많은 당신을 거명하며 노래하는 마지막 곡 역시 마찬가지다. 음반의 서사를 고민하지 않았을 리 없는 음반의 마침표는 밴드 행간소음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명확하게 표현한다. 음악 언어와 이야기를 갈고 닦아 연결해낸 음반이다.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려 고심한 음반이다. 록 음악의 시대가 다시 오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런 음반을 내놓는 밴드들이 많아진다면 밴드의 시대가 빨라지지 않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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