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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만세] 마을 활성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고 신영복 선생은 ‘역사는 변방이 중심부로 진입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아이들, 학부모들, 주민들 어울려 마을의 ‘장암산’에 올랐다. 더 자주 모이고, 더 많이 작당해보자. 오늘이 즐겁고 재미있어야 미래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경험은 과거속에 박제되어 있지 않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원동력으로 현재에 살아있다. ⓒ필자 제공

‘여민동락공동체’의 1, 2월은 단기·중장기 계획 수립으로 분주하다. 27개 경로당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마을 어르신들께 여쭙고, 지역사회 리더들의 의견을 듣고, 유관 단체들과 협의한다. 마을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참여하는 마을 돌봄 연계망을 촘촘하게 짜야 한다. 어르신들이 인간답고 존엄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주간보호센터’를 따뜻한 보금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42개 자연마을에서 열리는 동락점빵 이동장터, 경로당 문화여가 프로그램, 마을 주민들과 함께 나누는 공동체 밥상, 마을 어울림 문화제, 어르신의 병증과 자립 생활 수행 정도에 따른 개별화 된 돌봄 구상과 치유회복 프로그램 제공 등 올해 노인복지·지역복지는 그 어느 해보다 왕성한 활동을 할 준비를 마쳤다.

3월 개학과 동시에 마을교육공동체 활동도 본격화된다. 시골 마을의 유일한 학교인 묘량중앙초등학교와 연계한 6개 ‘마을교육과정’에 주민들이 마을교사로 참여한다. 마을은 학교가 된다. 인문, 생태, 역사, 농사, 과학 등의 영역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함께 책임진다. 올해는 마을 영화제, 마을 아카데미(시민교양강좌)처럼 묘량면을 넘어 영광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 문화 공론장도 연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 문화 프로그램은 학부모들이 직접 프로그램 기획자로, 마을교사로 참여하여 운영한다.

할 일이 태산이다. 여민동락 혼자는 엄두조차 못 낼 일이다. 마을 주민들이 뒤에서 받쳐주고, 옆에서 잡아주고, 앞에서 끌어주니 가능한 일이다. 씨줄과 날줄로 엮인 관계의 그물망은 아이부터 노인까지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안전망이 되었다. 2007년, 한 10년 정도 해 보자고 시작한 일들은 20년을 내다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마을복지, 마을교육, 마을재생 등 농촌공동체를 살리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해 왔던 시간이 만든 신뢰와 협력의 두께가 제법 두꺼워졌다. 섬기고, 나누고, 협력하는 원칙으로 다져진 기초 체력 덕분에 배짱도 두둑해졌다. 지방소멸의 위기 앞에서도 쫄지 않는 자신감이라니!

대한민국 지속 가능한 미래의 거처는 ‘농촌’이라고 믿는다. 농촌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개발해야 한다. 물량 공세를 앞세워 하향식으로 밀어붙이는 ‘묻지마 개발’은 안 된다. 한탕주의적이고 토건적인 방식의 개발은 상처만을 남긴다. 마을을 살리겠다는 개발 사업이 오히려 마을을 해체하는 역설로 귀결되어 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은 주민들 속에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서 새로운 농촌개발 패러다임은 농촌지역이 서로 다른 많은 지역공동체로 구성되며, 각각은 자신만의 정체성, 필요, 열망,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농촌개발 전략은 더 이상 개발의 해법이나 청사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공동체들이 스스로의 목표를 확인하여 자신의 개발계획을 스스로 시행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되었다."
- 책 ‘농촌 : 지리학의 눈으로 본 농촌의 삶, 장소, 그리고 지속가능성’(2016), 마이클 우즈


더 이상 농촌은 퇴행적이고 낙후해서 도시를 따라잡기 위해 외부의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 지역이 아니다. 오랜 기간 형성된 고유한 사회 문화적 환경 자원과 상호 관계망으로 연결된 사회적 자본의 힘은 농촌이 가진 내생적 발전 가능성의 근거이다. 국가 주도의 농촌 개발 근대화 패러다임은 지역 주민이 스스로 계획하고 참여하는 상향식의 내생적 개발을 강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농촌 마을의 지속 가능한 미래는 마을의 현재를 살고 있는 주민들의 손에 달려있다. 주민들의 긴밀한 상호 연대와 자치력을 바탕으로 마을의 비전을 만들고 실천해야 한다. 주민은 국가 행정이 주도하는 그림을 쫓아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창조해나가는 역동적인 주체이다.

고 신영복 선생은 ‘역사는 변방이 중심부로 진입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여기, 변방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주민들이 만들어내는 재생과 부활의 기적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여민동락의 활동가들은 주민들에게 묻고 궁리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행동 양식을 규정하는 윤리이며 의사결정의 원리이다. 마을의 일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에 부닥치기도 한다.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더디거나 우여곡절을 겪을지언정 결국은 해법을 찾아 나갔다. 그러므로 2025년도 배짱 두둑하게 시작한다. 잘 될 것이다.

더불어 공생하는 마을을 위해, “slowly but surely!”(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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