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피해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갑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미 2만7천 명을 넘어섰다. 전세 사기 특별법이 제정된 후 집계되는 흐름을 보더라도 최근에는 한 달에 1천 명 이상 발생하는 추세다. 그런데 이 숫자도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는 못한다. 전세 사기를 당한 상당수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인의 고의성을 피해자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는 게 문제다. 이러한 결과로 '피해자가 되지 못한 피해자'도 약 1만 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사회에서 전세 사기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때는 피해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있고 나서다. 2023년 2월 28일 첫 번째 희생자의 부고가 들려온 이후 지금까지 일곱 명의 피해자들이 연이어 세상을 등졌다. 피해자의 다수가 2030 청년들인 것도 뼈 아픈 지점이다. 인생의 초년기에 어렵게 모은 자산을 어처구니없이 잃고 빚더미에 올랐다는 절망감이 삶의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고 있어서다.
물론 특별법이 들어서기는 했다. 그러나 내내 그 실효성이 의문스러웠던 데다 이제는 한시법이라는 한계로 시한마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부족해 실질적인 도움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다. 한 차례 법 개정을 통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피해 주택을 공공 매입해 피해자들에게 차액을 지급하도록 했지만 경매 차익이 적으면 이마저도 무용지물이다. 실제 피해액을 전혀 충당하지 못해서다. 피해자 대책위는 이런 불안정한 지원책 말고 최우선변제금(보증금의 약 30%) 수준의 최소 보장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별법 제정에도 잔세 사기가 줄지 않는 또 하나의 문제는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가해자는 2심과 대법원에서 당초 1심 15년 형량의 절반 이상이 감형됐고 공범 9명 중 7명은 집행유예, 2명은 무죄가 선고되었다. 세입자 39명에게 15억 원을 떼먹은 대구의 신탁 전세 사기 가해자도 1심 결과 징역 5년에 불과해 피해자들이 크게 반발했다.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 첫 번째 희생자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대책이 보이지 않는 지금 상황이라면 올 5월 말로 끝나는 특별법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또 모를 일이다. 피해자 인정의 확대, 선구제를 위한 보다 분명한 지원책, 다가구나 공동담보 또는 외국인이라는 사각지대 해소 등의 대책으로 하루 빨리 국회가 제 일을 하길 바란다.