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차 법제사법위원회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관련 청문회가 정회된 뒤 회의실을 나가고 있다. 2024.07.19. ⓒ뉴시스
어떻게 됐냐?
깊은 데선 안 했다는데, 인원이 떠내려가고. 안 보인다고 그래서 빨리 가보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 7월 19일 해병대 1사단장이던 임성근과 포7대대장 이모 중령의 통화 내용입니다. 수해로 인한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던 해병대원 채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직후였습니다. 임성근은 해병대 수사단 조사와 군사법원에 낸 진술서 등에서 부대원들에게 “물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수차례 지시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이 통화에서 확인되는 사단장의 반응은 진술 내용에 비춰봤을 때 매우 의아합니다. “깊은 데선 안 했다”는 대대장의 말은 수중수색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임성근은 이 말을 듣고 전혀 놀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임성근이 ‘수중수색’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들립니다. 이 중령의 변호인인 김경호 변호사는 당시 ‘민중의소리’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단장의 반응이 비상식적”이라고 의문을 표한 바 있습니다.
사고 초기부터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다
임성근은 다 계획이 있었던 걸까요? 그는 박정훈 대령이 이끌던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를 받기 직전 수사단장이던 박정훈 대령이 “해병대가 쪽팔리게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하자, “그렇게 하겠다.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초동수사가 끝날 무렵에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사단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합니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되더라도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그 전후로 보여진 임성근의 행보는 “책임을 지겠다”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사고 초기부터 임성근의 행보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습니다.
먼저 사고 직후 이 중령과 통화할 때 임성근의 반응을 봅시다. 급류에 휩쓸려 내려간 채상병 수색 작업이 시급한 상황에서 왜 빠졌고, 빠질 때 간부 누가 옆에 있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현장 간부들의 책임 소재를 확인하려는 취지입니다. 부대원들 언론 접촉이 되면 안 된다고 걱정하면서 언론 접촉을 통제하고 부대원들이 관리되어야 한다는 말도 합니다. 채상병이 실종된 상태에서 임성근의 관심사는 구조 및 수색이 아닌 다른 데에 더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김계환 사령관에게 했다는 사고 보고에서는 ‘수중수색’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임성근은 김 사령관에게 ‘수중수색’이 아닌 ‘수변수색’ 중에 ‘둑이 무너져서’ 물에 빠졌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김 사령관이 국방부 검찰단 조사에서 한 진술에서 확인됩니다.
“사단장으로부터 주변 수변을 수색하다가 ‘둑이 무너져서 물에 빠졌다’라고 보고 받아서, 당시에는 물에 들어갔다는 생각은 전혀 몰랐고, 주변의 둑이 무너져서 물에 빠졌다고 인지했고, 장관님께 같은 취지로 보고했다.” 2023.8.17. 김계환의 3회차 참고인 진술조서
하지만 임성근은 이미 이 중령으로부터 수중수색 사실을 보고받았던 상태였습니다. 그래놓고 김 사령관에게는 수변 수색 중에 사고가 났다고 보고한 것이었습니다. 해병대원들이 수중수색에 대비한 안전장비를 전혀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색 작전에 투입된 사실이 확인된 만큼, 채 상병이 수중에 있었는지 수변에 있었는지는 임성근의 지휘 책임과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임성근은 사고 직후부터 이 지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 대령에게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한 다음날 정식 조사에서는 자신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부인하면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진술로 일관했습니다.
그 무렵 임성근은 주변의 법조계 인맥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합니다. ‘민중의소리’가 확보한 그해 7월 28일과 8월 9일 사이 임성근의 수·발신 통화내역에서 확인됩니다. 우선 임성근은 7월 28일부터 8월 1일까지 자신보다 한참 아래 계급인 해병대 1사단 법무실장에게 8차례 전화를 겁니다. 8월 5일과 6일 이틀 동안엔 해군검찰단 군검사 및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법무실장 출신 A변호사와 4차례 통화합니다. 모두 임성근 발신이었습니다. 7월 31일부터 8월 9일까지 자신의 외사촌 동생이자 현직 검사인 박철완 광주고검 검사와는 무려 20회에 걸쳐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습니다.
이러는 동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특정해 경찰에 이첩하기로 하고,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보고를 거쳐 7월 30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결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인 7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은 오전 회의 자리에서 그 내용을 보고받고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하겠느냐”며 격노를 합니다. 그리고는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을 통해 혐의명과 혐의 대상을 빼라는 지시가 내려집니다. 임성근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특정한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지 말라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박정훈 대령은 이를 수사 외압이라며 거부하고, 경찰 이첩을 강행합니다. 그러자 군당국은 박 대령의 해병대 수사단장 보직을 해임하고, 경찰에 이첩된 걸 되려 회수해 국방부 조사본부로 사건을 넘겨버립니다. 박 대령은 보직 해임과 동시에 군검찰로부터 항명죄로 기소됩니다. 이 과정에서 박 대령의 폭로로 임성근을 고리로 한 수사외압 의혹이 세간에 알려졌습니다.
임성근 한 명을 사건에서 빼내려고 대통령과 국방부 윗선들이 일제히 움직였고, 삽시간에 경찰 이첩 대상에서 임성근이 제외됐습니다. ‘도대체 임성근이 뭐길래?’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확산됐습니다. 한동안 그 의혹이 풀리지 않던 와중에 ‘민중의소리’는 법조계 관계자로부터 ‘김건희가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련 인물이 관여된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당시엔 그 내용을 보도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관계에 대한 추가 취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몇 달 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VIP를 통한 임성근 구명 로비’를 언급한 육성 통화 파일이 공개됐습니다. 통화 상대는 같은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멋쟁해병’이라는 이름의 단톡방 멤버들입니다.
윤석열 격노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는 핵심 단서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이종호 전 대표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김 변호사에게 언급한 VIP가 김건희 여사였다고 시인한 이후부터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국회 소관 상임위 현안질의나 국정감사 등에 여러 차례 불려졌지만,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이 판을 깔아준 기자간담회에서 이종호 전 대표를 제외한 ‘멋쟁해병’ 단톡방 멤버들이 김규현 변호사를 비난하면서 이종호와 임성근의 결백을 대신 해명해주는 희한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 사건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윤석열은 수사외압 의혹 규명을 위한 특검법에 대해 연거푸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윤석열이 자기를 보호하려고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 거부권을 남용한 것입니다. 그렇게 진실규명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임성근의 두 얼굴
채상병의 순직 이후 임성근을 고리로 한 수사외압 의혹의 진실이 묻혀가는 동안 임성근은 자기 변호와 이미지 관리에 상당한 공을 들입니다. 특히 대외적으로 채상병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는 말을 거듭하면서, 정작 자신을 고리로 한 의혹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대해서는 적극적인 변론을 펼칩니다.
박정훈 대령의 폭로로 수사외압 의혹이 드러나고 특검 필요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민중의소리를 포함해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등에 자신을 혐의자로 특정한 해병대 수사단 초동수사 내용이 허위라는 내용의 자료를 발송합니다. 무려 수천페이지 분량에 달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초 박정훈 대령의 항명죄 재판 과정에서 대통령실 개입 증거들이 속속 나오면서 임성근의 자기 항변은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곳에서는 눈물도 흘립니다. 사고 며칠 뒤 있었던 채상병 영결식과 이듬해 순직 1주기 추모제에서 임성근은 침통한 표정으로 채상병을 애도했습니다. 그런데 채상병 영결식에서는 슬픔에 빠진 유가족과 동료 장병들을 뒤로하고 정치인들 의전하기 바빴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국회 청문회에서는 증인 선서를 수차례 거부했습니다. 위증죄 처벌을 의식해 증언 선서를 거부해놓고 “진실에 입각해 성실하게 증언하겠다”고 말장난을 합니다. 위증죄 처벌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자 국회 증언을 번복한 일도 있습니다. 구명로비 의혹 핵심 인물인 이종호 전 대표 일행 초청장을 자기 명의로 보낸 사실을 부인했다가 해당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고 나서야 기존 증언을 번복한 겁니다. 채상병이 수중 수색을 했다는 사실을 그날 저녁 7시경에야 알았다는 허위 주장도 대놓고 했습니다.
정치권과 문재인 정부 인사, 정치 브로커에게 직접 연락해 이미지 세탁을 시도한 정황도 발견됩니다. ‘민중의소리’가 임성근의 통화기록을 직접 분석한 결과, 임성근은 채상병이 순직한지 2주일도 지나지 않은 그해 8월 1일 오전 국회 국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에게 전화를 겁니다. 해병대 수사단 초동수사 말미인 그해 7월 29일 저녁에는 문재인 정부 국방부 고위직 출신 인사 B씨와도 4분 이상 긴 통화를 나눕니다. B씨는 임성근이 해병대사령부 참모장을 할 때 몇차례 식사를 하면서 관계를 맺었다고 했습니다. 수도권에서 활동하면서 정관계 인사들과 두루 친분이 있는 해병대 전우회 인사 C씨와는 세 차례 긴 통화를 나눕니다. 저희 취재진의 확인 통화에 응했던 C씨는 도리어 기자에게 몇차례 직접 전화를 걸여 임성근의 훌륭한 인품에 대해 언급하고, 임성근과 상반된 주장을 하던 포대장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모두 임성근 구명로비 의혹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확인된 인물들은 아닙니다. 다만 임성근이 진영과 분야를 불문하고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규현 변호사는 지난해 8월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서 “임 전 사단장이 로비를 했다면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했을 것”이라며 “본인이 진급할 때도 많은 루트로 로비를 해서 국방부나 청와대 근무하던 사람들이 ‘도대체 임성근이 누구길래 도처에서 전화가 오는 거냐’ 이런 얘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진급 때도 그랬는데, 본인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는 더 하지 않았겠나”고 말했습니다.
‘명예로운 전역’이 용납되어선 안 되는 이유들이 차고 넘친다
박정훈 대령의 항명죄 무죄 판결로, 임성근이 당초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이첩 대상이었다는 해병대 수사단 결론의 정당성도 어느 정도 입증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임성근은 채상병이 속했던 부대의 총책임자였습니다. 채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에 이르게 된 수중 수색 지시는 임성근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증거와 증언들이 넘칩니다. 해병대 공보실에서 올린 수중 수색 사진을 보면서 “훌륭하게 공보가 이뤄졌구나”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수중 수색을 지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대원들이 물에 들어갔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윤석열의 격노와 대통령실의 개입에 의해 경찰 단계에서의 사법처리를 피했지만, 임성근은 여전히 공수처 수사선상에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전역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작년 8월 국방부는 추미애 민주당 의원실에 “임 소장은 공수처 수사 중으로 ‘국가공무원법 78조의4’와 ‘군인사법 35조의2’에 따라 본인 의사에 따른 전역이 제한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가공무원법 78조의4에 따르면 △ 비위와 관련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때 △ 징계위원회에 파면·해임·강등 또는 정직에 해당하는 징계 의결이 요구 중인 때 △ 조사 및 수사기관에서 비위와 관련하여 조사 또는 수사 중인 때 △ 각급 행정기관의 감사부서 등에서 비위와 관련하여 내부 감사 또는 조사 중인 때 퇴직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또 군인사법 35조의2에서도 △ 비위와 관련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때 △ 징계위원회에 중징계에 해당하는 사유로 징계의결이 요구 중인 때 △ 수사기관에서 비위와 관련해 조사 또는 수사 중인 때 △ 비위와 관련하여 내부 감사 또는 조사가 진행 중인 때 전역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임성근에 대한 수사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대구지검은 작년 10월 경찰 발표와 달리 임성근을 피의자로 전환해 압수수색했습니다. 공수처도 직권남용 혐의로 임성근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파면되면 특검을 통한 진상규명 절차도 예정된 수순입니다. 작년과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국방부는 2월 25일 임성근을 무사 전역시켰습니다. 징계 절차에도 회부하지 않았습니다. “수사 자료를 회신받지 못해 징계 절차를 진행하는 데 제한이 있었다”는 게 이유입니다. 국방부의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외부 수사기관이 아니더라도 이미 해병대 수사단과 국방부 조사본부와 같은 군 자체 조사 기록이 충분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내부 징계가 반드시 외부 수사와 연동되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상 특혜 전역에 가깝습니다.
임성근은 인사상 불이익 없이 조용히 군을 떠날 수 있게 됐습니다. 전역한 장성으로서 앞으로 군인 연금과 보훈 혜택, 사회적 예우도 아무런 제약 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해병대판 법꾸라지 임성근의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