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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초부자감세와 세수결손으로 이어질 유산취득세 전환

정부가 상속세 부과 방식을 금액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물려준 유산 총액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현행 제도를 바꿔 각 상속인이 받은 만큼 세금을 내는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12일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방안을 담은 상속세 과세 체계 개편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런 변화가 과세형평 제고와 공제 실효성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에선 초부자감세에 불과하다. 상속세는 부과 대상 재산이 많을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 구조를 갖고 있다. 부과 대상 재산을 쪼개 '사람'별로 세금을 매긴다면 당연히 적용되는 세율이 낮아지게 된다. 정부안대로라면 현재 6.8% 수준인 상속세 과세자 비율이 절반으로 줄어들 뿐만 아니라 과세 총액도 연간 2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안대로면 배우자와 자녀 2명이 있는 사람이 20억 원짜리 집을 상속하는 경우엔 현재 1억3천만원의 상속세가 0원이 된다. 상속재산이 30억원이라면 감세 폭은 더 커진다. 현행 제도에선 3억원을 더 넘겨 세금을 내야 하지만, 새로운 규정으로 바꾸면 1억2천만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이런 감세 혜택을 누가 보게 될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기재부는 과세 체계 개편을 발표하면서 세수를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세수중립성에 대한 고려를 내놓지 않았다. 상속세가 국세의 2.8%(9.6조원)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이렇게 제도를 바꾸면 큰 폭의 세수결손이 발생할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이와 관련한 대책은 전혀 내놓지 않았다. 안 그래도 윤석열 정부 들어 나라 살림 곳곳에 구멍이 났는데, 또 세원을 줄이겠다니 이런 태평함이 놀라울 정도다.

이미 여야는 상속세 감세를 놓고 경쟁 중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배우자공제한도 폐지와 일괄공제액 상향에 공감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여기에 더해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자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유산취득세 전환까지 들고나왔으니 재산 많은 이들은 휘파람을 불고 있을 것이다. 중산층이 아닌 부자에게, 부자보다 '초'부자에게 특별히 유리한 이런 감세경쟁을 보는 서민들의 심정은 착잡할 것이다.

물려받은 재산 크기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되고, 여기에 기초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세습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부모 잘 만나는 것이 실력'이라면 아무도 희망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여야정이 벌이고 있는 상속세 깎아주기 경쟁은 결국 우리 사회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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