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복궁 서십자각터에서 단식농성 중인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공동의장단이 10일 농성장 안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2025.03.10. ⓒ김도희 기자
'3일 차.'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즉각 파면'을 촉구하며 비상행동 공동의장단이 곡기를 끊었다. 윤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에서 평화롭게 일상을 누리는 날만큼,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이들의 단식도 길어진다.
10일 서울 경복궁 서십자각터에 설치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공동의장단의 단식농성장은 오가는 이들로 북적였다. 각 단체의 '대표'를 맡은 공동의장단의 단식 소식에 조합원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찾아왔다.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춘 시민들은 "빠른 탄핵 완성하자" 방명록을 남겼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관심을 기울이며 사진을 찍었다.
법원의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과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 '뒤통수'에 갑작스럽게 진행된 단식농성이지만, 분위기는 단단히 결속돼 있었다. 윤 대통령과 검찰을 향한 분노는 사흘째로 접어든 비상행동 공동의장단 20여 명의 '철야 단식'에 원동력이었다. 농성장에서 가장 많이 보인 물품은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파면' 피켓이다.
농성장에서 만난 박석운 공동의장(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은 왼쪽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박 의장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서 "토요일(윤 대통령 석방일)에 눈이 충혈됐다. 너무 충격받고 열 받아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빗댔다.
박 의장은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결국은 주권자인 국민이 다시 한번 결집해야 한다. 광장에서 총집중 투쟁해 극우 내란 세력의 역주행을 막아내야 한다"며 "이를 호소하기 위해 공동의장단이 몸으로라도 앞장서기 위해 단식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헌법재판소 일부 재판관들은 탄핵 심판 일정을 늦추려는 유혹을 강력히 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신속한 파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헌재는 국민이, 헌법이 부여한 법적 의무를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친위 쿠데타의 뿌리가 꽤 길고, 깊고, 넓었다는 위기감"은 농성을 더욱 비장하게 한다. 김민문정 공동의장(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은 "법원의 판단, 검찰의 결정을 보니 조금 더 엄중하게 이 시기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시민이 비슷한 감정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민 의장은 "헌법재판관 만장일치 파면 결정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상으로 돌아간 시민도 많았을 거다. 일차적으로 요청드리는 건 '광장에 나와달라'는 것"이라며 "많은 시민이 헌법과 민주주의 가치를 위해 헌재의 올바른 판단을 촉구하고, 이런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헌재에 전달하면 좋겠다. 광장뿐만 아니라 자신이 있는 생활 공간에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해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단식 3일 차에 접어든 김민문정 공동의장(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2025.03.10. ⓒ김도희 기자
비상행동 농성장 부근에서 동조 농성에 들어간 시민도 있다. 윤 대통령 석방 당일인 지난 8일에는 300여 명의 시민이 함께 농성장 주변을 지켰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원내외 정당도 하나둘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비상행동 관계자는 "(여러 단체에서) 부스를 더 만들겠다고 연락이 온다. 계속해서 늘어날 거 같다"고 전했다.
자녀 셋을 둔 43세 여성 A씨는 '전국길치연합' 현수막을 몸에 두른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광장에 왔다는 A씨는 "단식하는 분들께 감사하다"며 동조 농성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윤석열이 선거 운동하러 다니지 않을까 걱정된다. 극우세력과 보수세력도 모으지 않을까 싶다"며 "이를 막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퇴직 철도 노동자 60대 남성 B씨는 "정말 답답하고, 짜증 나는 세상"이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후 7시 같은 장소에서 예정된 비상행동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왔다는 A씨는 "심우정(검찰총장)도 그렇고 다 한통속인 거 같아 답답하다. 석방은 예상도 못 했다"며 "오늘부터 5일 동안은 계속 집회에 참석해야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유력한 오는 14일까지 매일 광장에 오겠다는 것이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1인용 텐트를 펼치고 전날부터 동조 단식에 들어갔다.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파면 촉구' 피켓도 큼지막하게 세워두었다. 민주당 고민정 의원,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농성장을 방문했다.
김 전 지사는 "검찰의 즉시 항고 포기에 긴급하고 비상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뭐라도 해야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동조 단식에 돌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내란 우두머리가 이렇게 빨리 풀려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심우정 총장이 최소한 내란에 동조하거나, 무언가 숨기고 싶은 공범 관련 사실이 있는 게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며 "수사 기관이나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해 꼭 파헤쳐야 할 의혹"이라고 짚었다.
검찰개혁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전 지사는 "검찰도 자기들이 왜 개혁 대상인지를 이번에 증명했다. 국민이 '검찰에 대한 완전한 개혁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계기"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해야 할 때"라며 "시민들께서 마음을 모아 행동으로 옮겨주시면 좋겠다. 집회 참석이든, 온라인 의견 개진이든 여러 가지 방향으로 헌재 결정에 국민의 뜻을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독려했다.
비상행동 공동의장단과 김 전 지사는 '윤 대통령이 파면될 때까지'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비상행동은 윤 대통령 파면 선고가 나오는 날까지 매일 오후 7시 경복궁역 인근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다. 전국 단위에서도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행동이 전개되고 있다. 비상행동 측은 "시민의 목소리가 더욱 필요하다"며 "파면까지 함께 모여 '윤석열 파면'을 외치자"고 호소했다.
비상행동 천막 인근에서 '윤석열 파면 촉구' 동조 단식농성에 들어간 김경수 전 경남지사. 2025.03.10. ⓒ김도희 기자
비상행동 단식농성장에 시민들이 남긴 방명록. 2025.03.10. ⓒ김도희 기자
비상행동 단식농성장 인근에서 1인 농성 중인 시민 A씨. 그는 "윤석열이 선거 운동하러 다니는 걸 막고 싶다"고 말했다. 2025.03.10. ⓒ김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