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충격에 빠졌다. 지난 4일 대형마트 업계 2위인 홈플러스가 기업회생(법정관리)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MBK)는 법정관리 신청 이유에 대해 “단기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유동성 악화를 막기 위해 선제 조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홈플러스의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예견된 추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MBK의 무리한 차입매수가 홈플러스의 몰락을 촉발했다는 지적이다.
MBK는 영국 유통기업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 지분 100%를 7조2천억원에 인수했다. 홈플러스의 기존 차입금 1조2천억원을 제외하면 실제 인수금액은 6조원이다. 이중 MBK가 투입한 자금은 3조2천억원을 정도다. 나머지 2조7천억원은 금융권으로부터 차입했다. 기존 차입금을 감안하면 인수 후 홈플러스가 감당해야 할 빚은 총 3조9천억원(1조2천억원+2조7천억원)에 달했다. 여기에 테스코 시절부터 남아 있던 단기 운전자금 차입 7천억원도 남아 있었다.
그 결과 홈플러스는 천문학적인 금융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2016년 이후 2023년까지 누적 금융비용만 3조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누적 영업이익이 5천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영업을 지속할수록 손실이 쌓이는 구조였다.
이 과정에서 MBK는 홈플러스가 보유하고 있던 우량 점포들을 팔아 현금화했다. 이중엔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알짜배기 점포도 포함됐다. 자연스레 매출과 이익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MBK가 돈이 되는 건 팔아 챙기고, 나쁜 자산만 남게 되자 회생 신청을 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또 MBK는 팔아 치운 점포를 다시 빌려 영업하는 ‘세일앤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방식을 홈플러스 운영에 적용하기도 했다. 이 방법은 점포 임대비용이 계속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다.
MBK의 이 같은 운영은 홈플러스 법정관리로 이어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회계연도(2023년 3월~2024년 2월) 홈플러스가 지출한 이자 비용과 점포 리스료 등을 포함한 연간 금융비용은 총 4,573억원에 달했다. 매출은 6조9,314억원, 영업손실 1,994억원을 기록했다. 부채비율은 3,200%를 넘겼다. MBK 인수전인 2013년 기준 홈플러스 매출이 7조3,255억원·영업이익이 2,510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도한 차입매수가 홈플러스 운영에 독이 된 셈이다.
결국 지난달 28일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은 A3에서 A3-로 추락했고, MBK는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내부에서도 홈플러스 경영 실패에 대한 MBK 책임론이 확산하고 있다. 홈플러스 직원들은 MBK가 각종 홈플러스 부동산을 팔아 인수 차입금을 갚고, 영업이익 대부분을 차입금 이자 비용으로 뽑아가면서 시설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채용도 대폭 줄여 경쟁력이 약화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위험신호는 계속해서 있었다. MBK가 인수한 이후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은 계속해서 하락해왔으며, 작년 말에는 협력업체 대금 지급이 늦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홈플러스 재무 상황이 극도로 악화한 상황에서도 MBK는 아무런 자구 노력을 하지 않았고 갑자기 기업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지금까지 어떠한 대책도 내오지 않고 있다.
홈플러스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홈플러스와 MBK가 회생절차를 신청하기 직전까지 단기물을 찍어 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홈플러스가 발행한 기업어음(CP)은 올해 들어서만 280억원이다. 지난달 21일 마지막으로 발행됐다. 지난 4일 기업회생 전격 신청 약 열흘 전까지도 CP를 찍은 것이다. 누적으로는 1천억원이 넘는다.
홈플러스의 카드 대금 채권을 기초로 발행하는 유동화증권(ABSTB)은 더 최근인 지난달 25일 820억원어치가 발행됐다. 이 채권의 발행 규모는 누적 4,019억원이다.
하지만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해당 ABSTB는 전량 부도 처리되는 중이다. 발행 주관사인 신영증권을 통해 개인 투자자도 약 3,000억원의 물량을 산 것으로 파악된 만큼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도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MBK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MBK의 홈플러스 회생 신청은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라며 “피해를 끼쳐도 위법하지 않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문제가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지난해 말 홈플러스에선 납품대금 지연 사태까지 발생했는데, MBK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런 MBK가 투자자들에게 위험성을 알리지 않고 자금을 조달했다면 사기죄로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런 의혹이 사실인지 규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