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수괴 윤석열이 석방됐다. 몇 있지도 않은 친구들이 카카오톡으로 분노를 토로했다. 나도 잠이 오지 않았다. 뭐 이런 개떡같은 석방이 다 있나?
내가 법을 잘 몰라서 법리적으로 뭐라 논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석방이 얼마나 후진 결정인지는 알겠다. 민중의소리에 기고한 하승수 변호사의 글([하승수의 직격] 작심한 듯 윤석열 풀어준 심우정은 사퇴해야)을 보니 검찰이 아예 마음을 먹고 저짓을 한 것 같더라.
검찰도 검찰인데 듣도보도 못한 논리를 펼친 사법부를 보면서 쟤들 참 배알도 없구나 한숨부터 나왔다. 아무리 한국의 사법부가 보수 세력의 중요한 축이라 해도 서부지법 난동을 겪고도 저런 생뚱맞은 논리를 개발해 윤석열을 풀어줄 줄은 정말 몰랐다. 검찰이 멍멍이판인 것이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고.
그런데 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그렇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언제는 안 그런 적이 있었던가? 세상은 늘 보수의 우위에 있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알고도 현실을 마주하며 한 걸음씩 전진해 왔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돌이켜보면 지난 주말의 분노가 2022년 3월 9일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던 그날만큼의 분노였겠나? 2012년 12월 19일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됐던 그 추운 겨울날만큼 가슴을 시리게 했겠나?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또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다 때려치우고 이민이나 가야겠다”며 울분을 토했던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버텼고 또 싸웠다.
유럽 진보진영에서 매우 논쟁적인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이라는 철학자가 있다. 나 역시 그의 말에 동의를 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를 못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그가 난민에 대해 남긴 말 가운데 한 가지는 나도 인상 깊게 들었다. 지금 사는 세상이 싫다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이주하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난민들이 남유럽으로 이주해도 그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나은 나라를 찾기 위해 중부 유럽으로 이주해도 처지가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 나은 나라를 찾아 북유럽으로 이주해도 결과는 똑같다. 지젝이 “당신들이 꿈꾸는 노르웨이는 없다”라고 단언하는 이유다.
나 역시 이 말에 동의한다. 윤석열이 꼴보기 싫어서 이민 가버리겠다는 친구의 심정은 백분 이해했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싸워 우리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나도 지난 3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려 약이 없으면 하루도 잠을 못 잤다. 윤석열 석방 소식에 주말 내내 빡쳐서 일이 손에 안 잡혔다. 그래도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법원의 구속 취소 청구 인용으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빠져나오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5.03.08. ⓒ뉴스1 함께 싸우면 쉽다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종종 꺼내는 이야기가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사회심리학과 사이먼 슈날(Simone Schnall) 교수가 2008년 발표한 ‘경사도 실험’이라는 것이다. 슈날은 버지니아 대학교 학생 34명을 대상으로 실험에 나섰다.
슈날은 학생들을 언덕 앞에 서게 한 뒤 “당신들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언덕의 경사도를 어림짐작해 보라고 요구했다. 학생들은 오로지 눈대중으로만 언덕의 경사도를 짐작했다.
실험 결과 참가자의 성별이나 운동 능력은 어림짐작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평소 운동 좀 했다고 경사를 만만하게 보는 일도 없었고 평소 허약한 체질이라고 경사를 과장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어림짐작에 영향을 준 단 하나의 요소는 옆에 친한 벗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친구가 있을 때 참가자들의 짐작치는 홀로 경사도를 짐작한 이들의 수치보다 평균 10∼15% 낮았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친구와 우정이 더 깊을수록, 관계가 오래되고 더 따뜻한 사이일수록 더 심해졌다. 심지어 친구가 옆에 없더라도 머릿속에서 친구나 가족을 떠올리기만 해도 경사도는 낮아졌다. 친구가 있을 때 앞으로 닥칠 난관이 훨씬 쉬워 보였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동지들과 함께 할 때 앞에 닥친 어려움을 훨씬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무거운 배낭 메고 언덕을 올라가면 당연히 힘이 들겠지! 하지만 벗이 옆에 있으면 우리는 훨씬 기꺼운 마음으로 그 난관을 맞이한다.
힘겹게 내란 우두머리를 구속해 한숨 돌렸나 했는데 법원과 검찰의 반동으로 국면이 다시 바뀌었다. 하지만 우리가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부린 폭도들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욕은 주말까지 실컷 다 했다. 이제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싸워야 할 때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멀지 않았다. 벗들을 믿고 함께 토닥이며 전열을 정비하자. 서로 미소를 주고받으며 기꺼이 이 싸움을 감당하자. 우리는 그렇게 진보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