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키의 음반은 들을 때마다 놀랍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도 짚었듯 김오키는 지금 한국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많은 정규음반을 발표하는 음악인 서 너 명 중 하나인데다, 늘 음반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는 음악인이기 때문이다. 김오키는 영화계로 치면 홍상수 감독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난 3월 3일 김오키가 선보인 정규음반 [힙합수련회 2025] 또한 이전에 내놓은 수많은 음반 가운데 하나라고 지레짐작하면 안될 일이다. 이번 음반에서 김오키는 원슈타인부터 김일두, Orisaka Yuta, Ruiijikun, 안필주, Brian Shin, 아방가르드 박, Omega Sapien, Animal Divers, 탁경주, 갤럭시 익스프레스, 임플란티드 키드, 연주, 동이로 이어지는 수많은 음악인들과 협업했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이들의 다양한 면면은 2013년 이후 김오키가 걸어온 길의 결과다. 김오키는 지난 12년 동안 재즈 음악인으로만 살지 않았다. 흑인음악과 손을 잡기도 했고, 팀의 이름을 바꿔가며 서정적이고 유려하며 영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음악인으로 음악세계를 확장했다. 그의 행보는 자유로워 항상 스스로 길을 만들어 걸어갔다.
김오키 (Kim Oki) - 럭키 (Lucky) (feat. 원슈타인 Wonstein)
이번 음반에서도 그의 물오른 창작력과 연주력을 절감할 수 있다. 김오키는 곡마다 다른 속도와 질감과 이야기에 맞게 연주를 조율하며 곡 안에 녹아든다. 곡을 만들고, 연주로 개입하는 방식과 흐름, 농도야 말로 김오키의 역량을 보여주는 증거다. 김오키의 연주는 존재하지만 압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오키의 연주가 없다면 대부분의 곡에 흐르는 몽롱하고 편안한 질감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김오키는 함께 연주한 이들과 곡을 만들고 연주하면서 대부분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가끔 잘 안되면 어때?”라고 노래하는 ‘럭키(feat. 원슈타인)’만이 아니다. 김오키의 최근 연주들은 이렇게 느리게 연주하면서 내면과 세계를 응시하는 경우가 많다. 김오키의 관조는 고요한 집중이다. 명상에 들어간 것처럼 들리는 연주의 호흡은 과시하지 않고 압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런 욕망과 의지도 없는 상태는 아니다. 다만 힘을 빼고 연주하고 노래하기 때문에 감정과 상황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 “어깨에 힘을 빼 어깨에 힘을”이라는 노랫말은 음반의 지향과 태도를 선명하게 드러낸 가사다.
김오키 (Kim Oki) - 힙합수련회 2025 (Hip Hop Retreat) 앨범 전곡 듣기
그런데 이번 음반은 중후반부로 향할수록 곡의 그루브가 도드라지고 사운드가 강력해진다. 유사한 곡으로만 채우지 않으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배치다. 일관된 스토리텔링 방식을 취하지는 않지만 사운드의 변화를 통해 드러내는 이야기는 힙합 쪽으로 서서히 다가간다. 음반의 타이틀에 수긍하게 되는 방식이다. 관조하는 연주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더욱 농염해지는 연주는 김오키의 방식으로 피어난다. ‘힙합 수련회에서 누나에게 고백한 남자의 이야기 (feat. Galaxy Express, 임플란티드 키드)’는 김오키가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연주자임을 드러낼 뿐 아니라 어느 장르와의 협업도 가능한 음악인임을 증거하는 멋진 곡이다. ‘본채만채채채꾸라꾸라진진가즈하 (feat. 연주)’도 마찬가지다.
침잠하고 꿈꾸다 이윽고 분출하는 음반의 서사는 1시간 25분이라는 음반의 길이를 견딜 수 있게 도와준다. 그렇지만 과연 이 음반을 듣는 동안 스마트폰을 손대지 않고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듣다가 자꾸만 스킵하고 싶거나 두 배 속으로 들으려 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새 우리는 한 시간 이상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싱글의 시대에 음반의 가치는 팬들에게만 유효한 것은 아닐까. 음악이 끝난 뒤에도 질문을 던지는 음반이다. 이 또한 김오키의 음반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